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구원은 하나님의 양자됨(롬 8:15,23)
그러므로 죄와 진노와 죽음의 세상으로서
오직 구원되어 영생으로 회귀하는 것만이 목적인즉
모름지기 이 세상에 미련 두어 연연하지 말 것이며
오직 주님 기쁘시게 해드리기 위한 나날이 되는 것이
메시야 예수님 믿고 구원 받은 이 세상 여정(旅程)인 것이다
아담 범죄의 결과가 죽음만 아니라
아담을 죽인 살인자 마귀의 지배 통치 아래 있음인즉
이 저주 받은(창 3:17), 하나님 진노 아래 있는(시 7:31/마 3:7/요 3:36)
폐기된 이 세상을 "만지거나 맛보거나, 붙잡는"(골 2:21),
즉 사랑하여 살고파 하는 미련에 사로잡힌 자 화가 있다(요 12:25)
생명 아닌 죽음을 선호했으므로 그대로 영원토록 될 것이기에 그렇다.
우리 구원은 범죄 전 아담의 초자연계 몸(죽지 않는) 상태 환원인즉
아담처럼 또는 악령들처럼 범죄할 경우 똑같은 파멸임은 당연하다
단 우리 구원이 완성된 것이지 점진적이고 단계적인 것이 아니기에
십자가에 달린 채 회개한 강도가 넉넉히 구원되었음을 입증하신 것이
우리 구원은 범죄 전 아담의 초자연계 몸(죽지 않는) 상태 환원인즉
아담처럼 또는 악령들처럼 범죄할 경우 똑같은 파멸임은 당연하다
단 우리 구원이 완성된 것이지 점진적이고 단계적인 것이 아니기에
십자가에 달린 채 회개한 강도가 넉넉히 구원되었음을 입증하신 것이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을 것"(눅 23:43)이라는 약속이신 것
이전 차원을 완전히 넘어선 것이다
이것이 다시 출생함과 새 창조의 의미다
손바닥과 손등의 차원 문제다
옛 사람과 새 사람은 정반대다
이전에는 나 자신 위주, 본위, 중심이었다
그래서 거둔 것은 죽음, 멸망뿐이었다
이제는 100% 거꾸로 나의 상대를 위함이다
이것이 성경이 가르치는 생명의 법칙이다
너는 나를 보고 나는 너를 보고
따라서 너는 나를 위하고 나는 너를 위하고
이것이 물 흐르듯 하는 순리다
길을 두고 뫼로 가랴 길은 하나뿐이다
이 길 따라 일로매진 쭈욱 가면 된다
일백번 고쳐 죽더라도 길 따라 가라
좌고우면 없이 무조건 길 따라 가면 생명이다
예수님 믿는 것은 나 위하신 십자가 죽음을
믿음이니 <전적으로 나를 위하심>을 믿음이다
나를 위하심을 <믿으니까> 당연히 자연스럽게
나를 위하지 않는 것이다
따라서 내가 나를 위할 때 주님이 나 위하심을
믿지 않는 것이다 ㅡ 믿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믿음으로 나지 않는 모든 것이 죄"다 (롬 14:23)
죄의 개념을 정확히 정립할 필요가 있다
바로 이것을 믿지 못하면
"주님 나 위해 죽으심"을 아무리 믿어보아야
구원으로 연결되지 않는다는 점을 중시하시라 !
따라서 둘이 하나됨의 짝의 원리를 따라 더 다시는
나를 위해 살거나 죽는 것이 없어야(고후 5:15/롬 14:7-9)
예수님께서 성령으로 내 안에 오시어
내 몸이 성령의 전이 되는 것이다
내가 주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박혀 죽어
무덤에 장사지내진 것까지 믿음으로써
다시는 나 위해 죽거나 살거나 하는
자아중심이 없어야 주님과 내가 둘이 하나돼
구원이 이뤄지는 것이니
처음부터 이와 같이 내 목숨까지 미워하지 않고
나를 보내신 이의 뜻대로 십자가 짐(사형수 자체)이
없이는 그리고 자기의 모든 것을 버림이 없이는
그 누구도 영생은 꿈도 꾸지 말아야 하는 것(눅 14:7-9)
앞에서 지적했듯이 죄, 진노, 죽음의 세상인데다
죽음의 권세를 쥔 살인자가 왕노릇하는 이 따위 세상
연연해 하는 것 자체가 믿음 없다는 증명인 것이다
고로 진작부터 이 세상에서 없는 자, 약한 자, 천한 자
이들이 하나님 교회의 주류를 이루었던 것이다(고전 1:26-28)
메시야 예수님 믿는 것은 먼저 이러한 세상 실상부터
통감하는 것이니 그렇지 않고서 자기의 죄인됨을
실감한다는 것은 빈 말이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십자가 죽으심의 참혹한 광경은
내가 그렇게 죄인으로 죽는 것만 아니라
이 세상이 또한 그렇게 십자가에 못박혀 처단되는
광경이라는 사실을 처음부터 인식해야 함이니(갈 6:14)
십자가에 못박힌 세상에서 거지처럼 뒤적거리는 자
절대로 화려 찬란한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
천국은 걷어차버리고 넝마주이를 선호했기 때문ㅡ
죄인 인간과 이 세상 모두가 한데 겹쳐져
썩음 가운데 폭싹 꺼져 내려앉은 광경, 이 참상을
비로소 목도하는 것이 주님 말씀의 "눈 뜸"이다(행 26:18)
사막 한 복판에서 마귀의 속임수에 빠져
신기루만 보고 그것이 고대광실인 양 속아 왔으니
이 진실마저 깨닫지 못하고 구원 아무리 외쳐보아야
허공에 흩어지는 메아리일 뿐이다
실상을 실상대로 일러주는데도 곧이 듣지를 않으니
구제불능이라는 말은 이런 경우에 쓰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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