아담 범죄 이후 우리의 육체 자체가 썩음과 죽음의 모든 인간고/人間苦의 온상/溫床인 동물성 육체일 뿐만 아니라, "죄의 몸"(롬 6:6)인지라 죄의 화약고/火藥庫인데다, 엎친데덮친격으로 사람(아담)이 다스리는 세계가 아닌 "원수"(창 3:15) 사탄 과 그 일당인 악령들(네필림과 그 죽은 망령들인 많은 귀신도 포함)에게 그 통치권이 "넘겨진"(눅 4:6) 상태라 365일 24시간 그들이 인간 세상에 군림하여 그들에게 시달리는 참담한 나날인 것입니다.
바벨론 신학의 거짓말과 속임수도 그 일환으로 성경은 가리켜 마귀가 "온 세상을 꾄다(속인다)"(계 12: 9)'고 한 것. 따라서 악령들이 우리(하나님께 속한)가 부유하고 편안하게 살도록 방치해 둘 까닭이 없습니다. 반드시 못살게 집적이게 되어 있는데도 이런 현실을 뭇하고 세상에서 축복 받아 잘 산다고 꿈꾸는 절대 다수ㅡ완전히 사탄 아래 있지 않고는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이미 우리 주님께서 "마지막 아담"(고전 15:45)으로 계시는 터라 모든 것을 회복하심이 필연이지만, 만유는 "때"(전 3:18)와 순서를 따라 진행되므로 주님의 재림이 시작되어야 멸실 공히 그 통치권이 정식 발효되기에 지금은 인내로써 기다려야 합니다. 정작 복이 있는 자는 이러한 이들입니다.
불신자도 세상을 "고해/苦海"라 했으니까말 다한 것입니다. 이런 상태를 두고 절대 "사람 삶의 세상"이라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알지 못해, 아무런 희망을 느끼지 못하는 세상은 그럴수록 어리석게 도 살려고만 무턱대고 발버둥치는 것. 우리는 그렇게 헛되이 발버둥침이 아니라 하나님 뜻을 따라 사람들을 구원해 건져 올리는 "사람 낚는 어부"(마 4:19) 일에 열중함이 현재 유일한 낙입니다.
그런즉러므로 때마다 우리가 피차간 강조하는 것은 세상 삶의 낙(그나마 한낱 신기루에 불과한)에 한눈파는 일이 없도록 주의에 주의를 기울이자는 것입니다. "붙잡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고 맛보지도 말 것은 오로지 썩음으로만"(골 2:21,22/창 3:3) 종결되는 이 세상이라, 스스로 멸망에 빠져 들어가는 지름길 밖에 더 되지 않음을 너무나 잘 아니까.
우리의 구원은 가장 먼저 이 "죄의 몸"부터 척결함이 첫째 순서이고 이는 이 육체가 죽어 망하는 것으로만 해결되기에 주님 메시야(그리스도)의 죽으심이 내 죽음이 되는 것입니다. 허나, 죽음으로만 끝나면 아무 의미(소용)가 없고(고전 15:14- 18), 그 죽음에서 부활해야만 새 창조가 되는 까닭에 주님의 부활이 나의 부활이 됨으로써 이 일이 완성됨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죽으심에서 그 흘리신 피가 내 죄를 씻는 보배로우신 피(보혈)이기에 내 죄가 용서되고 그 부활로써 나는 새 생명의 새 사람으로서의 "새 창조"(고후 5:17)가 이루어집니다. 이는 이론만으로 써의 <추상적인 것>이 아니라 그렇게 나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신 주님 친히 그 영(성령)으로 내 안에 임하여 오심으로(내 안에 내 영혼이 있듯이) 친히 나와 "하나"
(요 10:30) 곧 "한 영"(고전 6:17)이 되심이니까 <실제 상황>인 것입니다.
성령이 누구시며 3위1체가 무슨 의미인지 아는 것이 이래서 중요합니다. 이제까지는 이 사실을 몰라도 그래서 제대로 설명을 못해도, 참으로 회개하고 참으로 믿으면 우리 마음을 아시는 하나님이신지라 성령(성부와 성자께서 하나로 계심)께서는 임하여 오셨고 우리 구원에 일절 하자가 없었던 것. 남녀노소 불문이므로, 어린 아이라고 예외일 수 없습니다.
회개와 믿음이 없이 저절로 구원 얻는 일이 없는 것은 인간이 타고나는 것이(시편 51:5) "죄의 몸"이므로 이 죄의 몸이 "멸/滅해져야"(롬 6:6)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유아 또는 믿지 않고 세례 받지 않은 어린 아이가 죽으면 멸망인가? 그가 구원 받으려면 충분히 철들어 복음을 이해하고 세례를 받을 정도이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으니 구원되지 못한 것입니다.
소위 "유아세례" 등은 무의미한 인위적 종교 교리에 해당하는 것이지 성경이 아닙니다. 노아 홍수 당시 죽은 자들도 회개하여 믿어 구원될 수 있도록 주님께서 "영으로...전파하셨으나"(벧전 3:19/4:6) 이런 유아들이 그 죽은 자들의 세계에 가서 복음을 듣게 되는지 여부는 미상이요 우리가 궁금히 여길 대상은 아닙니다.
