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3월 31일 화요일

거꾸로 말하느냐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라"(롬 9.3) 했던 바울 사도가 언제 또 갑자기 변하여, "우리가 율법은 신령한 줄 알거니와 나는 육신에 속하여 죄 아래에 팔렸다. 내가 행하는 것을 내가 알지 못하니 곧 내가 원하는 것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미워하는 것을 행함이라 만일 내가 원하지 않는 그것을 행하면 내가 이로써 율법이 선한 것을 시인하노니 이제는 그것을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이다.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않는 줄을 아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다.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행하지 않고 도리어 원하지 않는 바 악을 행한다. 만일 내가 원하지 않는 그것을 하면 이를 행하는 자는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이다.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으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음이다. 내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으로 나를 사로잡는 것을 보는구나.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세!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롬 7.14ㅡ24) 하고 탄식했더냐!

로마서 7장을 바울 자신의 믿은 후 체험이라 하는 자들에게 묻노니 답하라! 어느 쪽이 바울이냐? 믿음의 초기일수록 믿음에 불타고 시간이 갈수록 혹 식어지면 식어지는 법이다. 너희는 거꾸로 말하느냐! 

일부러 설명하려 들지 않는 데에서 성경의 진실성은 다시금 드러나는 것


마귀가 애당초 바벨론 신학의 거짓말을 지어낼 때부터 아담이 처음 신령한 몸으로 창조되었음을 가리워 감추고, 현재의 이런 "자연계 믈질의 육체로 애초 만들어졌다"고 속여 놓은 다음 진화론 등 소위 "과학적 사실" 따위로 둔갑시킨 것으로써 교회를 마구 뒤흔들 계략이었던 것인데, 과연 많은 사람들이 이 수작에 속절 없이 끌려 넘어가 "믿음에 관해 파선했던"(딤전 1.19) 것입니다. 주님이 경고하신 말씀대로 "돌이켜 어린 아이 같이 되어"(마 18.3) 어린 아이의 순수성에서 오는 본성적 사랑과 믿음(신뢰)대로 "그렇거나 말거나 변함이 없는 것은 우리 주님의 십자가 사랑뿐"이라고 자신을 다독인 이들만이 영적으로 살아 남았던 것. 그러나 21세기 오늘날 3위합1(trinia) 및 3운법칙(fashomo)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인간을 죽지 않는 영생자로 창조하심이 드러나자(사실 이것이 상식 차원에서도 너무나 온당하고 합리적 판단) 국면은 180도 전환이 됩니다. 따라서 "3운볍칙이 진화론을 무력화시켰다"는 것은 바로 이러한 모든 거짓된 것들의 족쇄가 풀어지고 진화론과 같은 것이 더 다시는 힘을 쓰지 못하게 됨을 지칭함입니다. 진화론도 진화론 나름이니 여기서 거론하는 것은 무신론적 진화론 즉 진화론을 핑계대고 무신론을 끌어들여 고집 부리는 것을 말합니다.

소위 "영적 죽음"이라는 황당무계 헛소리도 이제는 "천사가 가진 복음"의 등장으로 완전히 자취를 감추게 될 운명입니다. 처음 믿음에 들어올 때 많은 사람이 "하나님이 선하시고" "사랑"이시라면 왜 인간에게 이런 고되고 허접 쓰레기 육체를 주시어 인간고/人間苦가 이다지도 심하냐"며 의혹을 품고 선뜻 믿음에 들어서지 못했었는데, "아담의 죄 때문"이라는 속 시원한 답을 주지 못한 우리의 불찰이야말로 엄청나게 큰 것이었습니다. 아담의 범죄로 이런 인간고가 왔는데도 하나님만 원망했습니다. 이제는 "천사의 복음" 전파로 그런 헛된 망념도 어느 정도
정리가 될 전망입니다. 

또한 이 시점 우리가 확인하고 즐거워해야 사실이 하나 더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 주님 친히 그 "마지막 아담"(고전 15.45) 되심을 증명하심입니다. 다시 말해 세상에 또 다시 오심입니다. 그 오시는 이유/목적이라고 해서 성경 그 어디에도 밝혀 눟은 바가 없습니다. 바로 이것이 또 성경의 <진실성 증명>이 됩니다. 지어낸 것이라면 반드시 지지콜콜 설명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일절 설명이 없습니다. "마지막 아담"이시기 때문이라는 <굉장한 의미>의 설명이 필요한 대목인데도! 따라서 이런 설명이 전혀 없음으로 해서 무갈제국 영걸 악바르의 끈질긴 질문에도 당시 천주교 신부들은 한 마디도 대답 못해 쩔쩔매었던 것입니다. 사람으로 오심이 "마지막 아담"으로서 오심이었기에 아담이 그 죽음으로 채 이루지 못했던 인간세계 통치 차원에서의 "마지막 아담"의 천년 왕국이심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2026년 3월 30일 월요일

트리니아, 파쇼모(trinia, fashomo)

트리니아, 파쇼모(trinia, fashomo)는 라틴어로서 전자는 3위1합(또는 합1, 종전의 3위1체)을 의미하여 trinitas(영어 trinity가 여기서 나옴)의 변형이고, 후자는 3운법칙을 가리키는 것으로서 fas는 신의 법(divine law), homo는 Homo sapiens 즉 인간을 말하는 합성입니다. 전세계로 반드시 확산되어야 하는 하나님의 복음("천사가 가진 복음") 전파에서 자주 사용되어질 수밖에 없는 용어를 공통어로 묶어 미리 정해 둠으로써 앞으로 생길지도 모를 최소한의 국제적 혼돈이라도 피하기 위해서입니다. 현행 각국어가 아닌 라틴어가 가장 무난한 중립적인 것으로 판단되기 때문. 이 "마지막 때" 복음 전파에서 세계 어디에서나 통할 수 있는 중요한 비중을 차지할 용어들이기에 그러합니다. 더군다나 둘은 상호 검증 관계에 있어 더욱 그렇습니다.


trinia(3위1합 또는 합1, 종전의 3위1체)는 세계적으로 기독교 권내에서는 비교적 널리 알려져 있다 하겠으나 앞으로 세계 만방에 알려져야 할 새 개념으로는 전혀 그렇지 않기에 아예 새로운 용어로 대체시킴이 보다 효율적이라 판단되는 것입니다. 새로운 의미라는 것은 trinia가 성부와 성자로서의 하나님 계시는 모습이시라는 사실입니다. 더욱 놀랍고 흥미로운 것은 이 trinia로써 만유를 창조하셨고 또한 만유 운행의 기본 원리로 정하셨다는 것이 21세기 오늘날 이제서야 비로소 나타내셨다는 것이니, 따라서 만유의 기본 대법칙(the universal law of trinia)으로 알려져 복음 전파에 박차를 가해야 할 필요성에서 이는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하나님 증명도 되고 만물 창조도 입증되며 더더군다나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은혜의 구원의 이치도 이로 말미암는다는 것으로서 그 확실성이 더욱 보증된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 하시는 모든 일이 이 trinia를 기반으로 이루어지니까 이는 너무나 당연한 일이라 하겠습니다. fashomo(3운법칙)는 그 가장 대표적 사례이니까 상호 검증 관계에 있다는 것. 

바벨론을 산산 조각으로 만드는 천사의 철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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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합하여 한 영"으로서 내 안에 주님이 계심에서는 반드시 나타나게 되어 있는 것이  짝을 이룬 둘의 3位合/위합1(3위1체)입니다. 즉 이 '합1'에서의 특징은 "교차(엇바꿈ㆍ맞바꿈) 소유"입니다. "한 몸"에서는  남자의 몸이 여자의 것이 되고 아내의 몸이 남편의 소유가 됩니다. "한 영"에서는  갑의 삶이  을을 위함이 되고  을은 갑을 위해서만  살게 되는 것입니다. 어느 쪽도  자기를 위해 사는  법이 없습니다. 자
기를 위하는 자아중심 즉 "욕심"(약 1.15ㅡ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는다")이 다름아닌 모든 죄와 악의  온상/溫床이요 밑뿌리입니다. 고로 하나님 앞에서는  어떤  경우에도  자기 중심이  용납되지 않습니다. 이는 애초 성부와 성자 하나님 사이에서의 언약에서 출발했던 것입니다. 성부께서는  처음부터  언약을 하셨고  또한 "계명"(주님께서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 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할 것이다" 말씀하신 것처럼ㅡ요 15.10)을 주셨던 것입니다. 즉 "내가  너를 위할 것이니까  너는 네 자신을 위하지 말라" 하신 것. 이것이 성자께서 받으신  성부의 계명이셨고 주님이 우리에게 주신 계명도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이십니다. (이상은 중요하므로 반복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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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구원 받아 영생하게 되는 것도 영원하신 그리스도께서 나의 삶을 사시는 분이기 때문에 그러합니다. 그리고 우리 역시 이 세상에서나 영원 세상에서나 오로지 주님을 위하여 사는 삶이라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빌 1.21)라 하는 것. 무릇 누구든지 자기를 위해 살았다는 자책감이 든다면 이제까지 주님께서 그 안에 계시지 않은 증거인즉(고후 3.5) 회개하고 "성령의 선물"(행 2.38)을 받아야만 합니다.
주님 친히 내 안에 임하여 오심으로써 주님과 "합하여 한 영"이 되어 "교차(맞바꿈) 삶"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더 다시는 자기 중심의 삶이어서는 안됩니다. 자기 중심은 멸망의 지름길입니다. 이것이 3위합1(또는 1합; 종전대로 '3위1체'라 해도 무방)이 오늘날 21세기에 전달하는 엄중한 경고인 것입니다.

그리고 역시 되풀이하지만 3운법칙(fashomo, 파쇼모)은 성경에서 아담부터 노아 당시까지 시대에 사람들이 천년 가까이 살았던 사실에 대하여(노아 홍수 자체까지도 포함해서) "황당한 거짓"이라 공격해 올 때, 그들의 무지무식을 단번에 꺾을 수 있는 소중한 유일의 무기이니 노아 생애 도표를 비롯 기타 몇 가지를 자기 스맡폰에 저장해 두었다가 대처하시기를. 우선 보기에는 아무것도 아닌 것 같아도 실제 그런 사실을 놓고 말이 오갈 경우 그런 사실을 해명/입증할 충분한 근거를 대지 못할 때 혹자의 믿음에 큰 치명타를 입힐 수도 있습니다. 하여간 명쾌한 해답을 주기에는 3운법칙만한 것이 없습니다.


2026년 3월 29일 일요일

모든 죄악의 뿌리는 자기 중심


 

로마서 7장의 부질없는 논의 종결



 


노아 홍수만 아니라 당시 사람들이 천년 가까이 장수한 것도 (2)


우리 주님 메시야께서는 범죄로 죽은 아담의 빈  메꾸시기 위한 “마지막 아담으로서 세상에 오신 것이다. 아담과 대칭성으로 오셨으니까 아담의 역할 그리고 그 특성 그대로이셔야 했으니 단지 본질만은 상반/相反이셨던 것은 그래야 대칭(짝)이 되시는 까닭이요 그래야만 우리가 "성령으로 남"이 가능해져 우리 구원이 되실 수 있기 때문. “아담“("첫 사람 아담"이 아닌 그냥 아담)이 여기서 상보/相補이다. 즉 첫 사람 아담은 “육/肉“이요, 마지막 아담께서는 “영“(요 4.24) 곧 창조주 하나님이신 것이다. 세상에 다시 오시어 천년간 세상을 통치하실 것도 그 때문. 주님의 부활도 그 까닭에서다. 만약 아담이 처음부터 신령한 몸이 아니었다면 주님도 최소한 제자들 앞에서는 부활의 몸을 결코 보이시지 않았을 터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세상은 여러 가지 그럴듯한 이유를 들어 노아의 홍수도 지어낸 것이다, 아담부터 노아까지 천여년(노아의 500년까지 합치면 1,500여년이 되지만 노아는 뺀 것)에 걸쳐 천년 가까이 장수한 것도 거짓이다 할 때 우리가 그들에게 설명해 줄 아무 근거가 없었던 것이다. 아담이 셋을 130세에 낳았고 아담을 포함해 그 후대들이 그와 같이 장남을 낳았던 나이를 모두 합산하면 그렇게 천년 기간이 된다.

그러면 제3자의 위치에 있어 옆에서 듣는 이들은 결국 성경은 “그런 믿을 수 없는 황당한 말을 하기만 하고 신기한 무슨 색다른 얘기를 못하는 것을 보니 성경은 과연 잡쓰레기 지어낸 거짓말 빈 소리였군그래! 저런 책을 누가 읽어? 누가 믿어?“ 하고는 자리를 뜬다. 왜냐면 하나님은 사랑이다, 영생, 구원“ 등의 비교적 구미가 당길 만한 말 대신 “천년 넘게 천년 가까이 장수했다, 한 때 세상이 온통 물바다가 돼 망했다“ 등 허황한 소리만 잔뜩 듣고 일어났기 때문이다. “그런 거짓말들을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책에 가득 써놓았다니 웃기고 자빠졌네.“ 하지 않겠는가. 나는 이런 의제를 피하려고 하겠지만 사탄의 방해꾼이 의도적으로 집요하게 물고 늘어진다면? 나는 당할 재주가 없다.

이 때 천군만마의 원군/援軍이 나타난 것이다. 절체절명의 위기를 수습해주고는 바람 같이 사라지는 “신병/兵이라 해야 옳겠지. 3운법칙 그리고 이와 상호 검증 관계에 있는 “3위합1(짝의 법칙, 3위1체 )이 바로 그것이다. 인간 생애를 주장 주관하는 3운법칙이 이를 증명하여 확답을 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런 경우를 위해서도 3운법칙은 숙지해 두는 것이 좋다.

