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9월 15일 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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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아중심은 궁극적으로는 아니 그 본질이 "살인"이다(롬 3:13-15).

아담을 하극상으로 시해 (弑害)한 악령 사탄, 아우 아벨을 죽인 가인이 

그러한 예로서 자기만이 우주의 중심이라 착각함으로써다.

여기서 온갖 범죄 즉 살인, 증오, 시기, 다툼, 불화가 자행된다.

그렇다고 혼자 잘 되는 것도 아니다. 자기 수족 다 잘라내는 미련인즉

필경에는 자기도 죽고 살아남지 못한다. 결국 자살 행위이건만

욕심과 교만에 눈이 가리워 멀리 내다보려 하지 않으니 기 찰 일이다.


죄는 자아중심(selfishness)으로서 생명의 법칙과는 반대다.

생명의 법칙은 다름아닌 머리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한 몸됨의 이치.

창조주 하나님을 머리로 모시고 모든 피조물이 그 몸의 각 지체

각 부분 구실을 하여 높은 자, 낮은 자를 막론하고 평준화되어 산다.

아무리 꼬리같은 위치요 신분이라도 머리를 자기 소유로 하고 있어

머리가 자기를 섬기는 위치에 있으니 이것이 사랑으로 하나됨이다.


머리와 몸의 한 몸됨, 둘이 사랑으로 하나됨의 갑과 을 관계는

갑은 을을 위하고 을은 갑을 위하되 동시에 움직이기 때문에

동시성의 양면성이라 하는 것이다. 고로 자아중심에서는

머리이신 창조주의 나를 위하심이 가동될 수가 없는 것이다.

하고 싶어도 못하신다. 이를 가리켜 "진노", "저주"라 표현한다. 

자기 뜻대로 안한다고 화를 내어 해코지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어디까지나 법치, 법칙 따라 움직이는 공평무사 질서 확립 차원이다. 

따라서 죄는 하나님의 모든 창조를 여지없이 망가뜨려 무효화시킨다.


이런 법 준수에는 자유의지라는 말 그대로 양자 선택의 결정뿐이다.

법을 지킬 의지만 있으면 여하한 대가에도 지키는 것이다. 

마귀는 이런 것까지 인력으로는 어찌하지 못한다는 망언, 궤변으로

모든 인류, 거의 교회 전체를 속여 온 것이다. 인간의 자업자득이다.

하나님을 찾지 않고 그 말씀을 개밥의 도토리처럼 대접한 결과다. 

사탄만 나무랄 필요가 없다. 아담 역시 그런 경우라 이런 인생고다. 

오늘날 각성한 교회는 이런 점에서 철두철미 말씀대로 움직여야 한다.

더 이상 인위적인 신학에 놀아나지 말고 성령의 인도로 성경을 읽으라.



죄를 안짓는다는 것은 자아중심이 아니다 즉 나를 위하지 않고

오직  머리되신 주님을 위해 산다(빌 1:21,29/고후 5:15/롬 14:7-9)

다시 말해 머리를 위하고 그 지체된 나 자신이나 다른 누구를 위함이

없다는 기본 설정이 되어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서  

이웃을 위해도 그 지체를 움직이시는 머리 지시를 따라 하는 것이다.

아담이 자기의 분신이라 해서 여자의 말을 하나님보다 더 따른 불찰

그런 것은 용납될 수 없기에 "나보다 어느 누구를(부모, 배우자, 자녀)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하지 않다" 고 못을 박으신 것이다. 


그렇게 기본이 갖추어진 다음에야 거기 얼마나 진실되고 충성하느냐

여부는 차후 문제이니 그래서 열매도 30, 60, 100배 등 차이가 난다.

일단 열매는 맺고 있으니 정상 궤도에 진입해 있는 것이고

보다 좋은 100배 효과는 개인의 사랑의 열심에 죄우될 따름이다. 

사랑하는 자로서 계산해서 따지며 사랑하는 것은 있을 수 없고

(그것은 영락없는 자아중심이니까) 자기 최선을 다하는 것뿐이다. 

그러니 "죄 안짓는다" 할 때 이샹야릇한 척도를 갖다대어

"완전주의자"(perfectionist) 따위의 언어 유희를 농하지 말 것이다. 

그런 것은 모두 사탄으로부터 난 것으로 일종의 "말씀 혼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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