앉은뱅이나 반신불수와 같은 나날을
보내고 있음을 조금씩이나마 의식할 필요가 있습니다.
초자연계와 자연계로 양분되어 있는 세계.
우선 초자연계의 육체가 얼마나 빈약한지는
주님의 부활하신 몸을 언뜻 살펴 보아도
대강 짐작할 수 있을 정도입니다.
들의 꽃 한 송이가 발산시키고 있는 것 하나에도(눅 12:27)
인간의 모든 부귀영화로 입은 옷이 미치지를 못한다 하신
주님의 말씀으로도 그 정도를 충분히 알 수 있습니다.
주님의 부활하신 몸으로 구름을 타고
종횡무진으로 움직이시고 또한 다시 오실 때에
번개와 같이 나타나신다는 것만 상상해도
이 자연계 몸을 입은 현재의 상태는 굼벵이 꿈틀거림과 같은
굼뜨기 짝이 없는 불편하고 답답하기 그지없음이 명백합니다.
초자연계 육체만 그런 것이 아니라
당연히 초자연계적 생활 환경이야 더 말할 것도 없습니다.
"보기에 아름답다", "먹기에 좋다"(창 2:9) 등.
영생은 접어두고라도, 한 마디로 우리는 지금 상태에서
"산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도 전혀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아담 부부는 일단 맛을 보았겠고 영물(靈物)들은 알겠지요.
문명이 아무리 발달한다 해도 자연계에 예속된 것일 뿐.
그 이상의 것, 그 밖의 것은 전연 아는 바가 없고
차원이 다르며 수준이 낮다는 것만은 확실합니다.
이런 "낮은 몸"(빌 3:21)과 "영광의 몸"의 대비입니다.
이런 몸을 가지고 이세상 모쪼록 살아보겠다는
미련한 생각은 한 시도 담아두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구원받아 모든 것을 주님의 것으로 바쳤는데
그리고 그와 같이 사는 것이 "상대성의 동시성"의 삶의 진리.
주님의 것을 내것인 양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망상이
영물이나 인간이나를 막론하고 멸망에 함몰시키는 자아중심
다시 말해 생명의 율법을 범하는 것이니 경계해야 합니다.
사탄은 구원의 희소식(복음/福音) 전파의
제1장 제1절을 그동안 숨기고 있었던 셈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는 말에 있지 않고 능력에 있는지라
그럼에도 "돌이켜 어린 아이같이 된" 이는 누구나 다
구원 얻기에 하자가 없었으니 하나님의 은혜 찬송할진저.
그러나 영악해질 대로 영악해진 21세기에 들어
종전과 같은 <체계를 갖추지 못한> 구원론은 설 자리가 없습니다.
마귀가 초능력을 사력을 다해 동원시키므로 더욱 그렇습니다.
고로 이 감추어졌던 제1장 제1절에서부터
하나님의 말씀을 개진할 수 있도록 다시 은혜를 베푸심이니
즉 인간이 이런 나약한 자연계 몸으로 운명지워진 연유가
아담의 범죄로 인한 것임을
초대교회처럼 광포(廣布)하게 하심이니
하나님의 이 뜻에 우리는 전폭적으로 순종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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