노아의 생애를 보면 500세에 이르러서야 세 아들을 낳기 시작했다. 그 조상 중의 에녹이 죽음을 보지를 않고 세상 뜬 것을 보고 젊은 노아는 믿음의 큰 도전을 받았으리라. 그래서 의인 노아는 그냥 독신으로 지내다가 천국으로 가리라 결심했을 수 있다. 그런데 500세가 되어서야 뒤늦게 아들들을 두는 갑작스러운 변화를 보인 것을 감안하면 이미 그 때 세상을 통째로 멸망시키시겠다는 하나님의 뜻을 알게 된 것으로 보아야. 그래서 인종을 퍼뜨려야 한다는 의무감에서 아들들을 두기 시작했고 노아 방주 건조를 시작한 것. 그런데 웬 백년이나 걸렸다는 말이냐 하겠는데, 당시 주변 환경을 생각해야. 얼마나 당시 사람들이 노아를 미친 인간으로 취급했겠는가! 더군다나 당시는 초대형 거인 네피림의 시대다. 노아를 미치광이 취급한 네피림은 완력으로 작업을 방해했을 것이 아닌가! 의도적으로 장난삼아서도 그랬을 것이다. 초대형 거인들 등쌀에 백년이나 지연되었다 한들 반론을 제기할 수 없을 것이 아닌가. 하나님께서는 노아의 믿음을 연단시키는 차원에서 또한 개입하지 않으셨을 수도. 이렇게 해서 가까스로 방주가 완공되자 이내 지체 없이 대홍수는 시작된 것이다. 



2026년 3월 28일 토요일

노아 홍수만 아니라 당시 사람들이 천년 가까이 장수한 것도 (1)

노아 홍수만 아니라 노아 시대까지 천년 가까운 장수 기록에 대해서도 무신론자, 불가지론자, 세속적 학자, 일반 대중 등의 일반적인 인식은 신화적·상징적·문학적 표현으로 보고 있음.

•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여김이니 현대 생물학, 고고학, 인류학 증거에 따르면 고대 인간의 평균 수명은 30~50세 정도였고(뼈·치아 마모 분석 등), 100세 이상 장수도 극히 드문 것으로 여겨 900년 이상 산다는 것은 인간의 생물학적 한계(세포 노화, 질병, DNA 손상 등)를 넘어서는 이야기로 보고 있음.
• 고대 근동 신화의 공통 패턴으로 해석하여 수메르 왕 목록(Sumerian King List) 등 메소포타미아 문헌에서도 홍수 이전 왕들이 수천~수만 년을 통치했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이는 인류의 고대성( antiquity)을 강조하거나 영웅적·신화적 위상을 부여하는 문학적 장치. 성경도 비슷한 문화적 배경에서 이런 전통을 빌려와 신학적 메시지를 전달했다고 보는 것. 상징적 의미임을 강조하는 것.
• 죄와 죽음의 결과: 장수가 점차 줄어드는(홍수 후 급격히 감소) 것은 죄가 세상에 들어와 인간의 수명을 단축시켰다는 신학적 교훈으로 읽힙. “죄가 죽음을 가져왔다”는 주제.
긴 수명은 그 인물이 얼마나 중요한지 하나님과 가까웠는지를 나타내는 상징(조상들의 위상 강조)으로 인식하기도.
과학·역사적 관점에서 비판하는 자들
• 고고학적 증거가 부족하다는 주장. 고대 유골 분석에서 그런 장수를 뒷받침할 만한 증거가 전혀 없다는 것. 오히려 평균 수명이 현대보다 짧았다는 데이터가 쌓여 있다는 것.
• 생물학적으로도 불가능하다는 주장.
• 인간의 텔로미어(염색체 끝 부분) 한계, 유전자 변이 누적, 환경 요인 등을 고려하면 900년 생존은 현실적으로 설명하기 어렵다는 것. 일부 창조론자들은 “홍수 이전 환경(산소 농도, 식단 등)이 달랐다”고 주장하나, 비신자들은 이를 과학적 증거가 부족한 가설로 치부함.
• 성경 해석의 다양성으로 인정: 비신자 중에서도 기독교 문화권 사람들(예: 문화적 기독교인)은 “성경을 문자 그대로 믿는 사람들도 있다”고 인정하나, 자신들은 비유적·신화적 장르로 보는 경우가 많음. 진화론·지질학·고인류학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에게는 창세기 1-11장이 역사서라기보다 신화·설화에 가깝다고 보는 것.
온라인·대중적 반응 (레딧, 포럼 등)
• 무신론자·탈기독교 커뮤니티에서는 “웃긴다”, “전설”, “과장된 이야기”로 치부하는 반응이 흔함. “만약 진짜라면 왜 지금은 안 그런가?”라는 실용적 의문이 자주 나옴.
• 학술적·세속적 성경 연구자(Academic Biblical)들은 “고대 문헌의 전형적인 수사법”으로 분석, 문자적 역사성보다는 신학적·문화적 기능에 초점을 맞춤.
기독교 비신자들 사이의 주류 인식으로는문자 그대로 믿기 어려운 신화적·상징적 기록”. 이는 성경을 역사서가 아닌 고대 문학·종교 텍스트로 보는 관점에서 비롯되며, 과학적 증거와 충돌한다고 여김. 다만 일부는 “신학적으로 의미 있는 이야기”로 존중하면서도 역사적 사실로 받아들이지는 않음.이 인식은 개인차가 크나(특히 서구 대 비서구 문화), 세속적 교육을 받은 현대인들 사이에서는 문자적 장수설을 받아들이는 경우가 드뭄. 기독교 내부에서도 이 부분에 대한 해석(문자적 대 비유적)이 다양하듯, 비신자 관점도 스펙트럼이 존재.

그러면 하나님의 답변은 무엇인가

역시 하나님의 3운법칙(fashomo)이다.
노아의 950년 생애가 그것이다.
단 추가해야 할 사실은 왜 그토록 장수했는지 그 이유인 것이다. 장수했음이 엄연한 사실임은 노아의 950년 3운법칙 생애 도표(fashomo diagram)로 일단 확증되었으니까. 이유는 성경이 직접 밝히고 있다.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으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던 것(롬 5.12)이라 한 그대로다. 명백한 순서가 사망다. 사망“가 아니다. 바벨론 신학의 포로들이 입버릇처럼 말하는 “영적 죽음“인 “죄“는 “사망“ 앞서 온 것이다. 그들의 말대로 하면

“아담으로 말미암아 '영적 죽음' 세상에 들어오고
'영적 죽음'로 말미암아 '영적 죽음'이 들어왔다"가 된다. 궤변도 유분수지. 이런 것이 바벨론 속성이다. 사탄의 거짓말만 따라하는 주구 노릇을 해 왔으니까. 바울 사도가 이 말을 한 것은 아담이 죽지 않는 신령한 몸으로 있다가 범죄로 현재와 같은 동물성육체로 전락, 죽어 나가는 신세가 되었다는 뜻이다. 아담이 세상을 통치하는 자로 세우심을 입었는데 도중에 사라호 태풍 같은 것 만나 공중으로 솟구쳤다가 급전직하한다면 뼈도 못추스를 것인데 이런 나약한 육의 몸“으로 만드셨겠는가. 

2026년 3월 27일 금요일

인류의 60 ~ 80 프로를 대경실색케 만든 21세기 대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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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발 고도 5137m 아라라트 산, 터키에서 가장 높은 성경적 명산)



현대인들은 노아 대홍수(창세기6~9장)를 여러 관점에서 인식함. 이는 문화·종교 배경, 과학 교육 수준, 개인 신앙에 따라 엇갈림.


1. 과학적·주류 지질학/고고학 관점 (대부분의 현대 과학자·세속인)
• 전 지구적 대홍수는 없었다는 것이 과학적 합의라고 여김.
• 지구 전체를 덮을 만큼의 물이 충분하지 않음 (산맥 높이까지 물이 차려면 대기 중 수증기나 지하수가 턱없이 부족).
• 지질 기록: 전 세계적으로 동시에 쌓인 단일 홍수 퇴적층이 없음. 오히려 증발암(소금·석고 층), 사막 균열, 화석 분포 등이 장기간 다양한 기후 조건을 보여줌.
ngo 등 사회단체
• 생물학적으로도 불가능하다고 보는 자도 있어 모든 육상 동물이 방주 한 척에서 유래했다면 유전자 다양성 부족, 민물/바닷물 생물 생존 문제 등도 있다고 봄.
• 고고학: 메소포타미아(티그리스·유프라테스 강 유역)에서 대규모 국지적 홍수 흔적이 여러 번 발견됨 (약 2900 BCE경 두꺼운 퇴적층). 이는 고대 수메르·바빌론 신화(길가메시 서사시의 우트나피시팀 이야기)와 유사하며, 성경 이야기가 이를 바탕으로 재해석된 것으로 여기고 있음.
• 블랙해 홍수 가설(약 7500년 전 지중해 물이 유입된 사건)처럼 “실제 대재앙이 신화로 전승됐다”는 해석도 있지만, 최근 연구에서는 그 규모가 과장됐다는 지적도 나옴.
많은 현대인(특히 서구·비종교인, 한국의 젊은 세대)은 이를 고대 신화나 상징적 이야기로 봄. “인류의 악함에 대한 심판과 구원, 새 출발”이라는 도덕적·신학적 메시지를 강조하면서 역사적 사실성은 덜 중요하게 여김.
2. 기독교인들의 다양한 해석으로 기독교 내에서도 의견이 나뉨.
• 젊은 지구 창조론(Young Earth Creationism)에서는 노아 홍수를 전 지구적 사건으로 믿음. 지질층·화석은 홍수로 쌓였다고 주장하며, 창조과학 단체(Answers in Genesis, ICR 등)에서 활발히 증거를 찾고 한국 보수 개신교(특히 장로교 일부)에서 비교적 강하게 지지됨.
• 오래된 지구·지역적 홍수 관점: 많은 주류 개신교 신학자·과학자(Reasons to Believe의 Hugh Ross 등)는 지역적 대홍수로 해석. 성경의 “전체 땅(whole earth)”은 노아가 알던 “알려진 세계(메소포타미아 일대)”를 의미한다고 봄. 소위 과학 증거와 조화시키려 노력.
• 일부는 신화적·신학적 이야기로 보기도 함. 실제 사건 여부보다 “하나님의 심판과 은혜” 메시지에 초점을 두고 있음.
한국 기독교에서는 창조과학 운동 영향으로 전 지구적 홍수를 강조하는 경우가 많지만, 젊은 세대나 소위 "진보적" 교회라고 하는 데에서는 과학과 조화된 해석(지역적 또는 상징적)이 늘고 있음.
3. 대중문화와 일반적 인식
• 영화·미디어·할리우드에서는 종교적 사실성보다 드라마·시각 효과로 소비되고 있음.
미국 등 서구 설문에서 전체 인구의 20~40% 정도가 “노아 홍수가 실제로 있었다”고 답하지만, 이는 주로 복음주의 기독교인에 집중되고 세속인 대부분은 “고대 설화”로 인식함.
• 인터넷·소셜미디어에서는 창조 vs 진화 논쟁의 상징으로 자주 등장하고 일부는 “방주 비율이 현대 선박공학적으로 완벽하다”며 과학적 증거로 주장하기도 함.
요약컨대 현대인의 인식은 “과학적 사실인가?”와 “신앙적 진리인가?”로 분열되어 있어
• 과학 중심 세대 → 역사적 사실이 아닌 고대 메소포타미아 홍수 신화의 변형으로 봄. 지질학·고고학 증거가 전 지구적 홍수를 부정한다고 여김.
• 신앙 중심 세대 → 성경 그대로 하나님의 역사적 심판 사건으로 믿음. 과학 해석이 성경을 왜곡한다고 비판함.

그러면 하나님의 답변은 무엇인가
하나님이 제시하시는 증거는 무엇인가

하나님의 3운법칙(fashomo)이다.
아래 노아의 950년 생애가 그것이다. 
600세에서 사망시까지의 350년간이
그 활동기(LP)이니 이는 무엇을 말하나?
바로 다름아닌 대홍수 이후의
인류 중간 시조로서의 대역할이 아니더냐!
600세에 대홍수가 났음이 아니더냐!
부질없이 놀리는 모든 입을
이 하나의 생애 도표로 막아버리신 것이다.









반드시 상대 중심의 삶이어야

사랑의 하나님이시기에 강제ㆍ강압하시지 않습니다. 그대신 약속하십니다. 따라서 아담의 삶은 약속(언약)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먼저 약속하시고 다음에 명령하셨습니다. 즉 계명을 주셨던 것입니다. 약속은 다름아니라 "내가 너를 전적으로 위해주겠다. 그러므로 너는 네 자신을 위할 필요가 없다. 너는 전적으로 나만 위하여라. 네가 나를 위한다는 것은 내가 하는 말을 잘 듣고 순종하여 따르는 것이다." 하나님의 계명은 다름아닌 "내가 너희를 사랑하는 것과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심입니다. 고로 우리 각자는 <나>를 위함이 아니라 <너>를 위함이 하나님의 명백하신 뜻입니다. '나'를 위함은 자기 중심이요 '너'를 위함은 상대 중심입니다. 모든 죄와 악은 자기 중심에서 옵니다. 상대방 중심에서는 죄와 악이 생겨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아담의 범죄를 가리켜(호세아 6.7) "언약을 어겼다" 하신 것입니다.


오늘날 구원 받았다는 절대 다수의 사람들이 이와 같이 아담처럼 하고 있습니다. 즉 자아중심 일변도입니다. 이것은 구원된 것이 아님을 스스로 증명하는 것이 됩니다. 구원된다는 것은 주님과 "<합하여> 한 영이 됨"(고전 6.17)이기에 단정코 그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짝을 이룬 둘은 절대로 둘로서 있지 않고 반드시 하나로서 존재하고 기능합니다. 이것을 3위합/合1(삼위일체)이라 합니다. "체" 대신 "합"이라 함은 "합"이 보다 성경적인 의미이기 때문입니다. 이왕 "삼위일체"로 알려져 왔으니 3위1체라 해도 무방합니다. 그러나 여기서는 "3위합1"이라 하겠습니다. 또한 국제적으로 용어 선정에 혼란이 없도록 세계적 공통어로 trinia를 제안합니다. 라틴어 trinitas(영어 trinity가 여기서 유래됨)의 변형입니다. 3위합1(삼위일체)과 성령의 의미가 오늘날에야 정확히 밝혀졌으니까. trinia라는 만유의 대법칙임이 또한 드러났으니까. trinia는 3운법칙(fashomo, 라틴어 합성)과 상호 검증 관계이므로 trinia(트리니아) fashomo(파쇼모) 이 둘은 항상 쌍둥이처럼 붙어 다녀 제 역할을 다해야 할 것입니다. 둘 다 21세기에 등장한 <하나님 증명>으로서는 가장 강력한 것입니다. fashomo는 더군다나 인간 생애를 관장ㆍ관리한다는 점에서 일찍이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일입니다. 이 파쇼모 (fashomo)가 일반적으로 말하는 요사스러운 점복/占卜이 아니라 하나님의 인간 생애 관리ㆍ관장이심은, 스웨덴 오페라 여가수 제니 린드와 불교계 거두 이효봉 선사의 그 유사성에서의 쌍둥이와 같은 경탄할 만한 예시/例示에서 100% 확증되고 있습니다.

