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1월 2일 일요일

믿음에 들어올 때의 "회개"가 구원 받았는지 여부를 가름한다 (2)

"회개"로써 하나님 앞에 "언약" 관계에 들어가면 죄 사하심이 되는 회개의 세례를 받게"(행 2:38ㅡ"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을 것")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는다" 함은 세례 요한이 예고한 대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령으로 세례를 주신다"(마 3:11)는 바로 그 의미입니다.


나 위하신 죽음과 부활을 이루어 주신 주님 친히 성령으로 내 안에 오심(이것이 "주님을 내 마음에 영접해 모심"임ㅡ"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ㅡ계 3:20)으로써 <나의 죽음과 부활>, <나의 죄 용서하심> 등 모든 것이 엄연한 <역사적 사건>으로서 성령의 선물을 받는 한 순간 내 안에 모두 성취/완성됩니다.

내가 회개를 하고 그 회개의 세례를 받는 것은 순차적으로 진행되는 단계를 거치지만, 성령 받음과 그 실제적인 의미는 이렇게 순간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세례 받음으로 죄 용서된 바탕에 성령 임하심이 아니라, 죄 용서 받음과 깨끗이 됨, 성령 임하심이 동시 한 순간에 이루어진다는 뜻입니다. 고로 회개가 진지하고 진실되지 않으면 아무것도 이루어지지 않는데, 이렇듯이 중요한 회개를 소홀히 함으로써 자기를 속이는 경우가 지금까지 거의 전부였던 비극적 현실이었습니다.

"믿기만 하면 된다"는 주장 하나로 이같이 끔찍하게 사탄에게 당해만 왔던 이 장장/長長 2천년 세월의 비극이었습니다. 주님께서 "돌이켜 어린 아이와 같이 되지 않으면 결단코(절대로ㅡ한 사람의 예외도 없이)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엄중 경고하신 대로. 지금 와서 생각하면 너무나도 <떨리는> 현실입니다.

'구원 받음'과 '성령 받음'을 나누어 생각하는 위험한 오류를 범하지 말아야 합니다. 구원 받음이 "거듭(다시) 남"이고 "성령으로 남"(요 3:3,5)입니다. '나 위한' 죽음과 부활을 이루신 주님 친히 성령으로 내 안에 오시어 나와 "하나"(요 10:30)되시고  "한 영"(고전 6:17)되심이 "성령의 선물 받음", "성령 세례", "성령으로 남" 등으로 일컬어지는 것입니다. 피조물로서의 인간(제2위)이 창조주(제1위) 하나님과 짝을 이루어, "하나"됨(제3위)이 곧 생명(영생)인 것입니다.

자기를 위하지 않는 "자기 부인" 이상 가는 도덕률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자아중심이 아니고 상대방 중심은 "선을 행함"이 나타나지 않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성경에 구원 받은 이들을 까닭 없이 성인/聖人(saints)이라 하는 게 아닙니다. 진정 세상의 성인이기에 가감 없이 묘사한 것일 뿐입니다.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화평함(원수를 원수로 갚지 않고 선으로 악을 이김)>과 <거룩함(자기 부인)>을 따르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님을 뵙지 못할 것이다"(히 12:14), 이 경고를 무시하는 그 누구든 천국 꿈을 미련 없이 접기를.

이런 <생명의 법칙> 하나만 보아도 후하시고 넉넉하시고 풍성하신 하나님이신데 인간을 일부러 고통을 주려고 현재와 같은 나약한 육체를 주실 리가 만무합니다. 앞서의 설명대로 생명의 법칙 따라 하면 여간해서는 죄를 지을 즉 자아중심으로 빗나갈 틈도 생기기 어려울 정도입니다. 모두가 다 현재의 삶에 100% 만족하게 될 것인즉 아쉬워할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일부러 시험해보실 작정으로 이런 동물성 육체를 아담에게 처음부터 주시지 않았다는 단정인 것입니다.

한 마디로 다시 결론 내려, 아담은 영생하는 자로 창조되어 신령한 몸으로 삶을 누리게 하셨으나 범죄함으로 이런 꼴이 된 것입니다. 한 가지만 더 얘기해봅시다. 이 지구상을 통틀어 "영적 죽음"이란 말을 제대로 설명할 사람이 있나요? <거짓말을 설명>하려는 부질없는 짓과 같지 않나요? 거짓말은 거짓말일 뿐이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입니다. 어른들도 입을 다무는데 초중고생 정도의 나이 아이들이야 오죽 하겠나요?

이해를 못해 설명을 못하는데 그것을 믿을 마음이 생기겠나요? "영적 죽음"이란 말을 알아먹어야 그 상대적인 의미의 생명을 음미하여 주님께 달려 나올 절박한 마음을 먹을 것인데? 결국 "회개" 없이 영생 하나만 욕심 내는 것 밖에 더 되잖아요. 아니, 어른이 되어서야 구원 받도록 성경에 무슨 정해진 바라도 있나요? 아니, 그런 하나님을 상상이라도 할 수 있나요? 죽음이면 죽음이지 왜 "영적"이란 말을 덧붙여야 의미가 통하도록 애당초 하나님이 죽음을 정하셨다고 죽음이 생겨나게 하셨다고 감히 상상이나 할 수 있더란 말인가요?

어린 아이라도 듣고 말씀을 이해하여 믿어 구원을 얻는 것이 <하나님의 만인간 구원>이 아닌가요. "영적 죽음"이라는 무식한 소리를 더 이상 꺼내지 말아서 하나님의 거룩하신 복음을 욕되게 하지 맙시다. 더 이상 사탄에게 휘둘리지 맙시다. 우리 하나님의 복음을 아름다움 그대로 진솔하게 세상에 전달하지 않음으로써 미칠 악과 재앙은 내 스스로 불러들인 것이라 결단코 피하지 못할 것입니다. 자업자득일 뿐입니다. "내 백성아, 거기서 나와 그의 죄에 참여하지 말고 그의 받을 재앙들을 받지 말라"(계 18:4).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서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어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에서 자신을 깨끗케 하자(고후 7 1)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좇아가노라(빌 3 12). 우리의 "거룩함"은 점진적으로 진행되는 작업이 결코 아닙니다. 성령 받아 모시는 순간 즉각적으로 이루어지는 "새 창조"에 속합니다.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라" 함은 은혜로 일단 이루어져 시작된 거룩한 삶을 중도에 그치지 말아서 유야무야로 끝내는 일이 없도록 즉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드러나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을 것인즉, 거하든지 떠나든지(죽든지 살든지)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 되기를 힘쓰라"(고후 5:9,10)는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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