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8월 18일 일요일

21세기 영적/靈的 항우/項羽의 역발산 기개세

하나님께서 모든 피조물을 차등을 두고 차별하실 리 없습니다. 똑같이 사랑하시니까 똑같이 대우하십니다. 모세 시대에 하늘에서 만나를 내려 주실 때에도 많이 거두었다고 해서 그 많은 것이 그대로 남아 있지 않았고 적게 거두었다고 모자라지도 않은 것이 그 명백한 증거입니다. 혹자는 부자로 태어나고 혹자는 가난하게 태어나는 것부터가 이 세상 "삶"이 정상이 아닌 동물적 육체의 비정상이라는 증거입니다. 동물적 육체가 아닌 "신령한, 영광의 몸"이라면 다 똑같이 평균, 평등할 것인데 자연계 물질의 육체가 되다보니 그런 차등이 생긴 것.


이런 죽음의 인간고가 주관하는 현재의 세상에서 호의호식하는 것 자체가(자기가 가진 것을 선한 일에 쓰라고 맡기셨다는 원래의 하나님 뜻을 양심상으로 느낄 수 있음에도 이를 무시하여 마치 축복 받은 것인 양 여기는 자기 기만으로써) 하나님 앞에 죄가 되어 천국 입국 불가의 근거가 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의 교회 역사를 보아도 북한과 같이 교회 핍박이 극심한 데가 있고 미국 등 구미 제국과 같이 자유로운 데가 있는데, 이상과 같이 모든 사람을 평등으로 대하신다는 사실을 기준할 때 핍박 받는 것이 정상이고 편안한 가운데 있는 것이 도리어 비정상이라 위험한 상태에 놓였다는 증거가 됨이 명백한 것입니다. 소위 "자유세계" 에 있는 이들은 이 핍박의 고난 중에 있는 형제자매들을 위해 기도하며 더욱 열심을 내어 하나님의 일을 하라는 하늘로부터의 신호인데도 이를 무시하고 안일 가운데 지내는 것부터가 하나님 앞에 "불법을 행함"(마 7:23)이 되는 것입니다. "한 몸"(고전 12:26ㅡ한 지체가 고통을 받으면 모든 지체도 함께 고통을 받고 한 지체가 영광을 얻으면 모든 지체도 함께 즐거워함)의 이치에서 분명코 그러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한 몸"이 아니라는 증거만 될 뿐이니까.

이 모두는 아담 범죄의 형벌 차원이므로 하나님이 불쌍히 여기신다고 해서 그래서 그 고통을 경감해 주신다고 해서 절대로 될 일이 아닙니다. 만일 그렇게 하시면 하나님 친히 당신께서 세우신 법질서를 무시하심이 되니까. 하나님께서 오직 하실 수 있는 일은, "한 몸"됨의 생명의 법칙에서 죄인된 자로서의 고통의 형벌의 십자가를 친히 함께 져 주시는 것만이 유일한지라 "날마다 자기 십자가를 지지 않고 나를 따르지(본을 보이신 대로 하지) 않는 자는 내 제자가 되지 못한다"(눅 9: 23) 즉 "구원 불가"라는 선언이십니다. 바벨론 신학을 통해 마귀는 이 엄숙하신 명령을 "행함으로 얻으려는 구원"이라고 속여 일괄 처리함으로써 완전히 무시해버렸으니 이 악랄함에 넘어가지 말아야 합니다.

아담 범죄 후 지금까지 인간(아담의 형상과 모양으로서의)은 아담에게 하극상/下剋上하여 아담을 시해/弑害한 사탄과의 전쟁(창 3:15) 양상 그 이하도 이상도 아닙니다. 육체적인 것이나 영적인 것이나 전쟁은 그 승리가 '사즉생 생즉사(살고자 하면 죽고 죽고자 하면 산다)'에 있음은 불변입니다(요 12:25 - "자기 생명을 사랑하는 자는 잃어버릴 것이요 이 세상에서 자기 생명을 미워하는 자는 영생하도록 보존할 것"). 이를 항상 마음에 아로새기고 있는 자 실로 복이 있습니다. 그렇지 않고는 필패/必敗, 영멸/永滅이기 때문. 자아중심이 그 뿌리라는 것도 공통입니다. 하늘 아래 세상 만물이라 하는 것은 한 치도 어긋남이 없이 짝의 법칙에서의 <상대성의 동시성> 즉 생명의 법칙으로 철두철미 운용되어 나가니까.

이 세상은 이미 죄와 죽음으로서의 엎질러진 물 바로 그것입니다. 절대로 다시 쓸어 담을 수 없는 영구 폐기물입니다. 메시야 우리 구원자(예수) 주님의 다시 세상 오시기까지는 절대로 정상화가 되지 않습니다. 이제 그 대망/待望의 순간이 오고 있습니다. 십자가 고난의 죽음을 마냥 회피하려는 "두려워하는 자"(계 21:8)에게는 "21세기 표적과 기사"로서의 하나님 증명이 아무 의미가 없음을 강력 경고합니다. "침노하여 천귝을 빼앗아 차지하는"(마 11:12), "밀치고 들어가는, 강력히 압박해 들어가는, "침입해 들어가는"(눅 16:16) 자에게만 해당되는, 주시는 하나님의 위로이시기 때문. 그저 안일하게 "믿기만 하면 영생"이라는 사탄의 거짓말에 세뇌된 자는 철저히 배제될 것이니까.

"행함으로 구원 <얻으려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으로, 은혜로 <이미> 구원 얻었으니까" 그 넘치는 기쁨으로, 확신 충만한 가운데 치솟는 은혜의 기력/氣力으로, 당연히 나타낼 수밖에 없는 역발산 기개세/力拔山 氣蓋世임을 똑바로 인식해야 하는 것입니다. 근본적 차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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