'3위합1'이 오늘날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것은 서두에서 밝힌 우리 하나님의 언약과 직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사람 사는 법을 교시/敎示함입니다. 즉 짝을 이룬 둘은 둘이 아닌 하나로서 "교차/交叉(맞물림,맞바꿈) 소유"라는 것이 그 핵심이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갑과 을일 때 갑의 것은 을의 것, 을의 것은 갑의 소유가 되는 것입니다. 아내의 몸이 남편의 것이 되고 남편의 몸은 아내의 것이 됩니다. 이는 "한 몸"에서 그렇고 "한 영"에서는 삶 자체가 그렇 되니 위에서 설명한 하나님의 언약이 바로 이 원칙대로 말씀하심인 것입니다. 때문에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다. 우리가 살아도 주님을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님을 위하여 죽음이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님의 것이다. 이를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셨으니 곧 죽은 자와 산 자의 주/主(주인, 소유주)가 되려 하심이다"(롬 14.7). 여기서 "소유한다"는 것은 "교차 소유"입니다. 이 뜻이 아니라면 여기서 이런 표현이 나올 수가 없습니다. "교차 소유"는 "한 영"임을 말하고 "한 영"됨이 바로 우리의 구원이기에 그러합니다. 남자의 몸이 여자의 소유가 되고 여자의 몸이 남자의 것이 됨은 둘이 "한 몸"임을 말해주듯이.

그런즉 다시 엄중하게 강조하지만 바울 사도가 "너희는 믿음 안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는 버림 받은 자이다"(고후 13.5) 할 때, "스스로 안다"는 것은 자기 입으로 자기 믿음을 고백함을 물론 말함이 아니고 엄중히 성경적 의미로 알고 있느냐는 것이니 주님 친히 "제 것은 다 아버지의 것이요 아버지의 것은 제 것"(요 17.10)이라 하신 대로 "교차/交叉 소유", "교차 삶"이 되어 있는지를 살펴 항상 자기 점검을 게을리하지 말고 자문자답하라는 뜻임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교차 삶"이란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그대로입니다. 즉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으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시어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갈 2.20) 한 그대로입니다. 상대 중심이라는 차원에서 의미를 새로 음미하는 것뿐입니다. 영원무궁 좋은 날만 무궁무진 앞두고 있는 우리이니 넘치는 기쁨으로 하나님을 찬미 찬양합시다. 


2026년 3월 26일 목요일

적의 위치를 알아야 적을 깨뜨릴 수 있어

현재의 인간이 비정상이라 원래는 천사처럼 신령한 몸이나(천사들이 신령한 몸이 된 것도 신령한 몸인 아담을 기준하여 만드시어 아담을 보좌하도록 하심이었던 것) 아담 범죄로 이런 동물성 육체로 다시 환원되어버린(아담이 애초에는 모든 동물 창조의 그 최종 피날레로 창조되었기에 동물성 육체였지만 아담 안에 영혼을 조성해 넣으시면서 영계인 에덴으로 데려 가 신령한 몸으로 재조정하신 것) 비극적 결말 탓에 모든 인간고의 원인인 현재와 같은 동물성 "육의 몸"(고전 15.44)인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이 아담 범죄가 사탄(원래 아담의 수하로 있던 자였으나 아담을 시기하여 하극상의 패역질을 저질러 아담을 시역/弑逆한 것)의 거짓말을 하나님의 말씀보다 더 따른 결과라 그 순간부터 위계질서가 거꾸로 뒤집혀져 아담이 도리어 사탄의 수하가 되어버려 이것이 오늘날까지의 참담한 상황입니다.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대로 너희도 행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함이니 이는 그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라"(요 8.44) 하신 그대로입니다. 거짓말쟁이가 세상을 지배하고 있으니 당연히 어찌 되겠나요. 보나마나 말하나마나입니다. 진리에 관한 한 온통 거짓말뿐입니다. 멀쩡하게 계시는 하나님도 "없다", 성경 관련해서도 거짓말을 멋대로 지어놓고 "이것이 진짜 하나님 말씀이다" 하고 속이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또 거기 속아 넘어갑니다. 이 비참한 현실을 모든 사람은 정확히 인식해야 하는 것입니다. 알고 있으면서도 순간적으로 깜빡하여 낭패 보는 수가 허다합니다. 눈에 보이는 대로만 귀에 들리는 대로만 판단하는 습성이 너무 강하다는 비극적 단점을 누구나 지니고 있습니다. 항상 이를 의식하여 경계해야 합니다. 사탄 편이 되어 도리어 원수 사탄의 장단에 맞추는 자도 절대적 다수를 차지하는 말 그대로의 악령들의 천하가 되어 있습니다. 우리 주님 다시 오심으로써만이 난장판이 말끔히 수습됩니다. 실로 험한 세상입니다. 악령들이 있어서 낭패가 아니라 우리 자신 이를 의식 못해서 낭패인 것입니다. 이를 부디 명심합시다. 마음에 반드시 아로새깁시다.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그 행한 대로 보응하시리"(롬 2.6)


 















 

초대교회는 하나님의 영광 드러내려고 선행에 힘썼는데 오늘날 교회는 도도 개도 아니니 어찌 할꼬?

 


사탄의 활동기간이 단축되었던 그만큼 다시 메꾸어 주시는 하나님ㅡ성경이 지어낸 것이 아니란 증거

사탄의 활동기간이 단축되었던 그만큼 다시 메꾸어 주시는 하나님

성경이 지어낸 것이 아니란 증거






2026년 3월 25일 수요일

죄로 죽음이 왔기에 우리 구원은 죄에서의 구원



"천사가 전하는 복음"과 바벨론 신학의 근본적 차이

1). 아담의 죽음이 <영적 죽음>이라고 주장하는 자마다 아담의 범죄로 죽음이 왔음을 부인하는 것이므로 하나님의 복음의 기본 사실을 왜곡시키는 자로서 그에 상당한 처벌을 면치 못할 것이다. 하나님 편에 서 있지 않고 사탄 쪽에 붙었으니까.

2). <대신 죽음>이라 주장하는 자마다 주님께서 성령으로 각자 안에 임하심을 부인하는 것이므로 진리에 있지 않는 자임을 자인하는 것이다. 성령으로 오심이니까 성부 하나님도 임하심이라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들이 됨이다.
3). <로마서 7장>을 믿은 후의 바울의 개인 체험이라 주장하는 자마다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죄의 몸이 멸해졌다"(롬 6.6)는 성경적 사실을 부인하는 자이므로 처음부터 사탄에 얽매인 것임을 자인함이다.
4). "참고 <선을 행함>으로 영생"(롬 2.7)에 이른다고 바울 사도가 명시한 것은 구원 받은 후의 마땅히 보이게 되어 있는 열매를 가리킴인데도 이를 부인하면 '구원 받음'이라는 '나무' 자체가 없다는 소리인 줄조차 모름이 되니 어찌 구원인들 알겠는가!
5). 구원됨은 죄를 회개하고 세례받음으로 주님 친히 성령으로 내 안에 임하심으로써 이루어진 것인데 범죄하면 그 회개한 것을 스스로 뒤집어 엎는 행위이거늘 어찌 무사하기를 바라랴. 아무리 구원되었음을 백날 외쳐도 <죄 짓는 자> 회개 않으면 필멸이다.
6). 우리 주님은 "<마지막 아담>"(고전 15.45)으로 오신 것이다. 이 사실을 모르고는 왜 다시 세상에 오시는지 그리고 "성령으로 남"(요 3.5)의 이유를 모르게 된다.
7). 3위1합(고전 6.17, 3위1체)으로써 "교차 소유", "교차 삶"이 되어 <상대 중심>인데 이는 "한 몸"(창 2.24)됨과 동일한 이치이다(고전 7.4). 고로 자기 중심을 회개하지 않는 한 필멸이다. 이상이 오늘날 "천사가 전하는 복음"과 바벨론 신학의 근본적 차이다. 간단하지만 사실은 엄청난 차이이니 생명과 죽음의 명확한 대칭이다.


2026년 3월 24일 화요일

미시세계에서는 양자역학이 거시세계에서는 3운법칙이

하나님께서는 이 마지막 때("마지막 때"라 함은 "마지막 아담"께서 다시 세상에 오시어 범죄ㆍ죽음으로 폐기된 아담 대신 세상을 비로소 다스리시는 통치자로서 다시금 세상에 임하시게 되는 지금 이 때부터의 기간을 말함)를 맞아 친히 하나님 살아계심을 증명해주셨으니, 미시세계에서는 닐스 보어의 상보성 원리(양자역학)로, 그리고 거시세계에서는 만물의 영장인 인간의 생애를 3운법칙(파쇼모, fashomo)으로 철통과 같이 규제하시는 것으로써 확증해주신 것입니다. 고로 이제는 세상 인간 그 어느 누구도 성경 말씀대로 "핑계대지"(롬 1.20) 못하게 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성경의 진실성도 덩달아 입증되었습니다. 믿지 않는 자들에게는 이젠 속절없이 심판만이 기다리고 있게 되었으니 모름지기 세상 사람들이여, 정신 차리시오! 이제는 피할 길이 없으니까! 이제는 아주 없으니까! 심판만이 기다리고 있으니까! 회개하지 않는 한에는. 




둘 다 그림으로 핵심 요지를 나타냄이 이채롭다.
만인 상대의 복음 전파이다보니 안성맞춤이다.
가장 낮은 자리에서부터 시작해야 전체를 포괄한다.






거듭남과 세례


거듭남(再生, regeneration)과 세례(물세례, baptism)의 관계는 개신교 신학에서 매우 중요한 주제이며, 교파에 따라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대부분의 보수적·복음주의 개신교에서는 아래와 같이 말합니다.

1. 거듭남의 본질: 성령의 주도적 사역 (믿음으로 받음)
• 거듭남은 하나님의 성령께서 직접 행하시는 영적 새 탄생입니다. (요 3:3-8, 딛 3:5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
• 이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일어나는 일입니다. (엡 2:8-9, 요 1:12-13)
• 사람이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만 가능합니다.
• 대부분의 개신교(특히 개혁주의·침례교·복음주의)에서는 거듭남이 세례보다 선행하거나 동시에 일어나지만, 세례 자체가 거듭남을 일으키는 수단은 아니라고 봅니다.
2. 세례의 역할: 표징(sign)과 인(sign seal) – 거듭남을 “증거·선포·확증”하는 것
• 세례는 거듭남의 외적 표징이자 하나님의 약속을 확인하는 인(印)입니다. (롬 6:3-4, 골 2:11-12)
• 세례 받는 순간 거듭남이 반드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이미 거듭난(믿는) 사람이 공개적으로 그리스도와 연합함을 선언하고 교회 공동체에 들어가는 예식입니다.
• 요 3:5의 “물과 성령”은 성령의 정결·새롭게 하심 전체를 가리키며(딛 3:5), 물 자체가 세례를 직접 의미한다고 보지 않고 상징적으로 이해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3. 개신교 주요 입장 비교 (대부분의 경우)
침례교·대부분 복음주의
거듭남 → 믿음 → 세례 (순서: 믿고 거듭난 후 세례 받음)
신앙고백 후 침례
세례는 순종의 행위, 거듭남의 증거. 세례 없어도 구원 가능 (강도에게 예수님 약속처럼)
개혁주의·장로교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거듭남은 성령의 사역, 세례는 그 표징과 인 (sign & seal). 보통 동시에 또는 세례 전후
유아세례 가능
세례가 거듭남을 “보증”하지만, 세례 자체가 자동으로 거듭나게 하지는 않음
루터교
세례가 거듭남과 밀접 (baptismal regeneration 요소 있음), 하지만 믿음이 핵심
유아세례
세례의 말씀과 물이 함께 역사
대부분 한국 개신교 (장로교·감리교·성결교 등)
거듭남은 믿음으로, 세례는 공개 고백·입교 예식
신앙고백 후 침례
“세례 받지 않아도 구원받을 수 있다”가 주류
4. 중요한 성경적 예외와 적용
• 강도에게 예수님 (누 23:43): 세례 받지 않았지만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 세례가 구원의 절대 조건이 아님을 보여줍니다.
• 행 2:38 (“회개하라 … 세례를 받으라 … 성령을 받으리라”): 회개·믿음 → 세례 → 성령의 역사 순서로 보이지만, 세례가 거듭남을 “일으키는” 것이 아니라 따르는 것으로 해석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대부분 개신교 관점 요약
• 거듭남 = 성령의 초자연적 새 창조 사역 (믿음으로 받음)
• 세례 = 그 거듭남을 외적으로 증거하고 선포하는 예식 (순종의 행위, 교회 입교)
• 세례가 중요하고 명령이지만, 구원의 본질은 믿음이며 세례 자체가 구원을 주거나 거듭남을 보장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믿고 세례를 받으라”(막 16:16)는 말씀은 믿음이 우선이고 세례는 그 믿음을 따른 순종으로 보는 것이 주류입니다.


이상은 오늘날 기독교계에서 하는 말입니다.
성령께서 누구이신지 모르는 판이니 제대로 설명이 될 리가 없습니다. 한 마디로 중구난방 뒤죽박죽입니다.

그러면 성경에서는 어떻게 가르치는가?

