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2월 20일 일요일

빈약하기 짝이 없는 자연계 육체에 포로되어 있는 현재 우리는 삶의 진수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단지 수박 겉 핥기 식의 처참한 환경에 처하여

 



앉은뱅이나 반신불수와 같은 나날을 

보내고 있음을 조금씩이나마 의식할 필요가 있습니다.

초자연계와 자연계로 양분되어 있는 세계.

우선 초자연계의 육체가 얼마나 빈약한지는

주님의 부활하신 몸을 언뜻 살펴 보아도 

대강 짐작할 수 있을 정도입니다. 

들의 꽃 한 송이가 발산시키고 있는 것 하나에도(눅 12:27)

인간의 모든 부귀영화로 입은 옷이 미치지를 못한다 하신

주님의 말씀으로도 그 정도를 충분히 알 수 있습니다. 

주님의 부활하신 몸으로 구름을 타고 

종횡무진으로 움직이시고 또한 다시 오실 때에

번개와 같이 나타나신다는 것만 상상해도

이 자연계 몸을 입은 현재의 상태는 굼벵이 꿈틀거림과 같은

굼뜨기 짝이 없는 불편하고 답답하기 그지없음이 명백합니다.


초자연계 육체만 그런 것이 아니라

당연히 초자연계적 생활 환경이야  더 말할 것도 없습니다.

"보기에 아름답다", "먹기에 좋다"(창 2:9) 등.

영생은 접어두고라도, 한 마디로 우리는 지금 상태에서

"산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도 전혀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아담 부부는 일단 맛을 보았겠고 영물(靈物)들은 알겠지요.

문명이 아무리 발달한다 해도 자연계에 예속된 것일 뿐.

그 이상의 것, 그 밖의 것은 전연 아는 바가 없고

차원이 다르며 수준이 낮다는 것만은 확실합니다.

이런 "낮은 몸"(빌 3:21)과 "영광의 몸"의 대비입니다.

이런 몸을 가지고 이세상 모쪼록 살아보겠다는 

미련한 생각은 한 시도 담아두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구원받아 모든 것을 주님의 것으로 바쳤는데

그리고 그와 같이 사는 것이 "상대성의 동시성"의 삶의 진리.

주님의 것을 내것인 양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망상이

영물이나 인간이나를 막론하고 멸망에 함몰시키는 자아중심

다시 말해 생명의 율법을 범하는 것이니 경계해야 합니다.


사탄은 구원의 희소식(복음/福音) 전파의 

제1장 제1절을 그동안 숨기고 있었던 셈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는 말에 있지 않고 능력에 있는지라

그럼에도 "돌이켜 어린 아이같이 된" 이는 누구나 다

구원 얻기에 하자가 없었으니 하나님의 은혜 찬송할진저.

그러나 영악해질 대로 영악해진 21세기에 들어

종전과 같은 <체계를 갖추지 못한> 구원론은 설 자리가 없습니다.

마귀가 초능력을 사력을 다해 동원시키므로 더욱 그렇습니다.

고로 이 감추어졌던 제1장 제1절에서부터 

하나님의 말씀을 개진할 수 있도록 다시 은혜를 베푸심이니

즉 인간이 이런 나약한 자연계 몸으로 운명지워진 연유가

아담의 범죄로 인한 것임을 

초대교회처럼 광포(廣布)하게 하심이니

하나님의 이 뜻에 우리는 전폭적으로 순종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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