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3월 2일 월요일

차례대로의 성경 묵상 (1)

 


하나님은 '3위1체'의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은 3위1체로서 계시기 때문.
3위1체를 설명하면? "성부, 성자, 성령의 이름"(마 28.19)이 그 대표적 인용구다.
"독생자를 주셨다"(요 3.16) 했으니, 하나님은 부자지간이시다.

그러면 "성령"은 누구시냐. 성부와 성자께서 "하나"(요 10.30)로서 계시는 "이름"이시다. "하나"라 하신 대로 '3인칭 단수'로만 지칭되시고(요 14.26) '복수'로 지칭되시지는 않는다. 또 "우리"(:23)라고도 주님은 말씀하셨다. (창 1.26) 참조.
성자께서는 성부의 "형상"(고후 4.4)으로서의 역할이시기 때문에 "성령"이실 경우 독생자 하나님을 가리킨다. 즉 성령으로 계시는 사람 예수님이시다. '육체를 가지신 하나님'이 '성령'으로 계심이므로 성령으로 역사/役事하실 때 영으로써만 아닌 육체이신 사람으로 하심과 똑같으신 특이점을 우리는 유의해야 한다.
그러나 주 예수님은 지난 날 "육체에 계셨을 때"(히 5.7)나 지금 성령으로 계실 때나 한결같이 성부 하나님과 "하나"로 계심에는 불변이시다.
우리가 "성령의 선물"을 받아 모실 때 나와 영구히 "한 영"(고전 6.17)이 되신다. 그러나 내가 결코 용서가 될 수 없는 범죄를 할 수 맀으니("누구든지 형제가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죄> 범하는 것을 보거든 구하라. 그러면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범죄자>들을 위하여 그에게 생명을 주실 것이다. <사망에 이르는 죄>가 있으니 이에 대하여 나는 구하라 하지 않는다"ㅡ요일 5.16) 곧 "짐짓 범하는 죄" 즉 고의적인 범죄 행위다. 이 경우 영구적 파탄이다.
의도적인 범죄를 히브리서에서 저새히 밝힌다. "우리가 진리를 아는 지식을 받은 후 짐짓 죄를 범한즉 다시 속죄하는 제물이 없고 오직 무서운 마음으로 심판을 기다리는 것과 대적하는 자를 소멸할 맹렬한 불만 있을 것이다. 모세의 법을 폐한 자도 두 세 증인을 인하여 불쌍히 여김을 받지 못하고 죽었거든 하물며 <하나님 아들을 밟고 자기를 거룩하게 한 언약의 피를 부정한 것으로 여기고 은혜의 성령을 욕되게 하는> 자의 당연히 받을 형벌이 얼마나 더 중하겠느냐, 너희는 생각하라...살아계신 하나님의 손에 빠져 들어가는 것이 무서울진저"(히 10.26-31).                  (계속)

2026년 3월 1일 일요일

<보이는> 것은 '썩음'의 '잠깐'이나 정작 영원한 가치는 <보이지 않는다>

 


"누구든지 이 음란하고 죄 많은 세대에서 <나와 내 말을 부끄러워하면> 인자도 아버지의 영광으로 거룩한 천사들과 함께 올 때에 그 사람을 부끄러워할 것이다"(막 8.38). 왜 하나님과 그 생명의 말씀을 부끄러워하나? 왜 그런 말씀을 하셨나? 세상이 악령들에게 속해 그 지배 아래 있기 때문이다. 사탄의 세상이라 "마지막 아담"과의 적대 관계에 있어 전쟁 중이기 때문이다. "발꿈치를 물리고 머리를 으깨어버리는 사생결단의 전쟁 중이기 때문(창 3.15). 아담 범죄가 불러들인 재앙이다. 그리하여 인생 삶의 터전이어야 할 세상이 적진, 적지가 되어 있어 그 원수의 점령하에 탈환전을 벌이고 있는 와중이다. 승리의 기틀은 마련했으니 곧 독생자 하나님 친히 "마지막 아담"이 되신 것이다. 따라서 다시 오시는 그 때, 그 날, 그 시간부터 우리의 최후 승리로서의 종전이다. 영원무궁 우리의 세상, 인간 세계다.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의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신다. 위의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치 말라.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취었음이다. 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그 때에 너희도 그와 함께 영광 중에(영광의 신령한 몸으로) 나타날 것이다.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다. 이것들을 인하여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신다. 너희도 전에 그 가운데 살 때에는 그 가운데서 행했으나 이제는 이 모든 것을 벗어버려라. 곧 분냄, 악의, 훼방, 너희 입의 부끄러운 말이라 너희가 서로 거짓말을 말라. 옛 사람과 그 행위를 벗어버리고 새 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자의 형상을 좇아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받음이다.

