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8월 3일 토요일

일개/一個 거미 한 마리가 무신론자와 진화론자를 천하 없는 바보들로 규정한다


원인이 있으면 결과가 있어요. 이것이 '짝의 법칙'입니다. 파생한 자와 파생된 자. 앞서 거미 집을 예로 들었지만 거미 스스로 인간보다 머리가 좋아 그런 천재적 공법을 활용하는 것이 아닙니다. 거미를 만드신 분이 그렇게 자동으로 작동되도록 거미 속에 장치해 두신 지식과 지혜의 결과입니다. 누가? 누가 그렇게 했다는 바로 그 증거인 것입니다. 그 "누군가"가 반드시 있게 마련인데 그 "누군가"를 창조주 하나님이라 하는 것뿐입니다(롬 1: 20). 이미 이 간단한 사례 하나만으로도 창조는 증명되고도 남은 것입니다.


당연히 하나님은 인간을 죽지 않는 몸으로 만드셨지요. 영원성의 영혼을 따로이 즉 육체를 먼저 만드신 다음 그 후에 조성하셨다는 것이 그 증거입니다. 그래서 그 영혼에 걸맞게 영원성의 초자연계인 에덴에다 아담을 위한 보금자리를 창설하시고 그 아담의 궁궐(palac)이라 할 자리에 아담의 이중성(자연계에도 속하고 영계에도 속한 양면성의 특질)을 상징하는 선악과/果나무와 생명과나무 두 그루를 두신 것. 고로 실수로라도 선악과는 절대로 손대지 않도록 처음부터 주의를 주신 것입니다. 좋은 것(선)과 나쁜 것(악)을 안다는 것은 본능 작용으로 자신에 대한 호불호를 가려 자동적으로 적응해 감을 말하는 것으로 동물적 육체를 지칭함이고, 생명과는 그 대칭되는 신령한 몸을 상징하는 것. 고로 선악과를 먹으면 죽는다고 경고하심은 아담이 당시 죽지 않는 생명과의 영역에 속한 몸이었음을 증명하는 것. 창세기는 이와 같이 극히 짧은 문장으로 많은 내용을 말하고 있는 훌륭한 명문/名文의 문장력을 구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처음부터 하나님이 인간에게 동물적 육체를 붙여 주실 리가 없고 정말 그렇게 하셨다면 반드시 그 이유를 밝히시는 것이 창조주 하나님으로서의 사랑이심을 알아야. 그래서 영원한 사람(아담)이 천년 동안 세상을 다스린 후에 마지막 심판으로 인간들과 영물들을 의와 악으로 분류하여 조처하게 되어 있는데 아담부터 갑자기 범죄로 죽어버리니 이 돌발 사태부터 수습하셔야 했던 것이 오늘날까지의 인류 역사인 것입니다. 인간이 아담 범죄의 돌발 사태로 동물적 육체가 되다보니 장애가 겹쳐 이를 완전 만회하는데에 6천년의 세월이 소요되었고 이제 모든 것이 완료되어 새 아담으로서의 "마지막 아담" 께서 다시 세상으로 돌아오시어 정식으로 애초 예정되었던 아담의 통치 기간(천년)을 이제 비로소 시작하시고 정상적으로 채우시려 하는 것입니다.

현재의 소위 과학문명은 우리가 본디의 신령한 몸으로 복귀되면 한낱 쓸모 없는 군더더기일 뿐입니다. 인간의 몸이 물질계에 속하는 무척이나 부자유스럽고 부자연스러운 상태에 놓이다보니 끔찍이나 위하는 소위 문명의 이기/利器이지만. 그러나 주님 다시 오시면 모든 것이 사라지고 세상은 새롭게 변모됩니다.

주님께서 단 한 번만이 아니고 2차에 걸쳐 나누어 세상에 오실 수밖에 없는 것은 아담의 육체적 죽음("영적 죽음"이 아닌)을 인함이니 바로 그 증거인 것입니다. 즉 아담이 처음에는 영원한 "영광의 몸"(빌 3:21)이었다가 범죄로 현재와 같은 우리의 이 "낮은 몸" 즉 동물적 육체가 된 때문. 그런즉 "마지막 아담"께서는 당연히 이를 역순/逆順으로 밟아 가실 수밖에. 때문에 처음 오셨을 때는 아담의 죄인으로서의 동물적 육체, 다시 오실 때는 원래의 아담의 "영광의 몸"으로 복구되셨으니까 바로 그모습으로서 두 번에 걸쳐 오실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소위 "영적 죽음"의 거짓됨이 백일하에 폭로되었으니 우리가 어떤 자세이어야 하는지는 명백합니다. 우리 하나님 및 스랍과 그룹 등 모든 계명성(새벽별)과 여러 천사들의 유일한 관심사에 우리도 전심령을 다해 합심, 합류해야. 다름아닌, 사람들을 구원해 내는 일입니다. 그리 함과 더불어 세상 삶을 철저히 원수시하는 것입니다. 세상 삶에 조금이라도 한눈파는 일은 원수들과 야합하는 것이므로 하나님께 심각한 반역죄가 됨을 알아야. 이상과 같은 썩음과 죽음의 징그러운 동물적 육체는 너무 기가 차고 어이없는 것. 이런 따위에 집착하는 것 자체가 병적인 것으로 느껴져야. 소돔 고모라의 죄처럼 정신 상태가 뒤틀려 있지 않고는 세상 사랑의 삶은 가히 상상하기조차도 어려운 것으로 여겨져야 하는 것입니다. 동물적 육체로 있는 것부터가 심히 부끄러운 비극적 참사/慘事로 인식되어지는 것이니까.

그리고 이 모든 불행이 아담의 불행 즉 불순종에서 온 줄 아는 고로 크게 경성/警醒하여 전심전력으로 하나님께 매달리게 되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서는 더 말할 필요도 없게 됩니다. 따라서 로마서 7:24 "오호라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를, 믿은 후의 바울 사도 자신의 체험이라는 사탄의 새빨간 거짓말만 거머리 떼어버리듯 짓밟아버리면 됩니다. 오늘날 모든 교파가 예외없이 이 저주스러운 마귀의 함정에 빠져 있습니다. 이 악마적 성경 해석의 뿌리가 바로 아담의 죽음을 "영적"이라 하는데 있어 세상 삶을 사랑하는데 있는 것입니다. 이런 미신에 빠져 있는 자마다 백이면 백 모두 멸망의 자식됨을 자각하여 참으로 이 바벨론 소굴에서 벗어나 회개하고 갱생/更生하시기 바랍니다. 마귀가 박아놓은 치명적 멸망의 가시인 것입니다. 이전 글에서 여러 번 그 악마성을 조목조목 설명했으니 여기서는 생략합니다.

이세상에서 백 번 죽는다 해도 오는 세상에서 영원에 영원을 거듭하며 불 못(lake of fire, 火湖/화호)에서 고통 받는 것보다 나으며, 비록 이세상에서 만년 거지로 지내도 다음 세상에서 부귀영화 누리면 씻은 둣 사라지니 부디 지혜껏 처신하시기를. 하나님께서 일부러 처음부터 인간에게 괴로움을 주시어 다루어보시는 일은 결코 하지 않으셨음을 이제까지 설명했습니다. 인간이 저지른 불찰(범죄) 때문의 자업자득입니다. 그러나 결과론적으로 오히려 전화위복이 되었다 할까, 장차 악한 자에게 임할 고통을 미리 맛보는 계기가 되어 범죄를 두려워하는 자극제가 되었다면ㅡ.

일개/一個 거미 한 마리가 무신론자와 진화론자를 천하 없는 바보들로 규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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