샘 솟듯 하는 우리의 왕성한 기력/氣力은 하나님을 <기뻐하고 즐거워함> 자체에 있어(the joy of the LORD is your strength)(느헤미야 8:10)
영생을 못하니까 영생만 하면 된다는 그런 단순한 사고방식에 모두 사로잡혀 있는데 여기서 탈피하는 것이 화급합니다. 나부터 탈출했으면 다른 사람 탈출시키는 것이 시급합니다. 몸이 탈나면 병원부터 가는 것이 급하고 달리던 차가 고장 나면 차부터 손보는 것이 급선무이지 다른 데 신경 쓸 여지가 없습니다. 정상이 아니라 비정상이니까 우선 정상으로 돌려놓고 볼 일입니다. 그것이 순서입니다. 다른 모든 것은 차후의 일, 차차후의 일입니다.
지금 우리가 직면해 있는 상황이 그러합니다. 급한 일부터 서둘러야지 왜 엉뚱한 데에다 시간과 정력을 낭비할 것입니까! 불이 났어요! 불부터 끄야지요! 물에 빠졌으니 사람부터 건져 올립시다. 달리 무엇을 생각할 때가 아닙니다. 사람부터 구해 냅시다! 사람부터! 사고가 났으니 사고부터 수습합시다! 이것이 하나님 보시는 대로 세상을 보는 눈입니다. 제대로 사태를 인식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목 말라 물! 물! 하고 소리 치는데 왜 엉뚱한 것을 들이대어 주려는가요! 물을 주세요. 필요한 것은 물입니다. 즉 다시 나는(출생하는) 일입니다. 새로 창조되는 일입니다. 하나님의 애초 창조가 망가졌어요! 망가졌으니까 원상태로 회복되는 것부터 가 급합니다. 다시(거듭) 나고 새로 창조됨은, 단순한 <영생하는 방법>이 아닙니다. "영생"이라는 말 자체가 이 경우 자아중심의 욕심으로 통합니다. 아주 잘못 알고 있어요. <원상 복구>입니다. 인식부터 바꾸어야 해요. 이 점 아주 중요합니다.
이 둘이 같은 뜻이 아닙니다. 이 둘의 차이는 하늘과 땅입니다. 근본적인 것으로서, "세상 사랑"(요일 2:15) 즉 <세상 삶에 대한 애착>과,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및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는"(눅 14:26) 것 즉 <동물성 육체로서의 삶 자체를 부정하는 것>과의 엄청난 격차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애초 창조가 망가진 실상이 이 <동물적 육체>인 것입니다. 영원히 살도록 창조된 인간이 망가져 영생 못하게 됐으니 "영생·구원"이라 하는 것이지요. 거듭 강조하지만, 망가졌으니까 현재의 인간 상태와 세상 삶을 정상이 아닌 비정상으로 인식하는 것은 당연하고, 반면 "현재는 애초 창조된 과거의 모습 그대로다" 하고 믿는 이들은 그 생활 자세가 전자와 180도로 다를 것은 물론입니다.
성경에 기록된 대로의 하나님 말씀은 전자에 속하고 후자는 옛 에덴에서 아담 부부가 속은 그래서 죽음의 재앙을 자초한 바와 같은 사탄의 거짓말인 것입니다. 이 "마지막 때" 하나님이 명령하시는 바벨론 탈출은(계 18:4) 이 거짓말에서 벗어나는 것입니다. 아담과 에덴이 원래 초자연계의 영적 속성이었다는 사실이 이래서 중요하고, "영적 죽음"이라는 사탄의 거짓말이 얼마나 악랄한 것인지 오늘날 뒤늦게나마 까발려지는 의미가 큽니다.
인간이 그 원래의 창조된 하나님의 영광으로부터 무참히 <망가진 형태>가 현재의 이 동물성 육체인 것입니다. 인간고 즉 모든 고통·고난이 이 동물적 육체에 기인하는 것입니다. 망가진 것이면, 원상 복구가 시급하지요. 그래서 부득불 기초 교육부터 실시하는 구약시대를 거쳐 마침내 창조주 하나님 친히 인간 피조물이 되시기까지에 이르는 전무후무의 대사건으로 이 복구 작업이 이루어졌고 지금도 진행 중인데 이제 곧 끝날 시점에 위치해 있습니다.
이 때를 통하여 하나님의 무한 자비하심은 <바벨론 탈출>까지 명령하시기에 이른 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절박한 "시대 분별"(눅 12:56)입니다. 너도 나도 이 마지막 때 마지막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 전심전력을 다해야 하는 위급한 순간임을 피부로 절감해야 하는 것입니다. 원수 사탄의 속임수에 넘어가 모든 세상이 세상 술에 취하여 곯아떨어져 인사불성이 되어 있습니다. 저들을 위해 하나님께 부르짖어야 합니다. 흔들어 깨워 위험을 알려야 하는 긴박함을 우리 스스로부터 절감해야 합니다.
우리 자신부터 "사망의 잠"(시편 13:3)에서 깨어남이 화급/火急합니다. "깨어 있어 기도하라"(마 2641)고 명령하십니다.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다" 하신 당시는 주님의 고난 받으심 이전이기 때문이나 지금은 "성령으로 살아(주님 친히 각 사람 앞앞이 와 주시어 그 안에서 친히 그 삶을 살아 주시는) 성령으로 행하는"(갈 5:25) 때이므로 시대가 다릅니다. "성령으로 행함"이란, 주님과 이같이 "합하여 한 영"(고전 6:17)이 됨으로써 곧바로 주님 친히 "권능"(행 1:8)이 되어 계시기 때문입니다.
이 동물적 육체로 있는 나에게 과연 주님께서 계시느냐 여부는 앞서 여러 번 설명한 대로 "회개" 유무로 결정됩니다. 하나님의 살아 계심은 처음부터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됨"(롬 1:20)을 인하여 입증된 것이고 오늘날 3운법칙, 3위1체 법칙 등으로 이 21세기에 훌륭히 확인되신 바입니다. 곧바로 믿음으로 좌우되는 문제일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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