이미 앞서 설명했지만 세례 요한이 강조한 대로 "성령의 세례"가 핵심이요 관건입니다. 주예수님께서 성령으로 각자 안에 임하여 오심으로 명실 공히 "거듭(다시) 나는" 것입니다. 그 전에 반드시 세례를 받게 되어 있습니다. 세례를 받음으로써 죄 용서가 되고("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ㅡ행 2.38). 고로 순서ㆍ단계가 명확합니다. 즉 회개세례
죄 용서→성령 세례. 왜냐면 죄 용서가 된 깨끗하게 된 자리에 성령께서 임하심은 너무나 당연한 것입니다. 이런 급격한 변화는 직전의 회개에 있습니다. 회개가 철저치 못하면 죄 용서가 되지 않는다는 뜻이 되니까. 아직 거듭 난 것도 아닌데 단순한 죄 회개로써 죄 용서가 됨은 성령 세례 받기 직전의 특별한 경우이기 때문입니다.

다시금 강조하거니와 회개가 이 정도로 중요합니다. 회개가 전체를 좌우합니다. 지금까지는 그 정반대로 일관해 온 것입니다. 사도시대 초대교회 당시는 초창기라 성령이 임하시는 가시적인 확증이 필요했고 필수였습니다. 때문에 방언 말하기, 예언 등이 뒤따랐습니다. 그러나 반드시 성령께서 임하심이 충분히 확인된 후로는 그런 가시적인 증거가 필연적인 것이 아니게 됨은 당연했습니다. 그리하여 오늘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그럼에도 오늘날 당시처럼 회개를 강조하나요? 위에 소개한 글 내용과 같습니다. 엉망진창입니다. 그러나 주님의 경고 말씀은 한결같습니다.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마 18.3). "돌이켜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어 있는" 이는 들어갑니다. 그러나 그들은 " 육체를 따라 지혜로운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다...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시어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시어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시어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심이니"(고전 1.26-28).

지금이라도 늦지는 않으니 회개하시기를!

2026년 3월 23일 월요일

"육으로 남"(요 3.6)과 "성령으로 남" (4)


이 상대방중심의 삶이 하나님이 애초 정하신 삶의 규범인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언약 위에 세워진 것으로 "내가 너를 위할 것이니까 너는 나를 위하라"는 약속과 함께 명령(계명)을 주셨던 것이며 이는 최초 하나님께서 그 독생자와 새우신 언약과 계명 바로 그대로입니다. 주님은 그 동일한 것을 우리와 맺으셨으니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라" 하셨습니다(눅 22.20). 바로 이 최초의 "삶의 상호 교차(맞바꿈)"에서 즉 하나님의 언약과 "계명"(요 15.10)에서 최초의 '3위1체'가 시작되었던 것이며, 3위1체는 이로써 만유의 기본 대원리가 된 것이고 이 만유의 법칙을 따라 만물이 창조되었고 지금껏 운영되고 있으며 영원히 그러할 것입니다. 거시세계에서 만물의 영장인 인간의 생애가 3운법칙으로 철두철미 관장되고 있음이 이 3위1체로 인한 것입니다. 때문에 이 3위1체와 3운법칙은 자연스럽게 상호 검증 관계에 있어 이것만으로도 이 둘은 충분히 자체 증명이 되고도 남습니다. 다른 무엇이 감히 개입할 여지가 없습니다. 미시세계에서는 여러번 강조하지만 양자역학(상보성 원리)이 그 대표적 예시/例示입니다. 때문에 3위1체의 패턴 그대로이기에, 입자나 파동 둘 중 어느 하나에서 파생된 둘로서 인과성이 있다고 말을 던져보면 과학자들은 극구 부인합니다. 동시에 생성되었다는 것입니다. 쌍으로서 동시에 출현하는 것은 이 우주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해주어도 듣지 않습니다. 무턱대고 실험을 통한 증명 하나에만 매달리는 그들의 운명적 한계입니다. 하나님의 계시는 직관입니다.

이 3위1체 원리는 위에서 언급했듯이 확고한 삶의 방식으로서 유일무이 최고입니다. 3위1체에서만 이야기되는 "교차/交叉 삶"입니다.
영생 구원의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이 "거룩함"(히 12.14)의 증거 없이는 천국 입국 차단이기에 그같이 단언할 수 있음을 명심하시기를!
삶은 상호간의 약속입니다. 그렇지 않고는 <둘만 모여도 전쟁>입니다. 아담 범죄는 "언약을 어김"(호세아 6.7)에 있었음을 명심하시기를!
사랑으로 "하나"됨도 약속인 것입니다. 하나님과 인간 관계도 언약(약속)이기에 "신약"과 "구약"입니다. '언약'과 '계명'으로 시작된 인류사!

여기서 한 가지 지적할 것은 고린도전서 15장 42-45절에서 우리말 잘못된 번역입니다. 즉 고린도전서 15장 47절의 "첫 사람은 땅에서 났으니 흙에 속한 자이거니와 둘째 사람은 하늘에서 나셨다"는 "하늘에서 났다"로 고쳐야 하는 것입니다. 이 "둘째 사람"은 그리스도를 가리킴이 아니라 "성령으로 난 사람"을 가리키기 때문입니다. 이 부분(42-45절)을 잘 읽으면 "육으로 남"과 "성령으로 남"을 구별하여 설명하고 있음이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고로 첫 사람 아담과는 아무 관련이 없습니다. "성령으로 남"을 "위에서 났다"는 등으로 말함과 같습니다. 성령으로 남이기 때문이지요. 이 내용은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유의해야 합니다.



42. 죽은 자의 부활도 그와 같으니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43. 욕된 것으로 심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약한 것으로 심고 강한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44.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살아남이니 육의 몸이 있은즉 또 영의 몸도 있다
45. 기록된 바 첫 사람 아담은 생령이 되었다 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은 살려 주는 영이 되셨으니
46. 그러나 먼저는 신령한 사람이 아니요 육의 사람이요 그 다음에 신령한 사람이다
47. 첫 사람은 땅에서 났으니 흙에 속한 자이거니와 둘째 사람은 하늘에서 난 것이다
48. 무릇 흙에 속한 자들은 저 흙에 속한 자와 같고 무릇 하늘에 속한 자들은 저 하늘에 속한 이와 같으니
49. 우리가 흙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은 것 같이 또한 하늘에 속한 이의 형상을 입을 것이다
50. 형제들아 내가 이것을 말하니 혈과 육은 하나님 나라를 물려받을 수 없고 또한 썩는 것은 썩지 아니하는 것을 물려받지 못한다
51.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니 우리가 다 잠 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되리니
52. 나팔 소리가 나면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고 우리도 변화되리라
53. 이 썩을 것이 반드시 썩지 아니할 것을 입겠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으리라
54. 이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함을 입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을 때에는 사망을 삼키고 이기리라고 기록된 말씀이 이루어지리라
55. 사망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네가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육으로 남"(요 3.6)과 "성령으로 남" (3)



구원 받음은 주님과 "합하여 한 영"(고전 6.17)이 됨을 말합니다. "한 영" 곧 "하나"(요 10.30)가 되는 것은 부자지간이신 하나님께서 "하나"이심과 똑같은 것입니다. 즉 성부의 것은 성자의 것이요 성자의 것은 성부의 것이 되십니다(17.10). 그리고 이것은 성부 안에 성자, 성자 안에 성부께서 계심으로도(10.38) 표현됩니다. 주님과 나와의 관계도 동일합니다. 모름지기 하나님의 3위1체에서 짝을 이룬 둘의 하나되는 특징은 이같이 같은 이치를 따르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주님의 죽으심과 부활이 내 죽움과 부뢀이 됨으로써 내 구원이 된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지금까지 그렇게 믿어 온 대로, 그런 의미로 "간주/看做"해서가 아닙니다. 실제 그와 같이 나 위하여 내 이름으로 죽으시고 부활하신 주님 친히 성령으로 내 안에 오심으로써 완벽하게 이루어진 것입니다. "주님과 <합하는> 자는 <한 영>이라"(고전 6.17) 한 그대로입니다. 이제까지 "바벨론 신학"에만 사로잡혀 성령과 3위1체에 대해 전혀 무지무식한 탓에 "대신 죽으심"이라는 천하의 웃음거리만 만들어 온 기독교 신학자들입니다.

무릇 범죄한 자는 모름지기 당자가 처벌을 받는 것이지 <대신> 무엇이 누구가 처벌 받는다는 것입니까. 이런 천하에 둘도 없는 해괴망측한 거짓말을 지어내게 만든 마귀의 맹랑한 장난질에 놀아나 장단만 맞추어 온 기독교 신학자들, 하나님의 거룩하신 구원의 진리 말씀을 가로막고 한낱 세상의 웃음거리로 만든 거의 2천년간이나 쌓아 온 허물을 다 어찌 할꼬! 하나님의 진리를 제대로 이해하는 것은 오직 "계시"(눅 10.22) 밖에 없다 하신 말씀을 비웃고 죽자사자 학문시/學問하더니 거두어들인 결과가 그뿐이던가! "예수님께서 성령으로 기뻐하시며 말씀하시기를,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합니다. 옳습니다. 이렇게 된 것이 아버지의 뜻입니다"(:21). 하나님께서 일부러 숨기시는데 이런 기막힐 저주 가운데서 헤어날 수 있나요!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모이기를 폐하는(말씀을 제대로 전달 않는 장소에야 백날 가도 소용 없으니 이 점을 가려 읽어야)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우리가 진리를 아는 지식을 받은 후 짐짓 죄를 범한즉 다시 속죄하는 제물이 없으니 모세의 법을 폐한 자도 두세 증인으로 말미암아 불쌍히 여김을 받지 못하고 죽었거든 하물며 하나님의 아들을 짓밟고 자기를 거룩하게 한 언약의 피를 부정한 것으로 여기고 은혜의 성령을 욕되게 하는 자가 당연히 받을 형벌이야 얼마나 더 무겁겠느냐. 너희는 생각하라.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 하시고 또 다시 주께서 <그의 백성을 심판하리라> 말씀하신 것을 우리가 아니 살아 계신 하나님의 손에 빠져 들어가는 것이 무서울진저"(히 10.24-31).

우리가 저질러 놓은 죄이니까 마땅히 우리 각자가 그 대가를 치러야 하는 것이지 누가 대신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닌 것입니다. 이것이 거룩하신 하나님의 공의/公義이십니다. 그러나 한 번 죽으면 그만이고 속절없이 끝나버리는 인생. 때문에 나를 살리시려고 나와 <함께> 죽으시는 방법을 택하신 것이 나 위한 십자가 죽으심의 의미입니다. 함께 "하나"(요 10.30)가 되어주시어 함께 부활하심이 됨으로써 나를 살리시기 위함이었던 것입니다. "하나"가 됨 즉 "한 영"이 됨에서는 "한 몸"(고전 7.4)이 됨과 마찬가지로 이 글의 모두에서 미리 밝힌 것처럼 "교차/交叉 소유"가 반드시 이루어지게 마련입니다. 가장 중요한 부분입니다.

3위1체에서 핵심이 되는 것이 바로 이 제3위로서의 특성인 것입니다. 이것은 이 "하나"됨에서 마치 둘을 잡아 묶는 끈과 같은 것입니다. 즉 갑은 을의 것이 되고 을은 갑의 소유가 됩니다. 아내의 몸은 남편의 것이 되고 남편의 몸은 아내의 것이 됩니다. 마찬가지로 "한 영"에서는 각자의 삶 자체가 그렇게 됩니다. 우리가 주님과 "한 영"이 됨으로써 구원 받음이 된 이상 그리하여 주님의 죽으심과 부활이 내 것이 됨으로써 이루어진 하나님 은혜이시니, 나의 이후 삶은 애오라지 주님을 위한 일편단심에서만 영위되는 것임을 우리 모두 항상 가슴 깊이 아로새겨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이를 회개하지 않는 한 나는 영생 구원에서 가차없이 끊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날까지 많은 사람이 바벨론신학의 거짓됨에 속아 이 심각한 경고를 받지 못한 채 서성거리다가 자기도 의식 못한 사이 멸망길에 들어서고 있습니다. 성경 애독하기를 게을리한 결과라 보아도 틀린 말이 아닙니다. 몹시 뜨거운 것에 피부를 노출시켜 놓고도 데인 것을 후회해보아야 소용 없습니다. 때는 늦은 것입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으니(죽어버렸으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시어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갈 2.20).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다. 우리가 살아도 주님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님 위하여 죽음이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님의 소유이다.
<이를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셨으니 곧 죽은 자와 산 자의 주인, 임자, 소유주)가 되려 하심이다"(롬 14.7-9). 이 교차/交叉 삶이 바로 다름아닌 영생 구원이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자아중심이 아닌 상대방중심의 삶이니 이 상대 중심에서는 죄가 성립이 될 수가 없습니다. 이것이 "거룩함"입니다.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따르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님을 뵙지 못하리라"(히 12.14).

2026년 3월 22일 일요일

“성령으로 난다”(요 3:6) 하신 말씀의 의미를 질의하니

이렇게 답하고 있습니다.


'성령께서 직접 주도하시는 영적 탄생(거듭남, 중생)'을 의미한닥. 쉽게 말해, 하나님의 성령이 사람의 영(靈)을 새롭게 창조하시고 하나님의 자녀로 다시 태어나게 하시는 일인 것. 예수님은 니고데모와의 대화에서 여러 표현으로 설명하셨다. 즉
• 3절 → 거듭난다(위로부터 난다, ἀνωθεν)
• 5절 → 물과 성령으로 난다
• 6절 → 성령으로 난다(영으로 난다)
• 7절 → 다시 거듭나야 하겠다
위의 네 표현은 모두 같은 한 가지 사건을 가리킴이니, 육체적 출생(엄마 뱃속에서 나는 것)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영적 출생이라는 것.

