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3월 23일 월요일

"육으로 남"(요 3.6)과 "성령으로 남" (3)



구원 받음은 주님과 "합하여 한 영"(고전 6.17)이 됨을 말합니다. "한 영" 곧 "하나"(요 10.30)가 되는 것은 부자지간이신 하나님께서 "하나"이심과 똑같은 것입니다. 즉 성부의 것은 성자의 것이요 성자의 것은 성부의 것이 되십니다(17.10). 그리고 이것은 성부 안에 성자, 성자 안에 성부께서 계심으로도(10.38) 표현됩니다. 주님과 나와의 관계도 동일합니다. 모름지기 하나님의 3위1체에서 짝을 이룬 둘의 하나되는 특징은 이같이 같은 이치를 따르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주님의 죽으심과 부활이 내 죽움과 부뢀이 됨으로써 내 구원이 된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지금까지 그렇게 믿어 온 대로, 그런 의미로 "간주/看做"해서가 아닙니다. 실제 그와 같이 나 위하여 내 이름으로 죽으시고 부활하신 주님 친히 성령으로 내 안에 오심으로써 완벽하게 이루어진 것입니다. "주님과 <합하는> 자는 <한 영>이라"(고전 6.17) 한 그대로입니다. 이제까지 "바벨론 신학"에만 사로잡혀 성령과 3위1체에 대해 전혀 무지무식한 탓에 "대신 죽으심"이라는 천하의 웃음거리만 만들어 온 기독교 신학자들입니다.

무릇 범죄한 자는 모름지기 당자가 처벌을 받는 것이지 <대신> 무엇이 누구가 처벌 받는다는 것입니까. 이런 천하에 둘도 없는 해괴망측한 거짓말을 지어내게 만든 마귀의 맹랑한 장난질에 놀아나 장단만 맞추어 온 기독교 신학자들, 하나님의 거룩하신 구원의 진리 말씀을 가로막고 한낱 세상의 웃음거리로 만든 거의 2천년간이나 쌓아 온 허물을 다 어찌 할꼬! 하나님의 진리를 제대로 이해하는 것은 오직 "계시"(눅 10.22) 밖에 없다 하신 말씀을 비웃고 죽자사자 학문시/學問하더니 거두어들인 결과가 그뿐이던가! "예수님께서 성령으로 기뻐하시며 말씀하시기를,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합니다. 옳습니다. 이렇게 된 것이 아버지의 뜻입니다"(:21). 하나님께서 일부러 숨기시는데 이런 기막힐 저주 가운데서 헤어날 수 있나요!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모이기를 폐하는(말씀을 제대로 전달 않는 장소에야 백날 가도 소용 없으니 이 점을 가려 읽어야)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우리가 진리를 아는 지식을 받은 후 짐짓 죄를 범한즉 다시 속죄하는 제물이 없으니 모세의 법을 폐한 자도 두세 증인으로 말미암아 불쌍히 여김을 받지 못하고 죽었거든 하물며 하나님의 아들을 짓밟고 자기를 거룩하게 한 언약의 피를 부정한 것으로 여기고 은혜의 성령을 욕되게 하는 자가 당연히 받을 형벌이야 얼마나 더 무겁겠느냐. 너희는 생각하라.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 하시고 또 다시 주께서 <그의 백성을 심판하리라> 말씀하신 것을 우리가 아니 살아 계신 하나님의 손에 빠져 들어가는 것이 무서울진저"(히 10.24-31).

우리가 저질러 놓은 죄이니까 마땅히 우리 각자가 그 대가를 치러야 하는 것이지 누가 대신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닌 것입니다. 이것이 거룩하신 하나님의 공의/公義이십니다. 그러나 한 번 죽으면 그만이고 속절없이 끝나버리는 인생. 때문에 나를 살리시려고 나와 <함께> 죽으시는 방법을 택하신 것이 나 위한 십자가 죽으심의 의미입니다. 함께 "하나"(요 10.30)가 되어주시어 함께 부활하심이 됨으로써 나를 살리시기 위함이었던 것입니다. "하나"가 됨 즉 "한 영"이 됨에서는 "한 몸"(고전 7.4)이 됨과 마찬가지로 이 글의 모두에서 미리 밝힌 것처럼 "교차/交叉 소유"가 반드시 이루어지게 마련입니다. 가장 중요한 부분입니다.

3위1체에서 핵심이 되는 것이 바로 이 제3위로서의 특성인 것입니다. 이것은 이 "하나"됨에서 마치 둘을 잡아 묶는 끈과 같은 것입니다. 즉 갑은 을의 것이 되고 을은 갑의 소유가 됩니다. 아내의 몸은 남편의 것이 되고 남편의 몸은 아내의 것이 됩니다. 마찬가지로 "한 영"에서는 각자의 삶 자체가 그렇게 됩니다. 우리가 주님과 "한 영"이 됨으로써 구원 받음이 된 이상 그리하여 주님의 죽으심과 부활이 내 것이 됨으로써 이루어진 하나님 은혜이시니, 나의 이후 삶은 애오라지 주님을 위한 일편단심에서만 영위되는 것임을 우리 모두 항상 가슴 깊이 아로새겨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이를 회개하지 않는 한 나는 영생 구원에서 가차없이 끊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날까지 많은 사람이 바벨론신학의 거짓됨에 속아 이 심각한 경고를 받지 못한 채 서성거리다가 자기도 의식 못한 사이 멸망길에 들어서고 있습니다. 성경 애독하기를 게을리한 결과라 보아도 틀린 말이 아닙니다. 몹시 뜨거운 것에 피부를 노출시켜 놓고도 데인 것을 후회해보아야 소용 없습니다. 때는 늦은 것입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으니(죽어버렸으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시어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갈 2.20).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다. 우리가 살아도 주님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님 위하여 죽음이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님의 소유이다.
<이를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셨으니 곧 죽은 자와 산 자의 주인, 임자, 소유주)가 되려 하심이다"(롬 14.7-9). 이 교차/交叉 삶이 바로 다름아닌 영생 구원이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자아중심이 아닌 상대방중심의 삶이니 이 상대 중심에서는 죄가 성립이 될 수가 없습니다. 이것이 "거룩함"입니다.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따르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님을 뵙지 못하리라"(히 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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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으로 남"(요 3.6)과 "성령으로 남"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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