"오직 그리스도는 만유시요 만유 안에 계신다. 고로 너희는 하나님의 택하신 거룩하고 사랑하시는 자처럼 긍휼, 자비, 겸손, 온유, 오래 참음을 옷입고 누가 뉘게 혐의가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님께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 이는 온전하게 매는 띠이다.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평강을 위하여 너희가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으니 또한 너희는 감사하는 자가 되라.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마음에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또 무엇을 하든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골 3.1-17).

여기서 '인내'가 관건이다. 견디고 참는 자가 최종적인 승리자다. 그렇지 않고는 전연 가망이 없다. "믿음"을 끝까지 붙들고 사수하는 인내다. 다시금 반복하지만 여기 이 세상은 적의 관할/지배 아래 있어 적의 통치를 받고 있으니까! 주님만을 너무 사랑하여 오로지 충성하니까! "그러므로 생명을 사랑하고 좋은 날 보기를 원하는 자는 혀를 금하여 악한 말을 그치며 그 입술로 궤휼을 말하지 말고 악에서 떠나 선을 행하고 화평을 구하여 이를 따르라"(벧전 3.10,11). "누가 말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 같이 하고 누가 봉사하려면 하나님의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 같이 하라. 이는 범사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니 그에게 영광과 권능이 세세에 무궁토록 있음이다"(벧전 4.11).

"말할 수 없는 탄식(신음)" 기도의 이유

"이는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저들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이를 저들에게 보이신 것이다.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됨이니 그러므로 저들이 핑계치 못한다.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으로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치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음이니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우준하게 되어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 금수, 버러지 형상의 우상으로 바꾼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저들을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어버려 두시어> 저들의 몸을 서로 욕되게 하셨으니... 또한 저들이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므로 하나님께서 저들을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어버려 두셔서> 합당치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롬 1:19-28).


두려운 사실은 <언제까지나 하나님이 기다려 주시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반성하여 돌이킬 수 있는 기회와 때를 넘기면 하나님 친히 모든 길을 차단하시고 봉쇄해버리신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그 회개의 때를 넘기게 되면 그를 멸망시키시기로 작정하시게 되어 오히려 죄 짓게 만드신다는 것. 멸망을 당하도록 만드신다는 뜻. 구제 불능의 악인으로 분류하셨다는 의미가 된다. 여기에 성령으로 계시는 주님의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심"(롬 8:26)이 있게 되는 것.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리신"(히 5:7) 것도 그 때문이다. 교회사상 "역사하는 힘이 많은 의인의 간구"(약 5:16)는 이러한 기도였던 것임은 역사 곧 그들의 일대기가 증언한다. 그들의 기도 장면을 목도한 이들은 예외 없이 그 현장예 더 이상 남아 있지 못해 뛰쳐나오다시피 하여 벗어났던 것이다. 당시 30대 찰즈 피니의 미국 대부흥역사에서 7년간 기도자 역할을 한 50대 나이의 대니얼 내쉬(Daniel Nash) 목사가 그 중의 하나였다. 





 

신약성경에 나오는 기도 관련 언급의 장절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며 떡을 떼며 기도하기를 전혀 힘썼다"(행 2.42).

"우리는 기도하는 것과 말씀 전하는 것을 전무할 것이다"(6.4).
"교회에서 장로들을 택하여 금식 기도하며 저들을 그 믿은 바 주님께 부탁하고"(14.23).

"밤중쯤 되어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미하니"(16.25).

