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2월 12일 수요일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줄 것이다"(계 2:10)


여기서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영생은 이미 얻어놓았으니까 
"상급/
의 면류관"쯤 되는 줄 알았는데
"생명" 즉 "영생의 면류관"인 것이다. 
다시 말해 구원은 3단계로서
첫째, 시작. 둘째, 진행. 셋째가 종결.
여기서 말씀하시는 "면류관"은 종결인 것이다.





거북선은 국가에서 일푼도 지원해주지 않았다.
신립 같은 사람은 중앙에 앉아 반대하며 방해까지 했었다.
이공 순신 스스로 결정해서 단독으로 3척이나 건조하여
한산섬 대해전에서 종횡무진, 좌충우돌로 활약하게 하여
적의 예봉을 꺾고 완전히 기를 죽여놓은 것이다.
여기서도 이공의 위대성이 돋보인다.
이공의 자주 독립정신. 주인의식이다.
임금이 아니지만 무관[無冠]의 임금으로서 전쟁을 이끈 그 공로는
만대의 귀감, 사표이다. 


이공 순신이 만일 전란이 나지 않은 태평 시대 인물이었다면?
"외고집쟁이", "불우한 사람", "널푼수 없어 가족 굶겨죽이기에
딱 알맞은 사람", "복 없는 사람" 등등의 동정 반, 비난 반의 소리를
들어가며 음지 속의 인물로 소리소문 없이 생을 마쳤을 것이다.
상사의 비리에 동조하지 않은 결과로 두 번이나 좌천당하며
두고두고 그들 악인들의 미움을 받아 그 장래가 막혀 전란 전에는
미관말직으로만 전전하였던 원인이 되었고 그 증거가 되고 있다. 

우리로 말하면, 그 태평시대가 바로 이 세상을 가리키는 것이며
전란은 바로 영원 생사를 가름하는 보이지 않는 현실의 실상을
상징함이라고 보면 충분한 비유가 된다고 하겠다.
이 세상 삶을 상징하는 원균은 전란 중 항상 모자라기만 하는
휘하 사병들의 군량미까지 긁어모아 뇌물로 만들어 
왕과 인척 관계에 있는 중신과의 인척간임을 이용하여 
그들에게 부지런히 상납한 덕분에(전투는 나몰라라 이공만 의존) 
벌써 오래 전 군법회의 회부감이 되어 처형되어야 마땅했으나
모면할 뿐더러 외려 이공 대신 통제사까지 됐다가 
우리 수군 전멸을 시키면서 자기도 도망가다 잡혀 죽었으나
당당히 전사자로 대우 받아 이공과 나란히 선무일등공신이 되는
역사의 최대 오점 중 하나를 만들어준 장본인이 된다.
("조선은 뇌물천하였다"란 책도 있듯이 아는 사람은 알고 있지만 

지금 이 나라는 결국 뇌물로 망해 가고 있는 중이다)
뿐아니라 후세에 이르러까지도 "영웅"이라 떠받드는 자들까지
생겨 그 북새통에 이공 순신을 폄훼하기까지 하는 오늘이다.
소위 "팔짜" 잘 타고나면 죽어서도 아니, 수백년이 흘러서도
멍텅구리 사학자들에 의해 추모(追慕)되는 마귀 관할의 세상.

옳은 소리 하면 세례 요한처럼 되고마는(막 6:17-27) 세상. 
고로 세상에 올바른 소리 하는 사람 적다는 것은 이상하지 않다.
하물며 하나님의 의를 전파하는 사람들이 무사하기를 바라리요.
때문에 "나로 인하여 실족하지 않는 자 복 있다"(마 11:6) 하신 것.
의인들이 대우 받기커녕 핍박 당하고 비참한 죽임을 당하니까.
이 세상이 아담 범죄로 마귀 관할이 되어버렸다는 증거다. 
이런 세상에 애착을 가지는 자(살고자 하는 자)  화가 있을 수밖에.
이런 악(멸망)의 구렁텅이에서 구원되는 것만이 유일의 가치다.
그래서 주님은 "내 능력은 약한데서 온전해진다"(고후 12:9) 하셨다.
고로 바울처럼 "약한 것을 자랑할"(고후 11:30/12:5,9) 줄 모르거든 
아예 복음의 일꾼되기를 포기할 일이다. 
이런 사람은 영생도 무자격임을 성경은 증언하고 있으니,
"두려워하는 자들"(계 21:8)은 "믿지 않는 자"들과 동일시되기 때문.
여기서 "두려워한다"는 "부끄러워하고"(막 8:38) 용기를 못내는 것.
영어로 timid, coward로 표현된다. 구원의 3단계에서 

'시작'은 했고 '진행'중이나 끝내 '종결'에는 이르지 못하는 경우다.

이공 순신은 그 "난중일기"에 
"뇌물이면 죽은 사람도 살린다"고 적어
당시 세상을 한탄하였다.
전란 중에도 정신을 못차리고 뇌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던 권력자들.
이런 무리들의 자아중심이나
원균의 자아중심이나
나의 자아중심이나
자아중심은 매일반.
그 사악함과 비열함을 어디서나 목도할 수 있는 것.
우리는 이들의 자아중심을 흉보며 비난하자는 게 아니라
그들의 자기 중심을 하나님 중심으로
우리의 머리이신 "마지막 아담" 중심으로
전환하도록(구원받도록) 하려는 것.
이 전환은 회개하면 되는 각자 소관사.
그래서 우리는 <참고 기다려주는> 인내가 필요한 것이니.
그래서 "참고 선을 행함"(롬 2:7)이다.
원수 사랑도 이런 인내의 일환이다.


나중에 원균 등이 부추겨
통제사 직을 박탈 당하고
서울로 압송되어 고문으로 초주검을 당하기 전
한 지인이 이공과 철창 너머로 대화하면서
"뇌물만 쓰면 풀려날 길이 있다"고 속삭이자
이공은 의연히 대답하기를,
 "명은 하늘에 있으니 죽으면 죽는 것이다" 하고
일언지하에 거절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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