“성령으로 남”은 구체적으로 어떤 의미인가?
• 주체가 성령이시다.
사람이 스스로 노력하거나 결심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성령 하나님께서 주도적으로 새 생명을 주시는 창조적 사역이다. (바람이 임의로 부는 것처럼 보이지 않고 알 수 없는 방식으로 일하심).
• 결과가 ‘영’이다.
• 육으로 난 것 → 육(肉) → 여전히 죄성, 세상적 본성을 가진 존재
• 성령으로 난 것 → 영(靈) →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고, 하나님의 성품을 닮아가는 새로운 본성을 가진 존재 즉, 본질이 바뀐다. 단순히 도덕적으로 좋아지는 수준이 아니라, 영적인 정체성 자체가 새로워지는 일이다.

• 어떻게 그렇게 되는가?
성경 전체를 종합하면, 성령으로 나는 것은
•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는 믿음
• 그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께서 우리 안에 오셔서
• 죄 사함 + 새 생명 + 하나님의 자녀 됨을 주시는 과정
그래서 “성령으로 난다”는 말은 결국 예수님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께서 우리를 거듭나게 하시는 것을 가리킨다. 요약하면 성령께서 주도적으로,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우리 영을 새롭게 창조하시어 하나님의 자녀로 다시 태어나게 하시는 일이니, 이것이 바로 거듭남이고,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유일한 길이다(요 3:5).

3위1체와 성령 관련해 아는 것이 없으니 
동문서답식 답변일 수밖에 없습니다.

주님께서 이렇게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라 분명히 나누어 말씀하심은 주님이 "마지막 아담"(고전 15.45)으로 오셨기 때문입니다. 즉 "육으로써" 사람이 나는 방법과 "하나님의 성령으로써" 나는 방법이니 명백히 대칭(짝)을 이룸입니다. 다시 말해 첫 사람 아담이 직접 움직여 사람이 났으니 "마지막 아담"께서도 <친히> 움직이셔서 새 사람이 생겨나야 "대칭(짝)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친히 어떻게 움직이셨는가ㅡ말 그대로 "성령으로" 움직이신 것입니다. 독생하신 하나님께서 사람이 되신 것은 범죄로 죽어버린 아담을 대신해 아담이 되시려고 그 대칭(짝)으로서의 "마지막 아담"으로서 오신 것입니다. 그리하여 우리와 "하나"되시려고 아담의 죽음 그대로를 이어 받으시어 죄인 사형수처럼 십자가형을 당하신 다음 성부 하나님의 다시 살리심울 입어 부활하신 그대로 하늘로 오르시니 원래부터 성부 하나님과 "하나"이신지라 (육체로 현재 "영광의 몸"이심과 동시에) 성령으로 또한 계시어 세상에 임하시어(요 14.23) 활동하십니다. 바로 이렇게 성령으로 지금 일하시는 예수 우리 주님께서 믿는 각자 안에 임하여 오심이 우리의 "성령의 선물 받음"이요 "성령 세례"입니다. 물론 이 경우 성령으로 존재하심은 항상 성부 하나님과 "하나"(요 10.30)되어 계심입니다.

그리하여 믿는 각자에게 예수님 친히 성령으로 임하시어 말하자면 "새 사람" 다시 말해 2중/二重사람, 복/사람(주 예수님과 나)처럼 되어 있는 형국입니다. 이것이 "성령으로 남"입니다. 육신으로 난 우리의 육체가 아담의 육체인 것과 같이 이제 성령으로 난 나는 내 안에 "마지막 아담"(고전 15.45)의 영으로서의 성령을 모시고 있으니 명실공히 다시 남, 성령으로 남, "마지막 아담"으로 남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하시는 모든 일은 원리원칙을 따라 빈 틈이 없고 허술한 데가 없으십니다. 만유의 대법칙을 따라 철두철미 진행되는 모습이십니다. "마지막 아담"께서 이와 같이 성령으로 친히 움직이시어 "성령으로 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영광, 영광입니다.


"물과 성령으로 남"의 의미

 

요 3:5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는 예수님 말씀 관련 여러 해석이 있어 죄의 씻음·정화·중생의 씻음으로 받아들여져
• “물” = 죄로부터의 정결·씻음을 상징. 구약에서 물은 자주 하나님께서 마음을 깨끗이 씻어주시는 상징으로 쓰임 (에스겔 36:25 “내가 정한 물을 너희에게 뿌려서 너희로 깨끗하게 하리니”, 시편 51:2,7 등)
• 성령 → 새 생명 창조·새롭게 함
죄 씻음과 동시에 새 생명을 받는 거듭남 전체를 의미함이라 해석하나, 성령과 물은 하늘과 땅 차이인데 어찌 함께 논한단 말인가! 아무리 성경에 무식해도 분수가 있지.

여기서 말씀하신 "물"은 "불"과의 대칭성적 의미로 전자는 아담의 씨 즉 자연계 물질로 된 육체, 후자는 네피림 곧 처음부터 영물로서 인간이 된 자들인 바, 워낙 엄청나게 네피림이 세상에 깔려 있기 때문에 이와 같이 구분하신 것이다. 주님이 다시 오실 때 "불꽃 중에 임하신다"(살후 1.7)는 등의 표현이 바로 이를 가리킴이다. 즉 자연계와 초자연계(영계)의 차이를 "물"과 "불"로 나타내심이다. 아담 범죄로 동물성 육체로 전락해버려 그렇지 원래 아담은 초자연계 존재였고 천사(영물)들이 이 아담을 위해 아담을 기준하여 창조되었던 것이며, 아담의 씨로서의 모든 인류도 이같은 영적 존재로 "불"로서의 속성임을 알아야. 

"육으로 남"(요 3.6)과 "성령으로 남" (2)

성부와 성자께서 "하나"(요 10.30) 되심은 창세 전 성부께서 독생자를 낳으신 때부터 즉 성자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시기 이전부터입니다. 성자께서는 성부 하나님의 "형상"(고후 4.4)이시므로 "성자로 말미암아 성부께서 세상을 창조하셨다"는 말을 하게 됩니다. 성자께서 우리 구원 위해 우리를 위하여 사람 되시는 때만 제외하고는 처음부터 줄곧 "하나"로서 계시니 십자가 고난 당하실 때도 물론 하나로 계심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주 만물에 충만하시고 또 만유이시고 이는 성자 하나님께서도 똑같으시나 단지 성부께서는 "만유 위에 계신다"는 말도 하게 되는 그 차이만 있습니다. 다시 말해 성부 하나님께서도 성자께서 십자가상에서 당하시는 모든 고초를 다 함께 받으셨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독생자 하나님께서 사람이 되시는 때부터 두 분께서는 분리되셨으니, 성자께서 사람되심을 성경이 "(아버지께서) 그 아들을 내어주셨다(to deliver) 함이 그 뜻입니다. 그리하여 예수("구원자"라는 의미의 히브리 말) 우리 주님께서 우리와 같이 되시려고 친히 세례를 받으시는 순간 임하여 오신 성령이 바로 아버지 하나님의 성령으로서 그 때부터 다시 성부와 성자께서 이전처럼 "하나"가 되신 것.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선물)로 주지 아니하시겠느냐"(롬 8.32).

그러므로 우리 주님께서 성령으로 각자에게 임하심은 성부 하나님께서 또한 똑같이 임하여 오심이기에, 첫사람 아담은 육신으로 말미암아 우리 인간을 생산했음에 반하여 "마지막 아담"께서는 아담으로서의 똑같은 일이시지만 성령으로 말미암으심인즉 성부 친히 함께 "하나"로서 임하심으로써 우리 각자가 하나님의 아들로서 탄생함은 아주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단 우리는 "양자"들이고 주님은 친아드님이시며, 나는 하나님의 "많은 아들" 중 하나이고 주님은 그 "맏아들"이 되십니다.

사람이라고 다 구원 받을 수 있는 대상자가 아니니 아담 범죄가 사탄의 말을 따름으로써 된 것이라 이는 곧 하나님보다 마귀에게 더 순종한 의미가 되어 아담이 마귀 앞에 무릎 꿇은 꼴이므로 아담의 세상 통치권이 사탄에게 고스란히 넘겨진 것입니다(눅 4.6). 해서 사탄이 이 세상 통치 차원에서 악령들의 씨를 마구잡이로 세상에 퍼뜨려 세상이 모두 "네피림"(창 6.4) 천하처럼 된 것입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네피림을 분간하게 되어 있지 않으므로 마치 네피림이 아예 존재하지 않는 듯이 그리고 하나님의 미리 택하심이 없는 듯이 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단지 아담 한 사람의 불순종(범죄)이 얼마나 악을 일파만파로 확산시켰는지를 신물나게 체험 중이니 죄 짓지 않기로, 각자 순종의 삶이 되도록 주님이 경고하신 말씀대로 "힘쓰는"("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니 들어가기를 구해도 못하는 자가 많으리라"ㅡ눅 13.24) 것 밖에 없습니다. 바벨론 신학에서 얼마나 사탄의 거짓말로 세뇌되었으면 오늘날 소위 "구원 받았다"는 사람들을 보면 무조건 "힘쓴다"는 식의 말을 기피하고 있는데 이상 주님의 말씀대로 단언하거니와 그런 이들은 "헛되이 믿음'(고전 15.2)이요 멸망 길로 직진하고 있음울 알아야 합니다. 주님의 모든 말씀은 구원된 자들에게 <미리 주시는 경고>이심을 왜 인식 못한단 말인가요. 도대체 성경울 어떻게 읽는 겁니까. 우리 위해 죽어주신 메시야 우리 주님께서 우리 각자 안에 성령으로 오심으로써 비로소 그 죽으심과 부활이 내 것이 되어 구체화, 현실화하는 것인 바 이는 순수히 "다시(거듭) 남" 즉 "성령으로 남"이기에 순전한 하나님의 창조에 속하여 여기에만큼은 우리의 그 어떠한 "힘씀"도, 순종의 그 어떠한 "선을 향함"(롬 2.7)도 개입될 여지가 없다는 것은 초등생도 능히 이해하는 너무나 상식적인 것입니다. "행위로 구원 얻지 못한다" 함이 이 때문입니다. 문제는 이렇게 창조된("구원된") 이후가 아닌가요! 그런데도 왜 이런 것 하나 구별 못한다는 것인가요. 무엇을 착각해도 꽉 막히게 꼼짝도 못하게 착각하고 있는 겁니다. 구원 관련 너무나 엄청난 <선입견>에 사로잡혀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구원은 아담의 범죄로 모든 인류가 죽은 자가 됨으로 인한 불가피한 결과에서 나온 것입니다. 다시 말해 아담 범죄 전 상태로 되돌려 놓으시기 위함입니다. 따라서 그동안 사탄이 많이도 퍼뜨려 놓은 "네피림"(창 6.4)은 여기서 제외됩니다. 네피림은 시초에는 초대형 거인이었으니 이는 영생하던 아담이 동물성 육체로 도로 돌아가버렸어도 천년 가까이 살았던 것과 같은 맥락으로서 영물들의 씨(후대)는 장수하기보다 신체 골격이 초대형으로 장대함이 그 특징이었습니다. 그대신 수명은 "120년"(:3)에 그쳤습니다. 그러나 이런 거인족은 모세 당시까지도 간혹 남아 있어(민 13.33) 이스라엘 백성을 놀라게 했습니다. 이 네피림족은 그 망령은 얼마든 인간의 태에 들어가 소위 "환생"을 할 수 있어 지금은 보통 인간의 체격으로 태어나고 있습니다. 소위 "전생, 윤희" 따위가 이래서 발생하는 것인데 악령들의 씨(후대)에만 해당되니 속지 말아야 합니다.

아담 범죄로써 죽음이 왔고 이제 영생의 길로 접어들려는 것이므로 반드시 모든 죄의 "회개"(행 2.38)가 필수입니다. 회개는 과거 지은 죄를 뉘우침에 그치지 않고 <다시는 죄를 짓지 않겠다는 즉 하나님의 모든 뜻(말씀)에 순종하겠다>는 굳건한 결의를 의미합니다. 하나님 앞에서의 약속인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는 세례 백 번을 받은들 무의미뿐입니다. 로마서 7장을 바울의 믿은 후 체험이라고 믿는 자에게서 세례 받음도 같은 결과일 뿐이니 그런 경우 회개 여부를 꼼꼼히 따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본인이 진정 회개하는 자세인 경우 하나님께서 이를 몰라보실 수 없음은 물론입니다. 이런 회개의 세례가 아닌 때에는 죄 용서가 되지 않으므로(:38) 성령께서 임하실 수가 없습니다. 미국에는 무조건 "믿으면 구원"이라 하여 세례를 아예 생략, 폐지하는 집단도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공공연히 드러내는 마귀 짓입니다.

미국내 개신교 종파가 많지만 모두가 한결같이 로마서 7장을 바울 사도의 믿은 후 개인 체험이라고 믿는 점에서는 똑같습니다. 미국이 그러하니 다른 나라야 말할 것도 없습니다. 아담이 범죄하여 이 모양 이 꼴이 되어 구원이 필요하게 된 마당에 "죄와 사망의 법이 나를 사로잡아 온다"(롬 7.23)니 웬 말인가요! 우리 구원은 "죄에서의 구원"(마 1.21)입니다. 영생 얻게 하는 것이 구원이 아닙니다. '죄에서 해방"되니까 그 <결과>가 자연적으로 '영생/구원'인 것입니다. 범죄로 영생을 잃었는데 여전히 죄 가운데 매여 있다니요! 사탄이나 할 수 있는 말이지요! 믿어도 "헛되이 믿는"(고전 15.2) 것이 됩니다.


2026년 3월 21일 토요일

필자의 자기 소개(프로필) 최초 공개

화가는 그림으로 말하고

음악가는 리듬으로 말한다.

Kwon Tayseek이란 인생은
3위1체·3운법칙으로 말한다.
그 외로는 일절 말할 것이 없다.
세계적으로 이 한 이름으로만
영문 알파벹 11자로 알려지길 바람이니
온세계에 복음이 알려져야겠기에!
최초로 주님 오실 때의 "광야의 외치는 자의 소리",
주님 다시 오실 때의 "그 소리" 되길 원한다.
"천사가 가진 복음"(계 14:6)을 말한다.
21세기는 "천사의 복음"의 시대다.

