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1월 7일 토요일

이기주의(자아중심)와 "나도 위하고 너도 위하고 우리 모두를 위함"과의 쉬운 식별법

 








내가 주님의 이름으로 주님과 그 복음을 인하여

당하는 모든 고난 고통은 하나도 허투로 돌아가지 않고

반드시 비교도 안될 정도의 크나큰 영광으로 전환되어

나타나게 되어 있음을 약속하셨으니 약속대로 됩니다(고후 4:17).

나를 위하지 않는다는 것은 무슨 대단한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나를 위하는 가장 좋은 방법(법칙)을 따름일 뿐입니다.

<나를 위하는 것>과 <이기적인 것>과는 다릅니다.

이기적인 것은 나만을 위하고 남은 아주 도외시하는 것입니다. 

여기서의 "나를 위함"은 나와 남을 곧 우리를 동시에 위함입니다.

이것이 성경에서 말씀하시는 "자기 부인"의 참 뜻입니다.


나를 위하면서도 나를 위함이 아니고

나를 위하지 않으면서도 실상은 나를 위하고ㅡ

이것은 불교 교리의 아리숭한 논법이 아니라

짝의 법칙의 논리입니다. 불교는 짝의 법칙 논법을 모방한 것.

모방해도 핵심적인 것은 빼어 버려 알맹이가 없도록 한 것.

인과율을 말하면서도 제1원인인 창조를 부정함이 그 단적인 예.


짝의 법칙은 "양면성(둘이 짝인즉)의 동시성(둘이 하나인즉)"입니다.  

갑, 을이 짝인즉 갑이기도 하고 동시에 을이기도 하고

또한 갑/도 아니고 동시에 을/도 아니고ㅡ그래서 별개의 병/ 행세.

서로 상대하는 것끼리의 작동 현상인즉 "동시성의 상대성"이기도.  


사탄은 "나를 위하는 가장 좋은 방법"을 버렸으니

그 교만이(딤전 3:6) 그와 같이 한도 없이 어리석게 만든 것입니다. 

교만이 모든 악한 자를 걸러내는 함정, 덫, 올무입니다. 

"돌이켜 어린 아이같이 되어야"(마 18:3)ㅡ아이는  교만이 없습니다. 

부단히 조심 또 조심ㅡ"선 줄 아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고전 10:12) .

얼음판을 걷는데는 왕후장상(王侯將相)이 없어ㅡ왕도(王道)가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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