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2월 21일 금요일

경기장에서 달려가는 경주자는 우승의 일념뿐이다ㅡ바쁜 벌은 근심할 틈이 없다




하나님의 택하심

하나님의 택하심은 "미리 아심"(롬 8:29/11:2/벧전 1:2)에 근거한다.
무엇을 미리 아시느냐 하면 
우리의 자유 의지로써 우리 자신의 미래를 정함에서
긍정/부정적 양 방향 중 택일할 때
긍정적인 방향으로 향할 것을 미리 아시고
그 결정이 차질없이 수행되도록 미리 
조처해주신다는 의미이다. 그러므로 나는 내 자유의지로
믿고 하나님 사랑의 은혜로 구원된 줄 알지만
사실은 하나님의 택하심을 따라 된 것으로서
시종 일관 은혜가 작용하셨음을 확인하게 된다.
따라서 나는 나의 최선을 다해야 하는 것이 요체.
그래서 베드로는 "너희 택하심을 굳게 하라" 한 것(벧후 1:10).
말씀 순종에서 자기 최선을 다하지는 않고
마음과 뜻과 힘과 정성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함은 없이
"하나님이 나를 택하셨으면 구원될 것이고
그렇지 못하면 아무리 노력해도 구원은 불가능"이라는
마귀의 속삭임에 넘어가 자기 멋대로 생각함으로써
그 영혼을 망치는 이들이 너무 많은데 주의를 요한다.
성경을 일방적으로 풀이하는 오류를 범하지 않기 위해
성경을 전체적으로 조감(鳥瞰)할 수 있도록 
성경을 부지런히 읽고 살피는 것이 그래서 요긴한 것이다.

또 하나는, 구원된 자는 마땅히 "성인(a saint)"이
되어야 한다는 것은 성경이 강조하는 바로서
신약에서 60회 이상이나 나오는 단어이다.
성경의 "성인"과 일반적으로 이해하는 성인을
구분하려는 미련한 생각은 금물이다.
이미 강조한 바와 같이 방향은 대칭을 띠는 둘뿐이니까.
양자 택일이므로 선택의 여지가 없고 
한 방향으로만 몰입하다보면 자연히 맺어지는 결과다.
우리가 명심해야 하는 것은 하나님의 작품(창조)은
완벽하고 흠 잡을 데가 없다는 바로 이 사실이다.
우리의 구원은 새 창조이다. 바로 이에 해당한다.
하나님께 대한 사랑 없는 것은 회개하지 않고
하나님 앞에서 감히 변명, 핑계 대려는 생각뿐이라면
그 사람의 구원은 거짓이고 
"헛되이 믿는"(고전 15:2/고후 6:1) 것이다.
이런 것이 멸망길로 접어드는 자기 기만의 첫 걸음이 된다. 

"육신의 약함"(마 26:41)은 주님 안에 있기 전이고
주님과 하나됨에서는 "그리스도의 약함"(고후 13:4)뿐.
이것을 혼동하는 이들이 대부분인데 
성경을 가까이하지 않아 성령의 가르치심을 외면한 탓.
실제는 부정(不淨)하지 않은 것이라도 부정하다 여기면 
"부정하다"는 것이니(롬 14:14) 깊이 유의해야.
"믿은 대로 된다"는 말씀이 여기서도 통한다 할까.
나는 도저히 죄를 이길 수 없다고 여기면
얼마든지 주님 안에서 이길 수 있지만, 실제는
그 믿은 대로 이길 수 없는 것으로 나타나게 마련.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고전 10:12).
그러므로 섰다고 생각하는 것이 위험하다는 뜻이라 할까.
이에 대한 명쾌한 답은 "푯대를 향하여 달려가는"(빌 3:14)
자의 자세를 흐트러뜨리지 말라는 데에 있다.
현재 앞서거니 뒤서거니 달려가는 자에게는 
다른 생각을 할 여유가 도무지 없는 것이다. 
우승하겠다는 일념 외에는(고전 9:24).
세상 사람들이 "성공하기"(:25) 위해 절치부심하는데다
우리의 일을 견준 사실에 우리는 크게 각성할 일이다.
거저 주시는 은혜의 선물이라니까
안일한 태도로 임하는 것이 거의 전부라 해도 과언 아닌데   
부디 우리는 이 성령의 경고를 마음에 아로새길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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