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2월 12일 토요일

왜 우리가 짝의 법칙을 거듭 되풀이해서 강조하는지 그 사유를 밝히면 아래와 같으니

 






세상의 모든 아름다움은 <조화>미를 가리킵니다.

있어야 할 데에 있고 없어야 할 곳에 없는 것이 조화이고

그렇지 않으면 뒤죽박죽이 되어 있는 흉물일 뿐입니다. 

인간 삶에 법질서가 작동됨은 이런 흉물스러운 추/醜를 배제하고

완전미/美를 갖추기 위함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사람 삶의 완벽한 아름다움은 사랑에 있고

사랑은 둘의 하나됨 즉 철저히 짝의 법칙에 기초한 것입니다. 

모든 불법, 이기(利己)적 행위의 자아중심에서 빚어지는 추함, 역겨움을

우리가 잠시라도 생각에 떠올리면 금방 알아지는 실상입니다. 

모든 선(좋은 것)과 미/美의 대명사이신 하나님께서

내리시는 모든 명령, 정하신 모든 법질서는 여기에 기반합니다.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의 송가(頌歌)인 시편 119편에

하나님의 율법은 정금보다 더 정하다, 꿀송이보다 더 달다 한 것이

결코 빈 말이 아니고, 입에 발린 찬사가 아닌 것입니다. 

하나님 사랑은 달리 표현하면 그 말씀 사랑입니다. 

이런 아름다움을 감상할 줄 아는 자 실로 복이 있다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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