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4월 15일 수요일

그리스도 안에서 똑바로 딛고 서야 할 우리의 의치

아래 눅 9.57~62 말씀을 이전에 여러 번 게시글로 올렸으나 이 말씀을 이제 다시 대하니 같은 말이지만 또 하게 됩니다.


"어디로 가시든지 저는 따르겠습니다" 하고 누가 말했을 때 주님은,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집이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 하셨습니다. 떡 다섯 덩이 물고기 두 마리로 수 천명씩 먹이시는 기적을 보고 이 분만 따라가면 최소한 굶지는 않겠다 생각했던지 그런 말씀을 드렸는지는 모르나 주님은 "마지막 아담" 즉 인간의 대표로서 인생의 참 실상을 정확히 밝혀 주신 것입니다. 자연계 생물은 하나님 창조해 주신 그대로이나 인간만은 아담 범죄로 자기 고유 영역인 신령한 세계로부터 전락해버려 동물성 육체의 물질계에 갇혀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머리 둘 곳 하나 없는 처량하기 짝이 없는 비극의 주인공" 인생. 우리는 똑바른 역사 인식을 가져야 합니다.

또 (다른 사람에게 "나를 따르라" 하시니) "저로 먼저 가서 제 부친을 장사하게 허락해 주십시오" 하자 이에 말씀하시기를, "죽은 자들로 자기의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고 너는 가서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라" 하신 것입"니다. "선악과를 먹으면 죽는다"(창 2.17) 하신 대로 선악과를 먹은 아담의 후대들이니 "죽은 자"이지 그 외 달리 무엇이 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죽은 자". '산 자'가 아닙니다. '산 자'로 착각하지 맙시다. 모든 세상 사람이 '산 자'로 스스로를 알고 있는데 헛다리 짚는 정도가 아니라 낭떠러지로 수직 하락하는 위급한 수준에 처해 있음임을 알아야 합니다. "살려 주시오!", "살려 주시오!" 부르짖어야 또 부르짖어야 하는 몹시 다급한 절체절명(絶體絶命)의 순간임을 의식해야 하는 것입니다. 도저히 빠져나갈 수 없는 절박하고 위태로운 상황입니다. 막다른 골목에 다다라 하나님께 부르짖어야 하는 풍전등화(風前燈火)와 같은 심히 궁박한 처지입니다. 매일 매순이 실제 그러합니다. 이 동물적 육체는 어느 순간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어떤 이는 또 이렇게 말한다고 하셨습니다. "주님, 제가 주님을 따르겠습니다마는 저로 먼저 제 가족을 작별케 허락해 주십시오". 이 경우 주님께서 주신 말씀은,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치 아니하다"ㅡ즉 앞서 말씀하신 대로 죽은 자 살리는, 살려 눟고 보아야 하는 절박한 순간에, 즉 전쟁 중의 군병원에서 사경을 헤매는 수술 환자를 앞에 놓고 딴전을 피우는 집도의/執刀醫와 같은 행위가 용납될 리 만무합니다. 이보다 더 절박한 것이 영적 수술과도 같은 "성령으로 다시 나는"(요 3.5) 일입니다. 사람 목숨은 어느 순간 어떻게 될지 모르는데 더욱 더 위급한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의 우리의 위치가 바로 그런 절박한 순간에 서 있는 집도의와 같은 것입니다. 

우리의 초심/初心 자세를 한 순간도 잃지 맙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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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 안에서 똑바로 딛고 서야 할 우리의 의치

아래 눅 9.57~62 말씀을 이전에 여러 번 게시글로 올렸으나 이 말씀을 이제 다시 대하니 같은 말이지만 또 하게 됩니다. "어디로 가시든지 저는 따르겠습니다 " 하고 누가 말했을 때 주님은, "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