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2월 7일 금요일

적그리스도 등장에 임박해 3위1체의 법칙과 3운법칙의 상호검증(독보적 자체 검증)을 알려주신 주된 이유





   
   읽을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은 
두 번, 세 번, 몇 번이든 읽을 필요가 있습니다.
성경이 그러합니다. 그리하여 우리 자신을 
세뇌/(洗腦)시킬 필요가 절실한 오늘날입니다. 







3운법/3위1체 법칙에 의해 만물이 짝으로 되어 있음과
처음부터 자연계와 초자연계가 병존해 있음이 확인되어
사람(아담)을 지으실 때 역시 양면(대칭)이 되게 
육체(자연계)와 영혼(초자연계/반(反)물질계)으로 만드셨고
이에 걸맞게 육체도 자연물질계 속성과 반물질계 속성을
겸하여 나타내는 초자연계 몸이 되게 하심이 확증된 것.
(초자연계 속성인 영물은 그래서 자연계 육체로도 변환
남성이 되어 인간 여성과 결합해 네피림을 생산한 것임)
(예수님도 초자연계 몸으로 부활하셨으나 동시에
자연계 몸임을 제자들에게 확인시키셨음-눅 24:39)

성경을 모르는 과학자들은 반(反)물질세계가 이 우주 저너머
어디엔가 반드시 있을 것이라 추단한다지만 
양자역학의 "양자얽힘"에서 보인 그대로
각자 따로 분리돼 있는 것이 아니라 말 그대로 "짝"이므로
둘이 하나가 되어 있음을 알아야. 즉 "양면성의 동시성".
완전한 독립성(고로 성질은 정반대)은 유지하되
'둘'이 아닌 '하나'로서 존재하니 둘은 본질이 같기 때문.
같기 때문에 자연계 속성/초자연계 속성 <상호> 변환 가능.

이렇듯 변환될 수 있으므로 선악과나무 열매 먹는 것 금하심.
먹으면 아담의 자연계 속성초자연계 속성의 몸이 
초자연계  속성→자연계 속성으로 역전, 
이전 흙(물질)으로 창조된 상태로 환원되어버리기에 그러함.
생명과나무는 초자연계(반물질계) 속성을 상징한데 비해
자연계(물질계) 속성을 대변하여 상징하고 있었기 때문.
선과 악(좋고 나쁨)을 안다는 것은 자연계 물질의 육체로 된
자연계 동식물이 나타내는 기계적 장치의 고차원의 지식.
다시 말해 피조물이 나타내는 "창조주의 지식"인 것이다.

그러나 아담이나 인간이나 자연계 몸이 되었다 해서 
그런 지식을 나타낸 것이 아니니 정상이 아닌 비정상으로
자연계 물질의 육체로 고착화된지라 외려 퇴보된 것.
때문에 개, 말 등 동물들은 초자연계 존재가 자연물질로 변환된
영물(가령 UFO로 가장(假裝) 변환된 악령)을 오관으로 인식하나
인간은 전혀 그렇지 않음. 그런 자연계 육체의 기능이 아닌
초자연계 기능을 작용시키도록 처음 창조된 때문이다. 
그런데 초자연계 육체를 완전 상실한 채 
자연계 육체의 돌연 변이를 일으키니 둘 다 작동 불가능인 것.
인간이 영물(靈物)과 달리 이중 구조(처음은 자연계 육체)로
창조된 것은 자연물질계와 초자연 반물질계 모두에 속하여
명실상부하게 양세계의 주인으로서 다스리기 위함이었다. 

오늘날 보는 바와 같은 인간의 비극적 참상 즉 인간고는
아담이 이와 같이 창조주 하나님께 불복, 불순종하여 
범죄함으로써 빚어진 결과이니 그래서 죄문제
(머리되시는 하나님의 지시를 따르는지 여부) 외에
가장 큰 당면문제가 없는데도 이 세상 지배자 마귀가
거짓으로 둘러대어 엉뚱하게 구원문제만 부각시킨 것. 
선과 의(복종), 또 죄(불복종)에 대한 당연한 진노/저주는,
법칙 준수와 이 법칙을 따르지 않음에 대한 응분의 역효과
이 외에 달리 의미가 없는 단순 논리인 것이다. 
이 간단한 이치를 마귀는 갖가지 복잡다단한 것으로 
떠벌이고 떠벌려 온 것이 오늘날까지의 행티이다. 

"구원"은 구약시대 율법을 통하여 하나님의 진노를 학습한
유대인 대상인 것이다. 이런 사전 교육을 받지 못한 이방인은
가장 먼저 이 죄문제를 숙지 않는 한 "구원"은 그림의 떡이라
이방인 상대로 바울은 회개를 명령하셨음을 전한 것(행 17:30).
빌립보 간수(16:31)에게 "믿으면 구원"이라 해준 것은
이미 하나님의 위엄 앞에서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됨을 
본성으로 깨닫고 죽음을 절감해 "구원"을 그 심령 깊이
절규하고 있었기에 그 스스로 사도들에게 매달린 결과였다.
고로 죄의 참혹한 결과인 현장 학습부터 제대로 시켜야ㅡ. 
이 세상의 인간고가 바로 그 현장이 아니고 무엇인가. 
마귀는 마치 장미빛 삶의 현장처럼 속여 온 것이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