아니면,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릴 수 있습니다. 즉 그 영혼들이 네피림일 수도 있다는 것. 죽은 망령으로 떠돌던 네피림 즉 귀신이 무차별적으로 아무 산모의 태에나 들어가 사람 태어나는 달수를 채우고 세상에 나오는 것이 비일비재니까. 어뗜 사유로든 철도 들지 않았는데도 요사하는 경우를 말합니다. 네피림은 원천적으로 구원이 불가입니다. 악령의 씨에 불과하니까. 이렇게 해서 네피림이 재차 생겨나면 그들이 말하는 소위 "윤회", "전생", "환생" 등이 되는 것입니다.
참고로, 죽은 자의 세계에도 복음이 전파되어 있는지라 충분히 구원될 기회가 있으니 굳이 세상에서 복음 전하기 위해 노력할 필요가 없지 않으냐 하는 악하고 미련한 생각을 혹 품는 자가 있겠으나, 바울 사도는 "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이라"(고전 9:6) 했으니, 반드시 전도 활동은 수행되어야 하고 그렇지 않으면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딤후 4:2),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행 1:8) 하신 하나님의 뜻과 명령에 대한 명백한 불순종과 정면 도전이 되므로 영원한 죄인으로 낙인 찍혀 그 결말은 영원 "불 못"일 뿐입니다.
전도 활동이 다름 아닌 사람 살리는 목적인즉 만나는 사람마다 그 대상이고 이 일에는 교회를 운영하는 목회자도 예외가 아닙니다. 더구나 "양 무리의 본"(벧후 5:3)이어야 하므로 더욱 그러합니다. 또한 이 전도 활동에는 불신 세상을 위한 끊임 없는 제사장적 기도가 수반되어야 함은 당연합니다. "아셀 지파 바누엘의 딸 안나는 열아홉 전후 나이에 출가한 후 7년 뒤 과부 된 지 84년 넘게 주야에 금식하며 기도함으로 하나님을 섬긴 우리의 기도의 사표/師表입니다(눅 2:36:37).
그리고 주님이 경고하신 바, "누구든지 '나와 내 말'을 <부끄러워하면> 인자도 자기와 아버지와 거룩한 천사들의 영광으로 올 때에 그 사람을 <부끄러워할> 것"(눅 9:26)이라는 경고 말씀 역시 불변입니다. 사탄 아래 있는 세상이라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과 그 추종자에게는 시종일관 적대적이고 우호적이었던 역사가 없으니까. 우호적인 듯 싶어도 올무와 함정이라 약화시키려는 음모일 뿐이니까.
적과 싸우되(창 2:15) 우리는 적지/敵地에 위치하기에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 있는 자'가 많지 않으며 '능한 자'가 많지 않으며 '문벌 좋은 자'(고귀한 자)가 많지 않다"(고전 1 :26)고 한 이유입니다. 이 세상이 사탄의 적지/敵地입니다. 하나님 편은 당연히 막강하지만 현재 눈에 보이어 인식되는 것은 모조리 마귀에게 속한 것으로 나타나기에 이는 당연지사로서 수용해야 합니다.
오직 믿음으로써만 능히 상대할 수 있는 일임을 우리 각자는 자기 위치에서 명심하면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느 누구를 막론하고 똑같이 평등하게, 아버지의 뜻을 따라 보내심 받아 세상에 오신 "주님의 일을 하는"(15:58) 위치입니다. 맡겨진 일에는 오직 충성만이 요구됩니다(4:2).
'왕이 말하기를, "너희는 가서 엘리사가 어디 있나 보라. 내가 보내어 잡을 것이다." 혹이 왕에게 고하기를 "엘리사가 도단에 있습니다." 왕이 이에 말과 병거(말이 끄는 전투 수레)와 많은 군대를 보내니 그들이 밤중에 가서 그 성을 에워쌌다. 하나님의 사람(엘리사)을 수종드는 자가 일찌기 일어나서 나가 보니 군대와 말과 병거가 성을 에워쌌는지라 그 사환이 엘리사에게 부르짖기를 "아아, 주인님, 우리가 어찌 할까요!" 엘리사가 대답하기를, "두려워하지 말라, 우리와 함께 한 자가 저들과 함께 한 자보다 많다" 하고 기도하기를, "여호와 하나님, 원하오니 이 종의 눈을 열어서 보게 해 주십시오" 한즉, 여호와께서 그 사환의 눈을 열어 주시므로 그가 보니 불말과 불병거가 산에 꽉 차 있어 엘리사를 둘러싸고 있었다'(왕하 6:13-17).
오늘날의 엘리사는 성경 말씀을 통해 역사하시어 365일 24시간 함께 하시는 만유의 주재 하나님이신 성령이십니다.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시어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실 것"(요 14: 16)이라 약속하심과 같습니다. "성경은 폐하지 못한다"(요 10:35) 하셨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죽어도 살고, 지는 것같아도 최종적으로 이기고 있는 것을 믿음의 눈으로 확인하고 있을 따름입니다. 현재는 일시적으로 비록 "약하고 천하고 없는 자"(고전 1:26-31)의 모습이나. 엘리사의 종의 경우처럼, 우리들의 부홣하신 주님처럼, 너무나 명백한 사실입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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