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1월 25일 화요일

우리가 망각하기 쉬운 21세기 성경적 경고 (1)

여기 오늘날 우리가 절대로 간과해서는 안될 성경의 경고가 있다.


"나는 모든 사람이《결혼하지 않은》나와 같기를 원한다. 그러나《강요함은 아니니》각각 하나님께 받은 자기의 은사가 있어 하나는 이러하고 하나는 저러하다. 혼인하지 아니한 자들과 및 과부들에게 이르니 나와 같이 그냥 지내는 것이 좋다(고전 7:7,8).

각 사람이 부르심을 받은 그 부르심 그대로 지내라(7:20). 네가 종으로 있을 때에 부르심을 받았느냐, 염려하지 말라. 그러나 자유할 수 있거든 차라리 사용하라(주님 섬김에 이용하라)"(:21).

"형제들아 각각 부르심을 받은 그대로 하나님과 함께 거하라"(:24). "처녀《우리말 번역이 잘못되었으니, "처녀"가 아니라 남녀 불문 동정/貞(virginity) 상태를 의미》에 대하여는 내가 주님께 받은 계명이 없으되 주님의 자비하심을 받아 충성된 자가 되어 의견을 고하는 바 내 생각에는 이것이 좋으니 곧 임박한 환난을 인하여 사람이 그냥 지내는 것이 좋다.

"네가 아내에게 매였느냐, 놓이기를 구하지 말며 아내에게서 놓였느냐, 아내를 구하지 말라. 그러나 장가가도 죄 짓는 것이 아니요 처녀가 시집가도 죄 짓는 것이 아니나 이런 이들은 <육신에 고난이 있을 것이니> 나는 너희를 아끼는 것이다.

"형제들아, 내가 이 말을 하니 때가 단축하여진 고로 이후부터 아내 있는 자들은 없는 자같이 하며, 우는 자들은 울지 않는 자같이 하며, 기쁜 자들은 기쁘지 않은 자같이 하며, (물건을) 매매하는 자들은 없는 자같이 하며, 세상 물건을 쓰는 자들은 다 쓰지 못하는 자같이 하라, 이 세상의 형적은 지나감이다. 너희가 염려(심적 분요/갈등) 없기를 원한다(주님을 섬기는 일에).

"장가가지 않은 자는 주님의 일을 염려하여 어찌하여야 주님을 기쁘시게 할꼬 하되 장가간 자는 세상 일을 염려하여 어찌하여야 아내를 기쁘게 할꼬 하여 마음이 나누이며, 시집가지 않은 자와 처녀는 주님의 일을 염려하여 몸과 영을 다 거룩하게 하려 하되 시집간 자는 세상 일을 염려하여 어찌하여야 남편을 기쁘게 할꼬 하는 것이다.

"내가 이것을 말함은 너희의 유익을 위함이요 너희에게 올무를 놓으려 함이 아니니 오직 너희로 하여금 이치에 합하게 하여 분노함이《"분요(심적 갈등)함이"의 잘못된 표기》없이 주님을 섬기게 하려 함이다. 누가 자기의 동정《"처녀 딸"이 아님》에 대한 일이 이치에 합당치 못한 줄로 여길 때 혼기도 지나고 그같이 할 필요가 있거든 마음대로 할 일이다. 이는 죄 짓는 것이 아니니 결혼하라.

"그러나 그 마음을 굳게 하고 또 부득이한 일도 없고 자기 뜻대로 할 권리가 있어 그 처녀 딸을 머물러 두기로《자기 동정을 지키기로》 마음에 작정해도 잘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처녀 딸을 시집보내는 자도 잘하거니와 시집보내지 아니하는 자가《자기 동정을 지키지 않음도 잘하거니와 자기 동정을 지킴은》더 잘하는 것이다"(ㅡ:38).

세상에! 자기 처녀 딸의 혼사/婚事를 부모가 결정 간섭하다니! "하나님 믿는 자들은 모두 이렇게 미개야만인의 생각도 하는 것들인가" 하지 않겠는가! 성경 번역자들이 이런 양식/良識 하나도 갖추지 못했으니!

성경에 "종으로 있을 때 믿음에 들어온 경우라면 향후 그 종노릇을 벗어나 자유인이 될 기회가 오더라도 그냥 종노릇을 계속하라는 뜻이니 자유인이 아닌 종의 신분이라는 부자유함 가운데에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는 특수 상황을 고려함이 하나님 섬기는 자로서 충분히 고려해 마땅하다는 논리다. 이 세상 삶이 목적이 아니고 하나님 섬김이 구원 받은 자의 제1차, 2차, 3차 목적이니까!

필자도 이 성경 대목을 읽으면서 혼자 지낸다는 바울 사도의 논리에 동조하고 그래서 88년간의 "독처"로서 동정을 지키고 있다. 생활상 불편은 그렇다 치고 어쨌거나 오늘까지 왔는데 또 한 가지는, "바울 사도의 충심 어린 권고를 나도 교회 앞에서 한다면 바울처럼 자신도 그러해야 즉 솔선 수범을 해야 하지 않느냐" 하는 생각도 들었던 것이다.

바울 사도는 당장 적그리스도가 문 앞에 이르고 환난 날이 당시 코 앞에나 닥친 것처럼 얘기하니 혹자 이를 바울의 착각이라 탓할지 모르나, 바울 등 사도들의 서신이 성경으로 인정된 만큼 모든 성경은 성령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이는 무슨 말이냐 하면 이러한 경우 예언적 요소를 반드시 지닌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 21세기 오늘날도 이 바울의 편지를 읽고 있는 것이 엄연한 현실일진대 우리에게는 딱 맞아 떨어지는 <예언>의 경고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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