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8월 25일 일요일

죽음과 썩음의 세상 및 지금부터 시작되는 전지구적 파멸의 재앙에서 영원한 생명으로 살아 남는 유일무이의 방법


지금은 확실히 때가 메시야께서 다시 오시는 종말이므로 "한류"도 한 때뿐으로 끝나고 단계적으로 전지구적인 각종 재앙으로 창조주 하나님의 심판이 시행된 뒤에는 "사람이 정금보다 희소케 되고 오빌의 순금보다 희귀케 하심"(사 13:12)으로써 완전히 별개의 세상이 새로 전개될 것이기에 오직 유일하게 가치 있는 유의미한 일은 영원 멸망에 처한 현재의 인류가 다 하나님 구원의 말씀을 듣고 회개하여 다시 나고("거듭 나고") 새 창조를 입게 하는 복음(구원의 희소식) 전파하는 것 오로지 이뿐이니, 이 일을 위해서 간구하고 함께 모여 합심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교회 교인들이 새벽 기도로 모여서는 이같이 하나님 나라 복음 전파를 위해 교역자들과 선교자 및 일반 전도 업무 종사자들 그리고 믿음의 형제 자매들 그리고 나라의 권력자들과 세상의 구원 받을 자들을 위한 기도는 없이,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성령 안에서의 기도"(엡 6:18)는 없이, 이기적인 자아중심적 기도만 일삼으니 축복은커녕 죄만 짓는 것입니다.

구원 받은 자는 자기를 위할 그 자기라는 것이 없으니 주님과 함께 하나된 이치를 따라 두님과 함께 죽어 더 이상 자기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 <내것으로서의 자기>가 아닌 <하나님께 바쳐진 하나님의 것(하나님의 소유)으로서의 자기>만이 존재할 뿐입니다. 주님께서 나를 위해 당신을 희생 제물로 바치셔서 영원히 나의 소유가 되어 계시는 것이 나의 구원 받음이기 때문. 남녀 한 몸되어 육체로 하나됨(고전 7:4)과 똑같은 이치 곧 짝의 법칙에서의 "하나됨" 즉 사랑과 삶의 법칙이요 <상대성의 동시성>인 것입니다. "아내가 자기 몸을 주장(주관/主管)하지(자기 마음대로 하지) 못하고 오직 그 남편이 하며 남편도 이와 같이 자기 몸을 주장하지 못하고 오직 그 아내가 함이니".

"저의 것은 다 아버지의 것이요 아버지의 것은 제것"(요17:10)이라 하심이 "나와 아버지는 하나"(10:30)라 하심과 같은 뜻으로서, 주님의 성령이 내 안에 오시는 성령 세례로 나는 주님과 "합하여 한 영"(고전 6:17)이 되는 것이라 주님의 십자가 죽으심과 부활이 나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이 되니까 그래서 값없이 은혜로 믿음으로써 <의롭다 하심을 얻은 것(칭의/稱義, justification)>입니다. 고로 나는 모든 것을 주님의 이름으로 하는(골 3:17/15:16) 것이요 주님은 내 이름으로 하시는 것입니다. 즉 주님은 나를 위하시고 나는 주님을 위하는 '머리'와 '몸'의 '한 몸됨'의 관계. 이같이 모든 것이 다 '나와 주님과의 하나됨'에 있는 까닭에 주님 친히 내게 "거룩함(sanctification)" 곧 '성화/聖化'가 되시고도 남으시는 것입니다.

달리 표현하여, 주님 안에 내가 있고 내 안에 주님 계심인 것(요 14:13,14/10:38/14: 20). 이것이 정확한 성경적 구원의 3위1체 법칙(짝의 법칙)에 의한 골격(뼈대)이니 반드시 명심해야. 성자 하나님께서는 아버지의 이름으로, 성부 하나님께서는 아들의 이름으로 모든 일을 하시는 것이니(요 10:25/14:26/16:23), 바로 이 영원한 생명의 법칙과 이치를 따라 우리를 구원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는 일체가 다 주님의 이름으로 하는 것으로 주님을 위함이니까 우리가 핍박 받는 모든 고난 고통도 의당히 주님을 위한 것이 되어 주님의 이름으로 되는 일이기에(빌 1:29) "그리스도를 위하여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그를 믿을 뿐 아니라 또한 그를 위하여 고난도 받게 하심"이라 했으니 이야말로 너무나 엄청난 은혜이기에 주님은 "기뻐하고 뛰놀라"(눅 6:23) 하셨을 정도.

다시는 내가 나 자신을 위하지 않는다는 이 점돠 관련해 주님 또한 명백히 말씀하셨으니,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 거기는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고 도둑질한다...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며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며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한다...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신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義(옳고 마땅한 것)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실 것이다"(마 6:19-34).

"먼저 하나님을 위한다"는 것은 먼저 하고 나중 하는 순서를 말씀하심이 아니라 항상 오로지 최우선으로 의식한다는 뜻이니, 그 다음에 하신 말씀이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신다>"고 하셨기 때문. 이는 "참새도 먹이시고 풀꽃도 입히신다"는 말씀과 같은 의미로서 다시 말해 우리는 하나님 위하고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위하심 즉 한 몸의 이치에서 <머리는 몸을 위하고 몸은 머리 위함>인 것입니다. 혹자는 묻기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왜 그럼 우리 모두를 부자로 만드시지 않느냐?" 하는데 그러면 반문하노니, "지금이 삶의 때인가, 아니면 죽음이 때인가?". 삶의 때라면 북한교회가 지금 <없는 자, 약한 자, 천한 자>로서 핍박 중에 결코 있지 않을 것입니다. 둘 중 어느 쪽인지 그 명명백백한 증거입니다. 주님 다시 오시는 그 순간부터가 비로소 생명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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