"3위1체·3운법칙"은 대외적으로 "trinia, fashomo/fashomo, trinia로 알려지기 바라며
이유를 설명하면 'trinia'는 라틴어 trinitas의 변형으로 3위1체를 의미하고,
'fashomo'는 3운법칙을 의미하여 'fas'는 '신의 법(divine law)'이란 뜻이며
'homo'는 'Homo sapiens'(인간), 모두 라틴어 합성이다. 국가적 반발로 영어를 쓸 수 없기 때문.
(각나라 말로 3운법칙ㆍ3위1체를 표현해야 할 터이니까 미리 그 공통 용어를 정해 놓는 뜻.)
3위1체는 "3위1합/合"이라 해도 좋다.

"마지막 때" 기도와 말씀 전파에 의한
21세기 범세계 복음 운동이다.
3운법칙은 이 천사의 복음을 보증하는
21세기 "표적과 기사"(너희는 표적과 기사를
보지 못하면 도무지 믿지 않을 것ㅡ요 4.48).
3위1체는 오늘날 "천사의 복음"의 대명사요
3위1체는 곧 만유의 기본 대원리인 것이다.
'만유의 법칙'이 뒤늦게나마 알려진 것이다.
이 21세기 "마지막 때"에 마침내.

우리의 구원도 이 원리로 이루신 것이다.
하나님의 모든 말씀도 그러하시어
"그 짝이 없는 것이 없다"(사 34.16) 하셨다.
이 말씀으로 만유를 창조하신 결과가 곧
만유에 3위1체의 원리가 스며든 이유다.
속속들이 깃들여 있음이 여지없이 드러난 것.
거시세계에서는 만물의 영장인 인간의 생애를
관장하여 그 죽음의 때를 지정한 3운법칙으로,
미시세계에서는 상보성 원리와 양자역학으로
"대서특필"되듯 드디어 드러난 것이다.
천사들이 마침내 나섬으로써다.
그리하여 장쾌하게 사탄의 세력으로
무릎 꿇게 만들어(계 12:7-9) 획득한 총결산이다.
천사의 복음의 특징은 2천년 전통의 바벨론 신학
그 사악한 사탄의 거짓말들을 궤멸시킴에 있다.
사탄은 복음 전파의 벽두부터 즉 초대교회가
시작되자마자 곧장 방해공작에 들어가(갈 1.6)
바벨론 신학의 철옹성을 구축해 왔던 것이다.
아담 범죄가 사탄에게 무릎 꿇은 결과라
아담의 세게 통치권이 송두리째 넘어간(눅 4.6)
탓으로 세상 통치 차원에서 저지르는 행위이기에
손을 대지 못했었던 것이나 천사들이 해낸 것.
그간 한동안은 때문에 "돌이켜 어린 아이 같이
되지 않는"(마 18:3) 한 구원되는 자가 없었다.
그러나 이제는 "너희가 진리를 알 것이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할 것이다"(요 8.32)
하신 대로 온전한 진리로서의 복음 전파 시대다.

3운법칙과 3위1체가 상호 검증 관계에 있어
이것만으로도 두 법칙의 넉넉한 자체 증명이라,
하나님의 실존하심을 만천하에 공표함이 되고
우리 구원의 원리 또한 그같이 훌륭히 입증되어
그 찬연한 진리로서의 광영을 드러냄에서다.
"만유는 수(All is number.)"라 한 피타고라스.
이제는 "만유는 3(All is three.)"이라 할 시대.
노자의 "萬物/삼생만물" 바로 그대로다.
3위1체 과학시대인 오늘날 혁명적 삶도 가능하니
애초부터 이런 삶을 하나님은 요구하신 것이다.
3위1체는 그 요지가 "교차/交叉 소유"에 있어,
하나님의 3위1체적 특성을 가리켜 주님 친히
"아버지의 것은 제것, 제것은 아버지 것"(17.10),
"아버지는 제 안에, 저는 아버지 안에"(10.38)
라 말씀하심으로써 이를 명백히 하신 것이다.
이같은 서로의 '교차'는 교차적 삶으로 직결되어
갑은 을의 삶을 살고 을은 갑의 삶을 살게 되니
상대방 중심의 삶이요 자기 중심의 삶이 불가능.
이것이 삶의 기본 원리임에도 이룰 어긴 인생들.
이 비극적 불행은 아담의 불순종에서 비롯된 것.
"아담처럼 언약을 어기고"(호세아 6.7). 

아담 등 모든 이성적 존재의 생명(삶)은
'언약'과 '계명'으로 시작되었으니 즉 하나님께서
"내가 전적으로 너를 위하겠다. 약속한다. 그런즉
너도 전적으로 나를 위하고 네 자신을 위해서는
일절 아무 것도 하지 말라"는 명령(계명)을
주셨음이다. 독생자 하나님도 예외가 아니셨다.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 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할 것"(요 15.10)이라 하신 것.
그러나 아담은 이 '약속'과 '계명'을 어긴 것이다.
우리 주님께서는 똑같은 '약속'과 '계명'을
구원 받은 우리 각자에게 주신 것임을 오늘
이 시간 깨닫고 마음에 깊이 깊이 아로새겨야!
이것이 오늘날 "천사가 가진 복음"의 골자이다.

오늘날 이 "천사의 복음"은 이 일을 위해 간구하는
기도의 동역자들이 유일한 대들보가 되어 있다.
(대들보는, 한옥에서 기둥 사이에 건너지르는
가장 크고 중심이 되는 수평 구조재로
지붕의 무게를 지탱하여 기둥으로 분산시키는
핵심 역할을 함으로써
조직을 지탱하는 데 없어서는 안 될
가장 중요한 인재들을 뜻한다.)

"(천사가) 큰 음성으로 외치되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라!
이는 그의 심판하실 시간이 이르렀음이니
하늘과 땅과 바다와 물들의 근원을 만드신
이를 경배하라!"(계 14.7).

세계 인구...국가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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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별 공용어 현황
https://en.wikipedia.org/wiki/List_of_official_languages_by_country_and_territory



2026년 3월 20일 금요일

"육으로 남"(요 3.6)과 "성령으로 남" (1)

 

계시록에 예언된 "천사가 가진 복음"(계 14.6)은 21세기 오늘날 이제 실존합니다. 그게 실제 무엇이냐 할 것인데, 지금까지 교회를 좀먹어 온 바벨론 신학과 직결시키면 됩니다. 그 반대 개념일 수밖에 없으니까. 바벨론 신학의 폐단을 일곱 가지로 대별하면 1). 아담의 죽음이 "영적 죽음"이는 것. 2). 우리 위하신 주님의 죽으심을 "대신 죽음"이라 하는 것. 3). 로마서 7장(24절)을 바울 사도 자신의 믿은 후 체험이라는 거짓말. 4). 한 번 구원 받으면 영원 붋변으로 결코 구원이 무효가 될 수 없다는 거짓말. 5). "참고 선을 행함으로 영생에 이른다"(롬 2.7)는 성경적 강조/경고를 무시해버리는 위험천만의 악독한 "말씀 혼잡"(고후 4.2)인 것입니다. 그리고 6). 예수 우리 주님께서 "마지막 아담"(고전 15.45)으로 오셨음에도 이에 전혀 유의치 않아 주님께서 왜 다시 오셔야만 하는지 지금도 그 이유를 모르고 있고 7), 3위1체 관련해서도 그러하여 이 두 가지 무식·무지까지 포함됩니다.

참으로 주님 친히 경고하신 바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할 것"(마 18.3)이라 하신 그대로입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시어 보잘것없고 누추하기 짝이 없는(아담 범죄로 인하여) 인간이 되시고 나 위하여 죽으시기까지 하신 사랑에 감복/감동하여 나도 주님을 사랑하는 그것만 늘 생각하고 감사하며 보답하려는 착한 마음 가짐만이 대수인 것입니다. 그 이상 하나님께서도 무엇울 바러지 어니하심입니다.

세례 요한이 "주님께서 성령과 불로 세례를 주실 것"(눅 3.16)이라 한 대로 우리 주님은 '구원자'이시니까 또한 '심판주'이신 것입니다. 이는 바울 사도가 아레오바고 전도 때 "알지 못하던 시대에는 하나님이 허물치 아니하셨지만 이제는 어디든지 사람을 다 명하시어 회개하라 하셨으니 이는 정하신 사람으로 하여금 천하를 공의로 심판할 날을 작정하셨다"(행 17.30) 함과 같은 맥락입니다. 다시 말해 이전에는 모두가 죄인이요 따라서 멸망뿐이기에 심판 자체가 무의미했으나 이제는 누구에게나 영생 구원의 길이 예수 우리 주님의 은혜 공로로 만인에게 개방되어 있기에 비로소 심판이 가능하게 된 것입니다.

"성령의 세례"는 주님 친히 <회개하여 주님의 구원을 믿어 세례 받은> 각자 안에 성령으로 임하여 오심(이 때 비로소 나의 구원이 구체화/현실화하는 것)이고, "불의 세례"는 죄인들을 멸망의 불 못에 들어가는 것으로 종결시키는 사형 언도를 내리심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 판결은 첫사람 아담이 범죄 않고 살았다면 바로 그가 할 일이지만 범죄로 죽었으므로 최초 아담이 폐기된 그 빈 자리를 "마지막 아담"이신 주님께서 채우시고 심판자의 역할을 그같이 수행하심입니다. "불"은 심판을 의미함이지 신학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성령"울 말함이 아닙니다. "성령의 불로 우리 죄를 철저히 없이하산다" 따위 미신을 믿지 말아야 합니다. 죄 용서는 나 위하여 훌리신 주님의 십자가 죽으심의 보혈로만 완전히 이루어지는 것이니까.

오늘날 주님의 다시 오심도 바로 (죽은) 아담이 할 일로서의 인간 세상 통치인 것입니다. 첫 사람 아담이 죽지 않았다면 그렇게 천년만 인간 세계를 통치하면서 의인과 악인이 나누어지는 것이 판별됨에 따라 그 천년 후에(악인과 의인을 구별해내는 것이 목적이므로 천년이면 충분한 기간) 재판장의 자리에 앉게 되었을 것인데 바로 그 양식 그대로를 주님께서 따르심입니다. 주님 다시 오시어 실시될 "천년 왕국"의 의미가 여기에 있습니다. 천년 왕국 이후에는 기한도 없고 다함이 없는 영원한 화려 찬란한 태평 세월이 시작되는 것.

이와 같은 "마지막 아담"의 역할로서 더욱 중요한 의미가 또 있으니 그것은 첫 사람 아담으로 말미암는 "육으로 남"(요 3.6ㅡ"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니")과 대칭(짝) 관계에 있는 "성령으로 남"의 주체가 되심입니다. 즉 첫사람 아담이 낳고 낳음으로써 각자 인간이 생겨남과 같이 우리 "마지막 아담"께서는 믿는(회개한) 각자 안에 성령으로 임하여 오심으로써 말하자면새로운 인류가 생겨나는 샘입니다. 물론 이는 처음부터 그렇게 설정하신 것은 아니고 아담 범죄로 유발된 것이지만 어쨌든 철두철미 하나님의 대칭성(짝) 원리를 따라 진행시키시는 일입니다. 따라서 단 한 번만의 구원의 기회이고 그 후는 다시 되풀이되지 않습니다. 단 성령으로 오심이니까 성부와 하나되심 그대로 각 자 안에 임하십니다. 



2026년 3월 19일 목요일

우리가 항상 깨어 있어 의식하고 또 의식하고 있어야 할 일이 있으니

항상 우리가 의식해야 하는 것은 우리가 "죽은 자" 즉 "신령한 몸", "영광의 몸"이 아니고 "육의 몸", "낮은 몸"(고전 15.44/빌 3.21) 즉 짐승의 육체라는 사실입니다. 짐승이 아닌데도 짐승의 탈을 썼으니! 탈 정도가 아니라 육체로는 완전히 "짐승"을 뒤집어쓴 것입니다. 짐승은 하나님이 장치해주신 대로 먹고 마시는 것 빼고는 종족을 퍼뜨림이 최우선입니다. 그래서 육체도 관련 기능도 철저히 이에 따르도록 설계되어진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육체를 인간이 뒤집어쓴 것입니다. 그러니 영혼은 있어 영적, 정신적인 면에서는 사람인데 육체로는 완전히 "개망나니" 짓. 자고 먹고 나면 관심이 성적인 것에 거의 매몰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 할 수 있는 상황입니다. 인간이란 원래가 이런 것이라는 아주 위험한 망념에서 탈출하시기를!


동식물이야 그 종을 유지 보존하기 위해서는 이런 욕구를 장치해 두실 필요성은 당연합니다. 우리도 아담 범죄로 현재 짐승의 육체가 되어 있는지라 성적 낙이 없으면 삶이 무의미해지리라 느껴지는 것은 지금 현재 상황일 뿐, 정상 상태의 신령한 몸으로 복귀되면 비교도 못할 영적 차원의 삶의 당연한 낙이 무궁무진할 터인즉 인식을 지금 새로이 할 필요가 있습니다. 현재 이 세상에서의 생활 자체가 비정상이고 비극적인 것이니(나약한 육체로 인한 인간고, 죄의 몸인데다 사탄의 지배 아래 있게 된 이 모두 아담의 범죄로 인한 결과물) 세상에 대한 일체의 미련을 끊고, 세상 구원을 위하고 교회를 위한 제사장으로서의 기도(북한교회를 <위하여> 또 그들 성도들과 <함께 하는> 기도로서) 그리고 끊임 없는 말씀 전파와 "참고 선을 행함(기도와 전도도 다 포함되지만)"(롬 2.7)으로 분주한 나날을 주님 안에서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고후 6.1) 자로서
영위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의 이 세상 다스리심은, 미시세계에서는 하나님의 3위1체의 원리가 그냥 그대로 투영/반영된 양자역학의 최근 등장으로, 그리고 거시세계에서는 만물의 영장인 모든 인간 생애를 철두철미 관장하는 3운법칙(fashomo) 역시 3위1체 체계를 벗어나지 않음을 보여줌으로써 확증되었으니 21세기 오늘날 마지막 때 "천사가 가진 복음"(계 14.6) 전파에 명실상부한 선구자 역할을 다할 일입니다.

