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담이 좌/左하면 우리도 左하고, 우/右하면 우리도 右합니다.
이것이 아담의 아담된 특성입니다. 즉 아담의 닮은꼴인 것입니다.
이 닮은꼴 이치로써 우리도 영생하게 되니 이것이 "구원"입니다.
"그리스도가 이런 고난을 받고 자기의 영광에 들어감"과 같이
반드시 이 순서를 따라야지, 그렇지 않으면 모조리 탈락입니다.
아담이 "먼저 영광(영생), 나중 고난(죽음)"이기 때문에 그 대칭은
"먼저 고난, 나중 영광"이니 이 질서는 불변이기 때문입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억지로 "먼저 영광"을 고집하여 망한 것입니다.
오늘날도 많은 사람이 "먼저 영광"을 고집하다가 망합니다.
대칭(對稱) 아담이시니까 아담과는 성질이 "거꾸로"(도치/倒置)입니다.
3운법칙에서의 3x19=57, 19x3=57의 도치와 똑같습니다.
주님께서 세상에 다시 오시는 그 때에야 "나중 영광"이지
지금은 여전히 한결같은 "번저 고난"이니 성급히 서둘지 말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서둘다가 망했고 모든 죄악은 이 서두는 조급함입니다.
인내가 없습니다. "인내로써 우리 앞의 경주(競走)를 경주하고"(히 12:1)
"성경으로부터 얻는 위로"(롬 15:4)는 이 인내가 주를 이루는 것이며
"인내로 결실하고"(눅 8:15),
그리함으로써 구원의 종착지에 이르기 때문입니다(21:19).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으니 여기서 됐다는 인정하심을 받아야
주님께서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이니
이 인내는 그 근원적 속성이 사랑에 있는 것"(약 1:12)입니다.
즉 "영생은 하나님을 사랑하여 순종하는 자"에게 있습니다
(약 1:12/롬 8:28/요 14:15,21,23,24,/21:16,17).
사랑은 그냥 막연히 좋아하는 감정이 아닙니다.
법칙대로 행함이니 사랑과 생명의 법대로 따름 즉
오로지 나는 너를 위하고 너는 나를 위하는 한 몸됨의
둘이 하나됨임을, 머리와 몸의 한 몸됨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나는 주님의 것으로서 내 마음대로 하는 내것은 없습니다.
그대신 나는 주님 자신께서 내것이라 주님의 모든 것이 나의 소유로서
그 때문에 내가 영생하는 구원인 것입니다.
주님의 영생이 내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주님의 순종(하나님께의)이 내 순종이 아닌 것이니
생명의 법칙의 근간은 짝의 법칙의 "상대성의 동시성"이라
쌍방이 똑같이 움직여 내가 주님 위하지 않으면(순종함이 없으면)
주님도 나를 위하심이 불가능해지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위하시려 해도 위하실 수가 없다는 뜻입니다.
때문에 구약 말씀에서도 이 원리원칙을 따라
"우리가 하나님을 제약, 한정시킨다(to limit)"(시 78:41) 했으니
우리말 번역 "격동했다"는 오역입니다.
Biblegateway 53개 영역 중에서 흠정역(KJV)을 비롯한 14개처만
위의 뜻으로 제대로 번역하고 있는 것은 번역자들이 생각할 때
인간이 어찌 감히 하나님을 "제약 또는 제한"시켜드리겠느냐라는
논리만 앞세운 것으로서 사랑과 생명의 법칙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우리를 축복하시고자 하는 손길을 막는다는 뜻입니다.
우리의 불순종이 그와 같이 하나님의 은혜의 손길을 묶는다는 뜻.
이것이 사랑과 생명의 "상대성의 동시성"인 것입니다.
함께 똑같이 움직이는 것으로서 일방적으로 되지 않는다는 이치.
몸은 말을 안듣는데 머리가 아무리 몸 위해 지시내려 보아야
무위롤 돌아간다는 것이니 바로 그렇게 말 안듣는 것이
암적 존재라 암은 전이되어 전체를 망치므로 제거될 수밖에 없습니다.
순종은 외면하고 영생만 욕심내게 만든 것이 오늘날까지의
일반적인 자아중심의 기독교 교리, 사탄의 교리였습니다.
이런 교회가 자기 부인, 십자가 짐을 역시 외면함은 당연합니다.
소위 "대신 죽으심"이 그런 억지 교리의 전형입니다.
일방적인 사랑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상식이 있는데도, 억지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상식을 초월하시기 때문이라는 궈변을 늘어놓으나
상식은 이성적 판단을 말하는 것이고 양심처럼 하나님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면 그 말씀을 알아들을 수 있는 것이 바로
이 상식이 있기 때문인데 상식을 무시하고선 언어 자체가 불통입니다.
따라서 상식에서 벗어나는 말씀을 하실 리가 없는 것이며
거짓은 대개 이 상식을 무시하는 데에서 출발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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