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4월 14일 화요일

주님과 한 영(고전 6.17)으로 연합하여 있는 나

주님께서 몸으로는 하나님 우편에 계시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우리와 같은 사람이심과 똑같이 하나님이십니다. 고로 하나님으로서는 지금 우리 각자와 함께 마치 사람으로 계시는 것처럼 계시는 것입니다. 주님 계시니 똑같이 아버지 하나님이 계십니다. "하나"(요 10.30)이시기 때문입니다.  무식한 사람들은 아버지 하나님이라 하셨으니 "어머니 하나님"도 당연히 존재해야 마땅하다며 마귀 노릇을 하지만(이렇게 말함이 마땅한 것은 이런 언사는 성령으로 말미암으면 결코 상상할 수 없는 것이기에ㅡ왜냐면 주님 친히 "아버지"라 하셨으니 그대로 수용하면 되므로) 첫 사람 아담을 기준하는 모든 표현이기에 그런 것. 아담은 남성이니까. 그냥 "어버이"라 해도 무방하겠지만 인간은 성별이 있기에 더욱 어색하므로. "<아버지 품속의 독생하신 하나님>"(요 1.18)이시라 했으면 충분한 것입니다. 우리도 부활하면 더 이상 성별이 없으니까(눅 20.35). 동물적 육체가 됨으로써의 성별인 것입니다. 신령한 몸은 초자연계 몸의 초능력다운 아담의 자식 생산 방법이 있는 것이었습니다. 동물적 육체의 낙이라고는 단순하고 기계적이라 식욕과 성욕뿐이나 신령한 몸의 쾌락은 한낱 "몸"에만 한정되지 않는 영적ㆍ정신적인 것을 총망라하는 무궁무진의 다양성인 것은 당연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마 16.28)가 비록 잠시 잠깐이나마 전개됨을 본 베드로가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으니 초막 셋을 짓고 있습시다" 란 말이 부지중 튀어나온 것도 그 단적 증거입니다. 디 엘 무디(1837ㅡ99)가 성령의 세례를 받을 때 "사랑의 파동이 파도처럼 밀려오는" 순간 그는 도저히 견디지 못해 "주님, 이러다가는 제가 죽습니다. 멈추어 주십시오!" 하는 간청이 터져 나왔고, 찰즈 피니(1792ㅡ1875)도 처음 믿음의 결단을 내렸을 때 그렇게 숲속에서 장시간 기도하고 자기 사무실(변호사)에 돌아와 홀로 앉아 있는데 "사랑의 파도(무디와 같은 표현)"가 물결쳐 오듯 밀려들었다고 합니다. 피니의 경우에는 이 때 주님께서 문자 그대로 옆에 서 계심을 느꼈고 피니는 그 발 앞드려 지난 날의 모든 죄를 낱낱이 자백하며 어린 아이처럼 목놓아 울기 시작했다는 것. 물론 사람마다 그 표현과 체험이 다릅니다. 주님은 우리 각자 앞에 계십니다. 이것만은 불멸의 진실입니다. 성령으로.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보라!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을 것이다"(마 2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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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과 한 영(고전 6.17)으로 연합하여 있는 나

주님께서 몸으로는 하나님 우편에 계시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우리와 같은 사람이심과 똑같이 하나님이십니다. 고로 하나님으로서는 지금 우리 각자와 함께 마치 사람으로 계시는 것처럼 계시는 것입니다. 주님 계시니 똑같이 아버지 하나님이 계십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