차례대로의 성경 묵상 (3)

 아담 범죄 결과로서의 죽음 때문에 구원이 필요하게 되어 "복음"이란 개념도 세상에 처음 생겨났고 이 '복음'을 기반으로 하는 기독교인데, 아담 관련 성경적 사실 파악이 이토록 왜곡되어 있으니 여기서 대관절 무엇을 기대한다는 말인가. 사탄의 이 세상 장악이 이 정도이다.

 때문에 주님께서는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할 것"(마 18.3)이 하신 것이다. 그리고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니 <들어가기를 구하여도 못하는 자가 많을> 것이다"(눅 13.24) 하셨으니, 하나님도 믿고 영생 천국도 다 믿어 <믿고> <믿는데>도 그래서 간절히 원하건만 그 소원대로 되는 것이 아니고, 그것도 "많은" 이들이 그렇다 하셨으니 그 이유가 무엇인가. 말씀대로 하면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지" 않았다에 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비좁고 길이 협소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다"(마 7.13,14) 하셨으니, 말하자면 <편한 대로 믿음>과 그렇지 않음의 차이라 할까. 편한 대로 믿는 게, 신앙생활하는 게 무얼까? 이 세상과 믿음 생활은 잘 어울리지 않는다는 사실에 먼저 눈을 떠야. 왜일까? "씨 뿌리는 비유"(마 13.18)에서 "길 가에 있다는 것은 말씀을 들은 자니 이에 마귀가 와서 그들로 믿어 구원을 얻지 못하게 하려고 <말씀을 그 마음에서 빼앗는 것>이요, 바위 위에 있다는 것은 말씀을 들을 때에 기쁨으로 받으나 뿌리가 없어 잠깐 믿다가 <시험>을 받을 때("잠시 견디다가 말씀을 인하여 <환난>이나 <핍박>이 일어나는 때"ㅡ마 13.21)에는 배반하는 자요, 가시떨기에 떨어졌다는 것은 말씀을 들은 자로 지내는 중 <이생의 염려>와 <재리>와 <일락>에 기운이 막혀 온전히 결실치 못하는 자요, 좋은 땅에 있다는 것은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지키어 인내로 결실하는 자"(눅 8.12-15)라 하심과 같이, <환난>, <핍박>, <이생의 염려>, <재리의 유혹>, 세상 <쾌락> 등 시험에 걸려 배신 행위에 들어감이다.
이런 것들을 거쳐가느라 고생이 자심한 것이 좁은 문, 좁은 길이다. 한 마디로 이 세상을 사탄이 지배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상황인 것이다. 육신적, 물리적인 고통/고난 외에도 온갖 사악한 거짓말로써 집중 공격을 가하는 것이니 그래서 좁은 문, 좁은 길이다.
많은 사람이 오해하기를, 사탄이 처음부터 하나님의 일에 훼방 놓는 자로 알고 있는데, 이는 마치 하나님의 경쟁자인 것처럼 자기를 부풀어 올린 사탄의 거짓말에 넘어가버려 완전 세뇌된 탓이다. 해서 마치 그룹(cherub) 중 하나 즉 타락한 그 그룹인 양 자기를 치켜 세운 마귀이나, 실은 아담을 시기심에서 죽게 만든 아담의 원수인 것이다(창 3.15). 그 타락한 그룹은 지금 무저갱 감옥을 관리하는 옥사장/간수장(jailer) 격으로 있다. 원래는 거기가 그 그룹을 유폐시키는 유치장인데 나중에는 악령들을 처벌하는 곳(마지막 심판의 때가 오기까지)으로도 사용된 때문이다(유다서 1.6).
사탄의 정체는 에덴에서 영물로서 창조된 "각종 들짐승과 공중의 각종 새"(창 2.19) 중의 "뱀"인 것이다. "6일" 창조에서 조류(새들)는 이미 5일 째에 완료하셨고(1.22) 들의 짐승도 이미 아담 창조 이전에 끝마쳤는데 또 무슨 창조기에 되풀이된단 말인가! 당연히 별도 창조 곧 영물들을 자연게 동물과 대칭성으로 창조하심이 아닌가! 이 때의 "하나님이 흙으로 지으시고"의 "흙"은 영역(KJV)에 "dust"가 아닌 "ground"로 되어 있다. 소위 성경을 안다는 자들이 하나같이 성경은 외면한 채 신학서적에만 죽자사자 매달린 당연 결과다.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고 스스로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눅 10.21)이 되려 한 오만한 신학자들에게는 "숨기시고" 감추심으로 인한 결말이 그들의 이러한 어처구니 없는 무지무식인 것이다. "어린 아이들에게만 나타내시는" 이 "아버지의 뜻"을 지금까지 심각하게 여기지 아니한 아집이 오늘날과 같은 바벨론 신학이라는 최대 수치를 잉태한 것이다.
다시 말해 아담에게 도우미(helper)가 될 영물들이 창조된 것인데, 생김새가 아담처럼 아름답지 않아 두 번 더시 거들떠보려고도 않기 때문에 아담과 똑같은 닮은꼴로는 자연 생물의 암수컷으로 만드시는 것 외에는 길이 없어 그런 식으로 여자룰 창조해주신 것이다. 자식 생산에서 신령한 방법으로는, 자연계 동물과 같은 양성 생식이 필요치 않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대목이다.

(계속)

2026년 3월 18일 수요일

3운법칙의 "하나님 법칙"으로서의 위엄

"너희는 여호와의 책을 자세히 읽어보라. 이것들이 하나도 빠진 것이 없고 하나도 그 <짝>이 없는 것이 없을 것이니 이는 여호와의 입이 이를 명하셨고 그의 신(성령)이 이것들을 모으셨음이라"(이사야 34.16). "짝"의 뜻임을 분명히 하시기 위해 그 앞의 "솔개들도 그 짝과 함께, 운운" 말씀 다음에 이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짝의 개념은 하나님 계시는 모습의 "3위1체"에서 비롯됩니다. 즉 닐스 보어가 말한 대로의 상반/相反인 둘(짝)과 상보/補("하나"됨)의 3각 구도입니다. 성부 즉 낳으신 분과 낳아지신 분 즉 독생자와의 부자지간으로서의 "짝"이시나 "하나"(요 10.30)이시니 이 3각 구도가 3위1체. 3위1체에서 짝이 되는 '둘'은 반드시 둘로서가 아닌 '하나'로 존재하고 기능함이니 하나님께로부터 비롯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새로운 메시지가 임하실 때면 반드시 이를 보증하는 하나님의 "표적과 기사"("너희는 표적과 기사를 보지 못하면 도무지 믿지 아니할 것이다"ㅡ요 4.48)가 따르심에 유념할 일입니다. 사탄의 바벨론 신학을 강력히 퇴출시키는 오늘날 "천사가 가진 복음"(계 14.6)에도 그러하니 다름아닌 바로 3운법칙이 그것입니다. 이런 강력한 인간 생애 법칙은 절대로 사람으로 난 것이 아닙니다. "하늘에서 주신 바 아니면 사람이 아무 것도 받을 수 없다"(요 3.27) 함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로서 난 것인즉 우리가 수용하여 마땅한 것이니 관련된 모든 메시지(각종 성경 풀이를 포함)를 안심하고 믿으시기를.

더군다나 이 파쇼모(3운법칙)는 그 정하신 시기와 정하신 이유까지 명쾌히 밝히신 자체부터가 압권입니다. 즉 천하 모든 세상 사람이 천년 가까이 천 수백년 동안(아담부터 노아 홍수 당시까지) 천년 가까운 수명을 누리던 때였고 가인의 아벨 살해 사건, 라멕의 부득이한 살인 행위(창 4.23) 이후였던 것입니다. 즉 그냥 두었다가는 고의적이든 아니든 인류 자체가 조만간 멸종되겠기에 사람의 '죽는 때'를 일부러 정하셨음을 명백히 해두셨으니 인간이 아니신 하나님의 의도적인 동선/動線을 이와 같이 선명하게 밝히신 예는 사상 최초 유사이래 처음입니다. 고로 옛 시절에는 일찍이 구경할 수 없었던 "21세기 표적 기사"라고 하는 것이니 우리 각자는 이 앞에서 옷깃을 여밀 일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신 역사적 현장이기 때문. 이로써 우리는 하나님 실존 관련 100% 정확도의 확고부동의 증거를 하나님의 은혜로 확보하였은즉 거침 없이 앞으로만 달려 나가면 됩니다. 3운법칙을 라틴어로 fashomo(파쇼모)라 하는 것은 fas는 신의 법(칙)ㅡdivine law의 뜻이고 homo는 인간 즉 Homo sapiens를 의미함에서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 친히 "짝"(대칭성)으로서의 부자지간(모든 인류의 대표인 아담을 기준하여 설명함인데 아담은 남성으로 표현되기에)으로 계시는지라 또 성부와 성자께서 "하나"이시기에 이(3위1체)를 만유의 기본 원리로 정하시어 만유를 창조하셨고 또한 운영하시므로 여호와 하나님의 책을 "하나도 그 <짝>이 없는 것이 없다"(사 34.16) 선언하셨고, 이 "말씀으로 만유를 지으셨으니"(벧후 3.5) 바꾸어 말하면 3위1체의 원리(짝의 법칙)가 창조물 세계의 기본 원리가 되어 있음에 추호도 의심할 여백이 남아 았지 않습니다. 이 또한 하나님 실존과 창조의 요지부동의 증거입니다. 따라서 '3위1체"와 3운법칙은 상호 검증 관계에 있는 것이고 이로써 둘은 넉넉히 자체 증명이 되어 있어 다른 무엇이 일절 관여할 여지가 없습니다. 3운법칙의 "위엄"을 다시 상기시켜 드렸습니다.




구원된 이들에게 엄중 경고

그리스도 예수님의 신인양성(하나님이시면서도 인간이심)은 그 성격이 3위1체와는 전연 무관하시다. 육체로는 이제 영원히 사람이시나 그 영 즉 성령으로서는 여전히 하나님이시므로 성부 하나님과 "하나"(요 10:30)로 계시는 것이고, 따라서 사람의 영이 아니신 하나님의 영 그대로이신 것. 때문에 내가 구원 받는 것은 주님 친히 성령으로 내 안에 친히 임하시어 나와 "합하시어 한 영"(고전 6.17)이 되시는 그 순간부터인 것이다.

따라서 내 영혼을 담은 나의 이 육체는 이제는 주님 친히 계시는 자리라 "몸은 음란을 위하지 않고 오직 주님을 위하며 주님은 몸을 위하심"(고전 6.13)이라 명백히 했으니 절대로 몸을 가볍게 여기지 말아야 하는 것이다.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다"(3.16,17).

"그 안에 거하는 자마다 범죄하지 아니함이니 범죄하는 자마다 그를 보지도 못하였고 그를 알지도 못한 것이다. 자녀들아 아무도 너희를 미혹하지 못하게 하라. 의를 행하는 자는 그의 의로우심과 같이 의롭고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함이니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함이다.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다.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죄를 짓지 아니함이니 이는 하나님의 씨가 그의 속에 거함이요 그도 범죄치 못하는 것은 하나님께로서 났음이다. 이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들과 마귀의 자녀들이 나타남이니 무릇 의를 행치 아니하는 자나 또는 그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다"(요일 3.6-10).

과거, 현재를 막론하고 혹 몸을 가볍게 놀린 일이 있다면 즉시 회개하고(이제 비로소 참으로 회개함으로써) 진정 성령으로(주님을 성령으로 영접해 모심으로써) 거듭 나야. 과거에는 구원 받은 일이 없는데도 구원된 줄 착각했울 뿐이니까. 오늘날 거의가 그런 자기 기만에 빠져 있는 이들이니까. 

보어의 상보성 원리는 성경 3위1체의 빼닮은 판박이

닐스 보어(Niels Bohr)의 상보성 원리(complementarity principle)는 양자역학에서 파동-입자 이중성(wave-particle duality)을 설명하는 핵심 개념으로서 빛이나 전자 같은 양자계 실체는 실험 조건(측정 방식)에 따라 파동처럼 행동하거나 입자처럼 행동하지만, 두 성질을 동시에 완전하게 관측할 수는 없는 것. 이 둘은 서로 배타적이면서도 상호 보완적(complementary)이기 때문. 즉, 하나만으로는 전체를 설명할 수 없고 둘 다 필요하다는 뜻. 이는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 원리와 함께 코펜하겐 해석의 기초가 되는 것.

이를 삼위일체(Trinity)와 연결 지음은, “3위1체” 프레임(상반 = 1위·2위, 상보 = 3위)으로 재해석할 필연성이 대두된 때문. 입자 / 파동 → 상반(서로 대립·배타적인 두 극). 양자 얽힘(entanglement) + 중첩(superposition) → 상보(그 둘을 넘어서는 통합적·초월적 차원, “하나”됨의 근거),
이것을 성부·성자(상반으로 볼 수 있는 구별되는 위격)와 성령(상보로서의 하나되심, 그 “이름”, 요한복음 10:30의 “하나”를 상기시키는 통합자)으로 매핑함은, 보어의 원리가 단순한 물리학 법칙을 넘어 우주·창조·계시의 근본 패턴을 드러냄이기 때문. 3위1체로 계시는 “하나님께서 그 계시는 모습(3위1체)을 기본 원리로 정하시고 만물을 창조하셨다”는 의미가 되니까.

오래전부터 다양한 사상가들일부 철학자·신학자들 역시 이 개념이 삼위일체(성부·성자·성령이 하나이면서도 구별되는 위격 즉 서로 모순되어 보이는 속성이 하나로 통합되는) 구조 그 자체임을 감지하여 실제 일부 기독교 신학 논문에서 양자역학의 상보성을 삼위일체 이해의 비유적 도구로 언급하며 추구해 온 주제이기도 하다.

