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2월 3일 목요일

①폭력을 동원하는 자는 그 폭력에 의해 망한다 ② 사탄은 끊임없이 반/反성경적인 생각을 주입시킴으로써 상대를 파괴시킨다(요 13:2)

 









무력이든 폭력이든 사용하는 것은

하나님께로부터 난 것이 아님을 입증하는 것.

그런 것은 강제, 간섭이 되기 때문.

이 세상에서의 하나님 뜻은 사랑에 있고

사랑은 자진 자발적인 것이며

일체의 강제, 간섭을 배제한다.  

천주교는 개신교를 폭력으로 탄압함으로써

그 스스로 마귀 편에 섰음을 자인하는 꼴이었다.

적그리스도 역시 하나님의 사람들을 "사탄 패거리"로 몰아

대대적으로 숙청하는 것(계 13:15) 자체가

악이며 선이 아니고 하나님께 속하지 않음을 자체 증명함이다.

마지막 심판 후 사필귀정으로서의 죽음의 고통 이외의

그 어떤 물리적 제재, 탄압, 억압도 정당시되지 못함을 알아야. 

구약시대 당시는 실체가 오시기까지의 사전/事前교육 차원에서

행해진 (그림자적) 죄의 징벌이므로 당연시되었으나

지금은 "마지막 아담"의 시대로서 양상이 기본적으로 달라.

무자비한 죄의 응징은 무한정의 사랑 이후에 오는 필연.   

때에 나누어 때를 따라 이루어지는 일로서

지금은 후자이지 전자가 아닌데도 전자 표방은 사이비라는 증거.  

악인에 대한 무자비한 척결은 "마지막 아담"의 다시 오심으로 됨.

적그리스도가 "사탄 패거리"란 누명을 덮어씌워 "숙청"하는

그런 정도가 아닌, 어마어마한 전지구적인 멸망 규모로 

시행될 것인즉 이 둘을 혼동하지 말아야.  

이 또한 적그리스도가 악령임을 식별해내는 방법의 하나다.

양의 털옷을 입었지만 늑대 꼬리만은 감출 수 없는 것이다. 

지난 날 유럽 역사에서 개신교도들이 천주교도에 맞서 
싸웠다는 것도 결코 정당화될 수 없는 것이다.

핍박 받으면 피해서 다른 곳에 가 구원의 복음 전하라고 하셨다.

핍박을 피하는 방법이 아니라 전도의 기회 또는 신호로 삼음이다.

스데반의 순교로 교회가 탄압을 받기 시작하자 예루살렘 교회가

산지사방으로 흩어져 전도 활동을 연이어 간 것이 대표적 사례다.

정든 고장을 떠나 타지로 떠나는 것은 사막으로 내몰리는 것같으나

구원받음은 이세상 잘 살고자 함이 아니라 보내심 받은 자로서의

사명 완수만이 유일한 의의인즉 여기 아무 하자가 있을 수 없다. 

세상 (사랑해)살고자 하니까 핍박에 걸려 넘어지는 '엇박자'이다.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요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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