"내가 그의 아들의 복음 안에서 내 심령으로 섬기는 하나님이 나의 증인이 되시거니와 항상 내 기도에 쉬지 않고 너희를 말하며"(롬 1.9).

"소망 중에 즐거워하며 환난 중에 참으며 기도에 항상 힘쓰며"(12.12).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고 성령의 사랑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권하니 너희 기도에 나와 힘을 같이 하여"(15.30).

"서로 분방하지 말라. 다만 기도할 틈을 얻기 위하여 합의상 얼마 동안은 하되 다시 합하라 이는 너희의 절제 못함을 인하여 사단으로 너희를 시험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고전 7.5).
"모든 기도와 간구로 하되 무시로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고"(엡 6.18).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
"(빌 4.6)

"이로써 우리도 듣던 날부터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고 구하니 너희로 하여금 모든 신령한 지혜와 총명에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으로 채우게 하시고"(골 1.9).

"기도를 항상 힘쓰고 기도에 감사함으로 깨어 있으라"(4.2).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되 하나님이 전도할 문을 우리에게 열어 주시어 그리스도의 비밀을 말하게 하시기를 구하라"(:3).

"그가 항상 너희를 위하여 애써 기도하여 너희로 하나님의 모든 뜻 가운데서 완전하고 확신있게 서기를 구하니"(:12).

"쉬지 말고 기도하라"(살전 5.17).

"그러므로 내가 첫째로 권하니 모든 사람을 위하여 간구와 기도와 도고와 감사를 하되 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하라. 이는 우리가 모든 경건과 단정한 중에 고요하고 평안한 생활을 하려 함이라 이것이 우리 구주 하나님 앞에 선하고 받으실 만한 것이니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데 이르기를 원하심이다"(딤전 2.1-4).

"그러므로 각처에서 남자들이 분노와 다툼이 없이 거룩한 손을 들어 기도하기를"(:8).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짐"(딤전 4.5).

"참과부로서 외로운 이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어 주야로 항상 간구와 기도를 하거니와 "(5.5).

"오직 너는 나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라 너희 기도로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게 하여 주시기를 바라노라"(몬 1.22).

"내가 더 속히 너희에게 돌아가기를 위하여 너희 기도함을 더욱 원하니"(히 13.19).


"너희 중에 고난 당하는 자가 있느냐, 그는 기도할 것이요 즐거워하는 자가 있느냐, 그는 찬송할 것"(약 5.13).

"너희 중에 병든 자가 있느냐 그는 교회의 장로들을 청할 것이요 그들은 주님의 이름으로 기름을 바르며 위하여 기도할 것이다.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할 것이니 주님께서 그를 일으키실 것이다. 혹시 죄를 범하였을지라도 사하심을 얻을 것이다. 이러므로 너희 죄를 서로 고하며 병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많음이다. 엘리야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되 그가 비 오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한즉 3년 6개월 동안 땅에 비가 아니오고 다시 기도한즉 하늘이 비를 주고 땅이 열매를 내었다"(:15-18).

"남편 된 자들아 이와 같이 지식을 따라 너희 아내와 동거하고 저는 더 연약한 그릇이요 또 생명의 은혜를 함께 물려받을 자로 알아 귀히 여기라. 이는 너희 기도가 막히지 아니하게 하려 함이라"(벧전 3.7).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왔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4.7).

"너희의 지극히 거룩한 믿음 위에 자기를 건축하며 성령으로 기도하며"(유 1.20).

"책을 취하시니 네 생물과 이십 사 장로들이 어린 양 앞에 엎드려 각각 거문고와 향이 가득한 금 대접을 가졌으니 이 향은 성도의 기도들이라"(계 5.8).

"다른 천사가 와서 제단 곁에 서서 금 향로를 가지고 많은 향을 받았으니 이는 모든 성도의 기도들과 합하여 보좌 앞 금단에 드리고자 함이라 향연이 성도의 기도와 함께 천사의 손으로부터 하나님 앞으로 올라가는지라"(8.3).