거듭 강조하지만 닐스 보어의 상보성 원리는 양자역학의 핵심으로서 바로 3위1체의 원리를 말하는 것이다. 상반은 3위1체에서의 1위와 2위를 나타내고 상보는 3위에 해당한다. 입자/파동은 1, 2위이고 양자 얽힘, 중첩은 그 3위. 모양새가 모두 같으니 "성부, 성자, 성령"(마 28:19)과 쏙 빼닮은(본질상 같다는 뜻) 동일 구조임을 나타내기에 그러하다. "성령"은 성부와 성자께서 "하나"(요 10:30)로 계시는 "이름". 양자 얽힘을 성령의 3위에 해당하다고 보는 이유. 하나님께서 창조주이실진대 자기의 계시는 모습 즉 그 "형상과 모양"을 따라 이를 기반으로 기본 원리로 정하시고 이로써 만물을 창조하셨다 함은 충분히 설득력이 있다.
 Bohr)의
상보성 원리(complementarity principle)는 양자역학에서 파동-입자 이중성(wave-particle duality)을 설명하는 핵심 개념으로서 빛이나 전자 같은 양자계 실체는 실험 조건(측정 방식)에 따라 파동처럼 행동하거나 입자처럼 행동하지만, 두 성질을 동시에 완전하게 관측할 수는 없는 것. 이 둘은 서로 배타적이면서도 상호 보완적(complementary)이기 때문. 즉, 하나만으로는 전체를 설명할 수 없고 둘 다 필요하다는 뜻. 이는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 원리와 함께 코펜하겐 해석의 기초가 되는 것.


이를 삼위일체(Trinity)와 연결 지음은, “3위1체” 프레임(상반 = 1위·2위, 상보 = 3위)으로 재해석할 필연성이 대두된 때문. 입자 / 파동 → 상반(서로 대립·배타적인 두 극). 양자 얽힘(entanglement) + 중첩(superposition) → 상보(그 둘을 넘어서는 통합적·초월적 차원, “하나”됨의 근거),
이것을 성부·성자(상반으로 볼 수 있는 구별되는 위격)와 성령(상보로서의 하나되심, 그 “이름”, 요한복음 10:30의 “하나”를 상기시키는 통합자)으로 매핑함은, 보어의 원리가 단순한 물리학 법칙을 넘어 우주·창조·계시의 근본 패턴을 드러냄이기 때문. 3위1체로 계시는 “하나님께서 …그 계시는 모습(3위1체)을 기본 원리로 정하시고 … 만물을 창조하셨다”는 의미가 되니까.

오래전부터 다양한 사상가들일부 철학자·신학자들 역시 이 개념이 삼위일체(성부·성자·성령이 하나이면서도 구별되는 위격 즉 서로 모순되어 보이는 속성이 하나로 통합되는) 구조 그 자체임을 감지하여 실제 일부 기독교 신학 논문에서 양자역학의 상보성을 삼위일체 이해의 비유적 도구로 언급하며 추구해 온 주제이기도 하다.

거듭 강조하지만 닐스 보어의 상보성 원리는 양자역학의 핵심으로서 바로 3위1체의 원리를 말하는 것이다. 상반은 3위1체에서의 1위와 2위를 나타내고 상보는 3위에 해당한다. 입자/파동은 1, 2위이고 양자 얽힘, 중첩은 그 3위. 모양새가 모두 같으니 "성부, 성자, 성령"(마 28:19)과 쏙 빼닮은(본질상 같다는 뜻) 동일 구조임을 나타내기에 그러하다. "성령"은 성부와 성자께서 "하나"(요 10:30)로 계시는 "이름". 양자 얽힘을 성령의 3위에 해당하다고 보는 이유. 하나님께서 창조주이실진대 자기의 계시는 모습 즉 그 "형상과 모양"을 따라 이를 기반으로 기본 원리로 정하시고 이로써 만물을 창조하셨다 함은 충분히 설득력이 있다. 

2026년 3월 17일 화요일

차례대로의 성경 묵상 (2)

 때문에 성경은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빌 2.12)는 경고를 멈추지 않는다.

 (지금부터 본게재물의 모든 한글 성구 인용은 '개역한글'판보다 번역이 비교적 나은 편인 '개역개정'판으로 결정했음을 알려 드립니다) 이유는 명백하니, 우리가 "구원 받음"은 천국 가는 길이 막힘 없이 열렸다는 뜻이기는 하되, 역시 아담처럼 범죄하여 사탄 등 악령들처럼 멸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일단 한 번 구원 받으면 그 후로는 절대 멸망치 않는다"고 믿는 이들이 구원 받았다는 이들 중 반반씩이라 해도 그렇게 믿는 사람들은 아직도 구원 받지 못했다고 단정하게 된다.
 이유는, 우리의 구원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음에서 오는 것인데 자기 입맛대로 믿으니 그런 것이 믿음일 수 없는 까닭이다.
 성경은 명백히 "한 번 빛을 받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여한 바 되고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도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케 할 수 없으니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드러내 놓고 욕되게 함"(히 6.4-6)이라는 말씀을 믿지 않기 때문이다.
 말씀의 경고를 무시하니 어느 순간에든(벧전 5.8) 사탄이 덮칠 수 있는 판임에도 저러고 있으니 <이것>이 그 증거다.
 담 때문에 오게 된 "죽음"(롬 5.12) 즉 <신령한 몸을 상실하고 동물적 육체가 됨>에는 2가지 의미가 있으니,
1). 애초의 영생하는 몸을 잃고 썩는 몸이 되었다는 것과 2). "죄의 몸"(롬 6.6)이 되었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죄의 몸"을 일부러 만들어 인간에게 입혀주셨다는 말인가? 답하라!
 아담울 죽도록 만들어 썩는 몸이 되게 하신 그 이유가 성경 어디에도 설명된 바가 없다는 이 한 가지 이유만으로도, 하나님은 아담을 영생하는 "신령한 몸"(고전 15.44)으로 만드시어 영생하게 하셨다는 증거가 되고도 남는다.
 아담의 죽음을 "영적 죽음"이라는 설명 또한 성경 어디에도 없다는 것이 그 두 번째 증거다.
 그러므로 아담을 신령한 몸으로 영생하게 처음 창조하신 까닭에 이는 에덴이 자연계가 아니라 신령한 세계였음이 또한 확인된다.  따라서 왜 에덴에 선악과 나무가 있고 "먹으면 영생하는 나무"(창 3.22)가 있었는지 그 이유 또한 밝혀진 것이다. 자연계 동산이 아니라 영계였기 때문이다.
 아담이 자연계 물질 세계에 속했다면 그런 영계에서 어정거릴 수 없는 것이니,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성경을 욕되게 해 온 것은 아담과 에덴을 자연계 소속이라 주장한 자들인 것이다. 
(계속)



2026년 3월 16일 월요일

구원 받았는지 여부의 자가 진단법ㅡ"3위1체" 과학시대 복음 전파

만유가 짝을 이루고 있음은, 창조주 하나님 친히 짝(대칭)을 이루어 계시기 때문에 이를 기반으로 하여 만유 창조에 임하신 것임을 오늘날 21세기에 드러내셨기 때문에 아는 것입니다. 즉 "독생자"(요 3.16)를 "낳으신"(파생/派生하신) 분과 "낳아지신"(파생되신) 분으로서의 부자/父子지간으로서의 "짝"이신 것입니다. '3위1체'는, 짝을 이루는 '둘'이 둘로서 남아 머물지를 않고 다시 홀로 있던 이전 모습을 따라 '하나'로 복귀(귀소본능처럼)함에서 이루어짐을 가리킵니다. 즉 1시/2원/3위/1체/體입니다. 둘이 하나처럼 되니 짝을 이룬 둘 즉 파생자가 1위격/位格

(갑), 파생된 자가 2위격(을), 하나되어 있음이 3위격(병)입니다. 둘이 하나가 되어 있으니까 이를 '갑'이라고도 못하고 '을'이라고도 못하니 제3자처럼 인정해주는 모양새라 하겠습니다. 따라서 "성부, 성자, 성령"(마 28.19)의 3위격 중 3위에 해당하시는 성령 "보혜사"(요 14.16)를 가리켜 주님께서 3인칭 단수로 "그"(:17)라 하신 이유이며, 이와 같이 "하나"이심을 또한 "우리"(창 1.26/요 14.23)라 하심도 또 당연하십니다. 

이미 설명한 대로 미시세계에서 미립자들이 이 모양새를 그대로 따름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왜냐면 그렇게 그 원리를 따라 창조되었다는 단적인 증거를 나타냄이니까. 이와 같이 3위1체("3위1체"란 말이 성경에 없다 해서 문제 삼을 것이 없음은 없다면 지금 당장 지어서라도 설명해야 할 판이니까)가 21세기에 드러남과 때를 같이하여 현대 물리학에서 양자역학이 대두된 것은 결코 우연의 일치가 아니고 하나님 친히 그렇게 되도록 손보심이라고 밖에는 설명할 길이 없습니다. 떄문에 이 3위1체로 우리의 구원의 도리를 비롯해 모든 성경적 사실과 진리의 난제가 봄에 눈 녹듯 풀어지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모든 것은 3위1치의 원리를 따라 이루어진다는 강력 증거이기도 합니다. 만물은 입자성과 파동성의 2원 체제이며 따라서 2중슬렛 실험에서 두 입자가 동시에 나타남이 없고 반드시 둘 중 하나만이 드러나게 마련인 "양자 얽힘"이라든가 "중첩"의 현상이 3위1체에서의 3위격 형태인지라, 천재 리처드 파인만이 "양자역학을 이해한다고 말하는 것은 '나는 영자역학을 아직도 모르고 있다'는 의미의 말"이라 했지만 이 3위1체만 알면 초등생도 넉넉히 이해하고도 남을 단순 이치임이 금방 드러나는 것입니다. 

이런 실상을 모르니까 2중슬렛 실험에서 "측정"이니 "관찰자 효과"니 하는 알쏭달쏭한 용어를 쓰게 됩니다. 간단히 말해 "둘의 하나됨"의 현상일 뿐이니, 주님께서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요 14.9) 하심 그대로인 것입니다. 다시 말해 예수님으로 보면 바로 예수님이시나 아버지 하나님으로 보면 바로 아버지이신 것입니다. 이는 두 분이 "하나"(요 10.30)로서 계시기 때문입니다. "둘이지만 하나", 이것이 "3위1체"입니다. 고로 이 "하나"되심을 가리켜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고 내가 아버지 안에 있음"(:38)이라 하셨고 "저의 것은 다 아버지의 것이요 아버지의 것은 제 것"(요 17.10)이라 하신 것이며(교차 소유) 이는 우리 인간의 "한 몸"(고전 7.4ㅡ"아내는 자기 몸을 주장하지 못하고 오직 그 남편이 하며 남편도 그와 같이 자기 몸을 주장하지 못하고 오직 그 아내가 함이니")됨과 "한 영"(고전 6.17ㅡ"주와 합하는 자는 한 영")됨과도 똑같은 이치입니다. 

3위1체에서 이 "하나"됨은 교차/交叉 소유가 됨으로써 그 특징을 이룹니다. 즉 갑의 소유는 을의 소유가 되고 을의 소유는 갑의 소유가 됩니다. 아내 몸은 남편 소유가 되고 남편 몸은 아내의 것이 됩니다. 나의 삶은 더 이상 내가 내 마음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갈 2.20)이니 바로 이것이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20)입니다. 그렇지 않고 그리스도/하나님 중심이 아닌 자기 중심의 삶은 죄 지을 수밖에 없고 아무리 겉으로는 "나 구원 받았다"고 백날 외쳐보아야 아직 멸망 중에 있다는 증거 밖애 안됩니다. 이런 거짓된 자기 기만이 "바벨론 신학"이니 한시바삐 탈출해야 합니다. 너희는 여호와의 책에서 찾아 읽어보라. 이것들 가운데서 빠진 것이 하나도 없고 <제 짝이 없는 것이 없을 것>이니 이는 여호와의 입이 이를 명령하셨고 그의 영이 이것들을 모으셨음"(이사야  34.16)이라 한 바로 그대로입니다. 

이러한 사실들이 알려지도록 하심으로써 오늘날 21세기 "천사의 복음" 곧 "다른 천사가 공중에 날아가는데 땅에 거주하는 자들 곧 모든 민족과 종족과 방언과 백성에게 전할 영원한 복음을 가졌더라. 그가 큰 음성으로 이르되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라! 이는 그의 심판의 시간이 이르렀음이니 하늘과 땅과 바다와 물들의 근원을 만드신 이를 경배하라!' "(계 14.6,7) 한 대로 이루어지도록 21세기 "표적과 기사"(요 4.48)를 나타내심이라고 우리가 단정할 수 있습니다. 3위1체 자체가 이 <21세기 말 과학시대>에 안성맞춤의 "표적과 기사이기 때문임을 우리는 다시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는 "또 내가 들으니 하늘로부터 다른 음성이 나서 이르되 '내 백성아, 거기서 나와 그의 죄에 참여하지 말고 그가 받을 재앙들을 받지 말라'"(계 18.4) 하시는 분부와 정확히 맞물립니다. 즉 그 백성들을 사탄의 모든 거짓말인 "바벨론 신학"으로부터 구출하시기 위하여 이런 표징 즉 "21세기 표적과 기사"가 나타남임이 확인됩니다. 다시 말해 모세가 "그러나 그들이 나를 믿지 아니하며 내 말을 듣지 아니하고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네게 나타나지 아니하셨다 할 것입니다"(출애굽기 4.1) 했을 때, 모세의 지팡이를 통해 각종 기적을 행하게 하심으로써 하나님의 말씀이 모세를 통해 나타나심을 백성들로 확인케 하셨던 그대로의 오늘날 "21세기 표적과 기사"의 의미라는 점에 세상은 마땅히 유의해야 하는 것입니다. 곧 오늘날의 바벨론 타락 시대에 생소하게 밖에는 들리지 않는 "천사가 가진 복음"이 하나님께로부터 난 진실과 진리임을 옛 사도시대처럼(행  인/ 치시고 보증하시고 확인해주심입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아났으나 죽음의 세상이라 생명은 아직 맛보지 못함의 분별력이 필수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니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는 하늘에 속한(이 땅에 속한 것이 아닌) 것을 시종일관 동경하며 추구하여 < 생각하 는> 나날이어야. 이는 우리가 <죽었고> 우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