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2월 28일 금요일

무엇이 "예수님 믿는 것"인가














최목사는  주님이 하신 말씀 즉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주님, 주님 저희가 주님의 이름으로
선지자의 일을 하며 주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님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습니까 할 것이다"(마 7:22)를
두고 악령이 성령을 가장하여 행한 것을 가리키심이라 했는데
천만의 말씀. 악령이 속이는 것은 이 세상에서만 한한다. 이런 거짓은
사람이 이 세상을 벗어나는 순간 대낮같이 모든 것이 밝혀져
모든 속임수가 얼음 녹듯 사라지게 된다. 다 폭로가 된다는 뜻이다.
주님께서 말씀하신 것은 당시 능력을 행할 때는 믿음 충만하여
성령으로 행한 것을 인정하심이다. <그 후에 마음이 변하여>
자아중심이 되어 "의를 사랑 않고 불법을 행함"을 의미하신 것이다.
이런 사람들은 현재의 자기 처지를 시험하고 확증 않고(고후 13:5)
과거의 행적, 믿음, 능력 등등을 의존하고 심판대에서까지
자기 기만에서 벗어나지 못한 탓이다. 무서운 일이다. 
성경의 경고는 "섰다고 생각하는 순간 조심하라"(고전 10:12)이다.
너무나 안일한 자세로 방심하고 있다. 극력 경계할 일이다. 
믿음에는 왕도가 없음을 명심하시라. 
항상 초보, 초년, 처음 단계의 겸허한 자세로 일관할 일이다. 
바울 같은 대사도도 교만할까 하시어 육체에 가시를 주셨다(고후 12:7).  


이런 일화가 있다.
6.25 전쟁 당시 낙동강 전선을 겨우 형성하여 대구가 위태하던 때
어떤 목사의 성경 강해가 충실하다는 소문이 나서 인근각지 교파 초월해
사람들이 몰려들어 그 목사가 교수로 있던 신학교에 그리고 
그가 담임하던 교회에 와서 "많은 은혜를 받았다" 하던 시절.
6.25 맹장 중 하나인 모 장성이 일요일 예배 때에
그 목사 교회를 일부러 찾아 왔는데 목사의 명성이 높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때마침 그 교회에 나오는 걸인풍의 한 남자 교인이 있어
그 목사는 그 두 사람을 서로 인사를 나누도록 만들었다.
목사가 시키니까 그 장성도 얼떨결에 악수를 했지만 
그 후로 그 장성은 두 번 다시 그 교회에 나타나지 않았다.
군인이 믿음이 있기로 얼마나 있겠는가. 
그 목사는 모든 믿음의 형제들은 서로 사랑하여 
신분의 귀천이 없다는 것을 일부러 강조하여 그랬겠지마는
그 장성으로 말하면 구원 받았다 치더라도 한참 어린아이다.
아니라면 이제 갓믿어보려는 구도자의 심경일 수도 있다.
그런 처지에 있는데 젖밖에 모르는 아기에게 어른이 먹는 밥을
억지로 퍼넣어주는 꼴이 됐으니 썩 지혜롭지 못한 처사였다.
그런 일이 없었던들 그 장성은 그 교회에 자주 나와 성경을 배우고
믿음을 얻게 되었을지도 모른다는 판단이다. 애석한 일이다.

최목사는 어릴 때부터 성경을 통독할 정도로 비범했고
그 후로 여러가지 신비한 능력도 나타냈었고, 
기도 응답이라든가 각종 능력을 많이 드러냈었다. 
그는 평소에 악령이 성령으로 가장하여 
각종 성령의 은사를 나타내는 것을 거짓된 것이라고 
바로 지적해주는 것으로써 정평이 나 있던 인물이었다.  
거짓을 거짓인 줄 안다고 해서 그것이 참이라는 증명, 증거는
될 수 없다는 교훈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하는데
그렇다고 현재의 정보로는 최목사를 비판할 생각은 없다.
다만 그런 것으로써 사탄이 연극을 꾸밀 수도 있다는 것을 
우리가 유념해 둘 필요가 있다는 것만 상기시키는 것이다. 
예컨대 "방언"을 하는 동일한 장소에서
"저 방언은 마귀의 방언, 이 방언은 성령의 은사" 식으로
말해준다고 해서 그 분별이 성령으로 난 것이라고
절대로 속단, 과신하지 말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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