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지 않았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지 않았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지 않았고 벗었을 때에 옷 입히지 않았고 병들었을 때와 옥에 갇혔을 때에 돌아보지 않았다...이에 임금이 대답하시기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니 이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않은 것이 곧 내게 하지 않은 것이다 저들은 영벌에, 의인들은 영생에 들어갈 것이다''(마 25:41-46).
현재 우리의 구원은 하나님의 성령을 받아 모심으로써만 됩니다. 범죄로 죽어버린 아담을 대신해 누군가가 아담이 되어 주어야 하는 판에 오직 성자/聖子 하나님 밖에는 없으므로 그래서 사람이 되신 것이나 하나님이심은 불변이시니 본시부터 성부/聖父 하나님과 "하나"(요 10:30)로 존재하시기 때문. 이는 짝의 법칙 때문이니 이 짝의 법칙이 아니면 하나님이 제대로 충분히 설명되실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계시는 모습에서 짝의 법칙이 비롯되었기 때문입니다. 왜 그러면 이제서야 이 사실이 드러나졌느냐 한다면 다니엘서의 예언 따라 이 "마지막 때"에야 알려지도록 되어 있었기 때문. "믿음"은 원래 "돌이켜 어린 아이 같이 됨"의 영역에 속하므로 즉 지식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어서 "믿음으로 구원 얻는" 일에 지장은 없었던 까닭입니다. 공연히 우쭐해지는 교만한 자들만이 아는 체하다가 멸망에 이른 것뿐입니다.
단 둘이 짝을 이루어 많은 닮은꼴 즉 자기 형상을 만드는 "생식하고 번성하는" 현상도 이 짝의 원리를 따른 작용의 연장선에 있는 것이니 곧 '파생/派生한 자'와 '파생된 자"로서의 짝. 즉 육(체)으로서의 짝과 대칭이 되는 영(성령, 하나님의 영)으로서의 짝으로 우리를 구원하심입니다. 다시 말해 사람마다 성령을 받음으로써 다시 출생하고 새로 창조되는 것입니다. 아담 때는 육체로써 그리했으니 즉 저마다 아담의 육체를 물려받아 사람의 아들이 되었다면 아담이 불행히 그 죄값으로 죽어 없어진 다음에는 그 대칭(짝)으로서의 "마지막 아담"의 영(성령)을 사람마다 받아 모심으로써 다시 나 원래 상태로 회복 곧 구원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제각기 둘(사람되신 성자 하나님과 나)이 하나되는 창조이다보니 우리가 "첫 사람 아담"의 몸을 받아 사람됨과 같이 그래서 아담의 육체가 나의 육체임과 같이 "마지막 아담"의 성령을 받아 모셔 하나님의 아들들이 됨은 내 안에 오신 성령께서 내 영혼처럼 되시어 내 영혼과 함께 계심입니다. 육체는 물질이라 보이지만 영 즉 성령께서는 볼 수 없다는 그런 차이만이 있습니다. 그래서 "한 영"(고전 6:17)입니다. 뿐만 아니라 성령으로서는 성자 하나님과 성부 하나님과의 "하나"(요 10:30)되심인즉 "아버지"께서도 "아들"과 함께 계심이니 "아들을 부인하는 자에게는 또한 아버지도 계시지 않으나 아들을 시인하는 자에게는 아버지도 계시는 것"(요일 2:23). 이 사실을 가리켜 요한 사도는 "하나님의 씨(seed)"라는 표현을 했으니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죄를 짓지 아니함이니 이는 하나님의 씨가 그의 속에 거함이요 그도 범죄치 못하는 것은 하나님께로서 났음"(3:9)이라 했습니다. 그래서도 하나님의 "양자/養子"(롬 8:14-17)의 신분입니다.
그리고 짝의 법칙에서 갑과 을, 둘이 하나됨은 갑으로 보면 갑이지만 을로서 보면 금방 을입니다. 양자역학에서 "양자 얽힘"에서 보여지는 현상 그대로입니다. 바로 이것이 위에서 말씀하신 바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지 아니하였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지 아니하였다" 하신 이유입니다. 사실 그대로를 말씀하신 것입니다. 아무리 작은 자, 미천한 자, 없는 자, 약한 자라도 믿음에 들어와 구원 받았을 때에는 거룩하신 성령을 받아 모심으로 된 사실이므로 곧바로 말해 "하나님의 형상", 바로 예수님의 모습. 더 이상 설명이 필요치 않습니다.
그러므로 교회 중에 처신하실 때 잘못하면 주님 경고하신 대로 "(왼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영한 불에 들어가라"(마 25:41)는 똑같으신 선고를 듣게 될 수 있으니 극도로 조심하시기를. 물론 교인 중에는 믿노라는 말과는 달리 성령을 받아 모신 역사가 없는 사람들이 현재로는 절대 다수입니다. 그러나 "돌이켜 어린 아이 같이 된" 믿음으로 말미암은 크신 은혜로 성령께서 계시는 이도 없지 않을 것이니 절대로 사람을 차별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마지막 심판 때까지 자기를 속일 수 있다는 냉혹한 현실에 눈 뜨시기를! 주님 말씀하신 대로 멸망에 들어가는 사람들도 다 당당히 자기 변명이 있을 정도로 딴에는 한 오라기 의심도 없이 자기의 영생을 믿고 있었으니까! 주님의 심판대 앞에 서기 전에는.
지금까지 바벨론 신학은 <구원>만이 하나님 앞에서의 최고 목표인 양 거의 모든 사람을 왕창 속여(계 12:9) 왔습니다. 구원이 아니라 아담처럼 되지 않는 것 즉 머리로서의 하나님께 절대 순종이 핵심입니다. 이를 원수 사탄은 감추어 온 것입니다. 구원 아무리 받아도 아담처럼 범죄하여 불순종의 행보를 보이면 즉 자아중심으로 나가 생명의 법칙(둘의 하나됨)을 어기면 모든 것은 허무하게 끝나는 것을 악착스럽게 숨긴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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