주님과 "한 영"(고전 6.17)됨의 영광스러운 맞바꿈의 삶




 

"성부, 성자, 성령"의 '3위1체'


 

하나님이 움직이신 증거/증명(3운법칙)


최대 최고의 '하나님 증명'ㅡ바로, '양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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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나타내는 양심과 청천 밤하늘 별들'을 "우주의 양대 불가사의 경이로움"이라고 철학자 칸트는 말했다는데, 양심이야말로 인간이 "선하신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이라는 즉 사람을 하나님이 자기의 형상과 모양으로 창조하셨다는 확고부동의 성경적 증거 다시 말해 성경만이 말할 수 있는 '하나님 증명'이다. 그리고 이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에는 인간의 자유의지도 당연히 포함된다. 또 그리고 "죽지 않음"도. 그러나 이 영생 불사의 특성만은 아담의 범죄로 아담 부부 외에는 그 어느 인간(아담의 후예)도 체험하지 못한 바다.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간음 중에 잡힌 여자를 끌고 와서 가운데 세우고 예수님께 말하되 '선생님, 이 여자가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혔습니다. 모세는 율법에 이러한 여자를 돌로 치라 명하였는데 선생님은 어떻게 말하겠습니까.' 저들이 이렇게 말함은 고소할 조건을 얻고자 하여 예수님을 시험함이었다. (모세 율법에 "돌로 치라" 했기에 "돌로 치라" 하시면 당시 로마 총독의 관할 아래 있어 로마법에 걸리게 되고 이런 사정을 고려해 "돌로 치지 말라" 하시면 모세 율법을 어김이 되는 고로) 예수님께서 몸을 굽히시어 손가락으로 땅에 쓰시니 저들이 묻기를 마지 않는지라 이에 일어나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하시고 다시 몸을 굽혀 손가락으로 땅에 쓰시니 저들이 이 말씀을 듣고 <양심의 가책>을 받아 어른으로 시작하여 젊은이까지 하나씩 하나씩 나가고 오직 예수님과 그 가운데 섰는 여자만 남았다.

벼라별 인간, 막된 인간, "짐승만도 못한 인간"ㅡ 하늘의 별처럼 많고도 많은데, 희한하게도 한결같이 "양심의 가책"만은 누구나 다 갖추고 있으니까! 이것이 <절대 우연히 될 일이 아님>은 아무리 벽창호라도 다 느끼는 바다. "하나님 증명"도 여러 가지 참 많기도 많은데 이 "양심의 가책"만한 것이 절대로 없다. 단연 압권이다. 하나님의 이 우주 창조를 부정하는 자라도 "그런 우주보다 더 놀라운 것이 사람 양심"이라는 말 앞에서는 완전히 할 말을 잃는다. 양심의 가책이라는 그런 "절대 선"의 근원이 도대체 어디란 말이냐! "절대 선"이신 하나님 외에는 그런 "절대 선"이 나올 수가, 나올 데가 이 우주 천하에는 없는 것이다. 그래서 이것이 가장 강력한 "하나님 증거"가 되는 것이다.

그렇다고 자연적으로 나올 수 있다라는 말은 그 누구도 꺼내려 하지 않는다. 그런 말은 이 우주가 곧 하나님의 성령으로 충만하다는 사실을 곧이곧대로 시인하는 지름길이 되는 까닭. 그렇다고 하나님이 친히 장치하신 기계적 작동임을 시인할 수도 없는 노릇. 어찌 할꼬! 어쩌긴 뭘 어째ㅡ하나님 계심 당당히 믿고, 말하고, 말씀 따라 구원 얻어 영생/영광 한도 없이, 한도 없이 누리면 되는 거지! 

"너희 아버지는 오직 한 분"




"땅에 있는 자를 아버지라 하지 말라 너희의 아버지는 한 분이시니 곧 하늘에 계신 이시다"(마 23:9) 하셨으니 이 대목에서 온세상 남자들은 자기가 남자로 태어났음을 헐복하다 탄식해야 할 것인가. "어머니라 하지 말라"는 말씀은 없으시니까. 그러므로 여기서 주님께서 하시고자 한 말씀이 무엇일까. 하나님은 성별이 없으시니까 하는 말이나 성별이 있는 듯이 말씀하셨으니까 얼마든 돌려 생각할 수 있도록 여백을 남겨 두셨다는 결론이기에 지적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은 세상 그 어느 어버이도 모방 못할 정도의 "어버이"다우심에 우리 모두 눈 떠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그저 전지전능하시어 만유를 창조하셨다는 사실 하나에만 생각이 매몰되어 있다는 것이니, 심지어 우리 위해 죽음의 고난 받으심도 불사하신 주님마저 우리 구원을 위한 단지 "하나님의 희생 양" 정도로만 인식하고 관심이 멈추어버림이 아닌가 하는 염려입니다. 이러한 반성은 "아버지는 한 분"이시라 하심에서 충분히 설득력을 얻습니다. 이 점 독자께서도 100% 공감하실 것입니다.

고로 이제는 방금 지적한 그런 점에서 우리 하나님을 매양 의식하고 인식함이 너무나 마땅하다는 것. 더군다나 하나님은 지금 '사람'으로 계시니까. '사람 주님'의 모습은 '3위1체의 원리"에서 바로 성부 하나님의 모습이십니다. 대칭을 이루시어 "크고"(요 14:28) 작음"이라는 '상반'이시란 점 외에는 본질면에서 똑같으십니다.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 내가 아버지 안에 거하고 아버지는 내 안에 계신 것을 네가 믿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는 말은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서 그의 일을 하시는 것이다. 내가 아버지 안에 거하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심을 믿으라"(요 14:9-11) 하신 그대로입니다. 그러므로 독생자 하나님을 가리켜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다"(1:18) 한 그대로입니다. <아기를 안고 있는 "모정/母情의 품(Mom's Bosom)"으로 독생자 하나님과 성부 하나님을 묘사하고 있음>을 항상 명심할 일입니다. 아기를 낱낱이 일일이 보살피는 것이 엄마입니다. 아기 스스로 아무 것도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아기가 엄마에게 전적으로 의존하듯 우리의 의식 구조를 그와 같이 하나님께 맞추어야.

엄마가 아기 위하듯 아기도 엄마를 위합니다. 아기가 무슨 능력이 있기에 엄마를 위하느냐. 그렇지 않습니다. 엄마가 원하는 대로 시키는 대로 잘 따라 주는 것이 엄마를 최대로 위하는 것이니까. 그것이 엄마를 최대한으로 기쁘게 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바로 우리가 하나님의 모든 뜻, 말씀에 순종하는 것, 바로 그것입니다. "나더러 '주님, 주님'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갈 것"(마 7.21)이라 못박으신 이유입니다. 사람들은 "하나님" 하면 자기의 '구원 영생' 하나에만 매달려 그것만 의식합니다. 엄마를 기쁘게 하고자 하는 최소한의 '<아기 식>의 엄마 사랑'조차 없습니다. 그래서 악을 악으로 갚기가 예사요, "저희에게 죄 지은 자를 모두 용서해 주오니 저희 죄를 용서해 주옵시고" 하신 주님 가르치신 기도는 기억도 하지 않는데 아주 잘못입니다. 이러고도 감히 '천국행'을 꿈 꾸다니 어림도 없는 일입니다. 너무 늦기 전에 반성할 일입니다. 어려운 일도 아닙니다. 역지사지로 하나님 위치에 나도 서보면 하나님의 마음에 충분히 공감하고도 남습니다. "주님의 약속은 어떤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시어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심"(벧후 3.9)이니까. "땅에 있는 자를 아버지라 하지 말라. 너희 아버지는 한 분이시니 곧 하늘에 계신 이시다"(마 23:9) 이 말씀을 적어 눈에 띄는 잘 띄는 데에다 붙여 놓고 묵상하는 것도 한 방법이겠습니다. 이 말씀을 항상 마음에 둡시다.

차례대로의 성경 묵상 (1)

  ● 하나님은 '3위1체'의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은 3위1체로서 계시기 때문. ● 3위1체를 설명하면? "성부, 성자, 성령의 이름"(마 28.19)이 그 대표적 인용구다. ● "독생자를 주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