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전도는 성경도 허나님도 모르는 이들을 상대함과 더불어, 믿는다면서도 자기 몸이 성령의 성전이 되어 있지 않아 뜬 구름만 잡듯 하는 이름먼의 "기독교인"들 대상이기도 합니다. 다시 말해 지금까지의 바벨론 신학과 달리 모든 점에서 면모를 쇄신한 "천사의 복음"들 전해야 하기 때입니다. 이 21세기 천사의 복음은 강력한 "21세기 표적과 기사"가 그 배경임을 알리면 말씀을 듣는 자에게 적잖은 도움이 되리라 봅니다.
만유의 기본 원리로서의 3위1체 바로 그 도식을 천사가 오늘날을 직접 예고/豫告하며 다니엘에게 2,500년 전 알렸던 것이 "한 때, 두 때, 반 때*(단 7:25/12:7)이기에, 이는 결코 간과되어서는 안될 역사적 중대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요한 계시록 역시 21세기 지향/志向 예언서답게 이 기이한 <문자화/文字化된 도식>을 성령의 감동으로 역시 함께 전달하고 있습니다(계 1214).
"이는 힘으로 되지 않으며 능으로 되지 않고 오직 나의 신(성령)으로 된다"(스가랴 4:6) 하신 첫머리 말씀대로 성령께서 이 대목의 주제/主題이십니다. 지금까지 "3위1체"라는 말은 많았으나 정작 그 뜻이 어떻게 되는지 몰랐으니, "바벨론 신학"에 철저히 가려졌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셋이 되실 리는 만무하다고 해서 그냥 <3면(세 모습을 지니신)의 한 분 하나님> 정도가 아닐까 하는 엉뚱한 생각이 지배적이었습니다. 그러니 "성경이 어렵기만 하다"는 사탄의 부추김에 장단만 맞추는 꼴이 되는 슬픈 현실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하나도 어려운 것이 없습니다. 다시 말해 말씀 그대로의 뜻일 뿐입니다. 장차 닥쳐야 실감할 수 있는 예언적 성격의 말씀을 제외하고는.
아버지께서 독생자를 "낳으셨다"고 성경에 명시된 그대로 하나님은 모자(부모 자식) 관계로 존재하십니다. "아버지는 나보다 크시다" (요 14:28) 하신 대로입니다. 단, 둘로서 계시지 않고 문자 그대로 "하나"(10:30)로서 계시기 때문에 이 이치를 만유 창조와 운영의 기본 원리로 삼으신 관계로, 마귀는 이 핵심 진리를 여러 거짓말로 감추려 했던 것입니다.
상보성 원리에서 닐스 보어(1885-1962)가 갈파함으로써 상반/相反은 상보/相補(CONTRARIA SUNT COMPLEMENTA)라는 유명 문구에서 드러나듯 인과율/因果律이 입증되어(파생자와 피/被파생자의 관계) 이 특이한 3위1체의 사실이 드러나면, 이제까지 약방의 감초처럼 마귀가 써먹어 왔던 무신론, 회의주의 등을 더 이상 이용할 수 없게 되는 까닭입니다. 최고 원인으로서의 창조주가 입증되시기 때문입니다.
참고로, "인과율 붕괴 가능성"을 말하는 이들은 예컨대 양자역학에서 매우 미시적 영역에서는 인과율이 적용되지 않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방사성 원자의 붕괴는 <예측 불가능한> 확률적 현상으로 나타나 인과율을 붕괴시키는 것처럼 보인다고들 합니다. 또 특수상대성 이론에서는 빛보다 빠른 속도로 이동하는 것은 인과율을 위반할 수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으로 이는 특정 사건에서 <인과관계의 뒤바뀜>처럼 보일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문제는, 두 경우 다 "상반'이 되어 있는 둘이 "상보'가 됨 더 정확히 간단히 말해 짝을 이룬 둘이 <둘>로서가 아닌 <하나>(요 10:30)로서 존재함 즉 "3위1체"의 근본 이치를 외면함에서 오는 혼돈일 뿐입니다. 설명하기 어려운 현상을 다룸도 아니고 "특정 상황에서의 다른 원리가 적용됨"도 아닌 것입니다.
21세기 "천사의 복음"이라는 천사들의 획기적 거사/擧事와 용단/勇斷에 의해(하늘 전쟁에서의 승리로 악령들을 제압하여 더 이상 거짓말로 인간 세상을 농락하지 못하도록 함으로써ㅡ계 12:7-9) 모든 막혔던 물꼬가 트이게 된 오늘입니다. (진리가 드러났다뿐이지 사탄의 거짓말이 이제는 더 이상 활동하지 않는다는 뜻은 아님).
사탄이 이렇게 세상을 장악하게 된 것은, 아담 스스로 불러들인 화근으로서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여 따르기보다 사탄의 거짓말에 더 복종해 그를 경배한 꼴이 되어, 연약해 빠진 동물성 육체가 됨으로써 막강한 신령한 몸을 박탈 당하자 벌어진 (종전까지의) 위계질서의 비극적 전복/顚覆 내지 도치/倒置 결과인 것입니다.
즉 아담 아래 있던 영물들이 일부 하극상을 함으로써 아담을 시해/弑害한(아담이 사탄의 거짓말대로 따른 결과 죽은 자 곧 동물적 육체로 돌변하여 종전의 신령한 몸을 상실했으므로) 꼴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따라서 사탄 및 그 아래 악령들의 인간 세상 지배는 <아담 범죄의 형벌> 차원에서 요지부동이었는데, "마지막 때"를 당해 "마지막 아담"의 등장을 계기로 비로소 천사 군단이 행동할 여유가 생긴 까닭에, 그나마도 힘 겨루기를 통해 이겨야만 가능한 까다로움을 천사들은 극복한 것이니 이것이 21세기 "천사의 복음"(계 14:6)의 시동/始動입니다.
이런 사실 즉 사탄의 이 세상 지배를 모르니까 바벨론 신학의 정체를 알 리가 없고, "하나님 창조하신 세상에서 어느 누가 감히 하나님 말씀에 거짓말 같은 것으로 손대랴" 하며 사탄이 대놓고 세뇌시키는 대로 허무하게 맹종했던 것이 오늘날과 같은 파탄을 낳은 것입니다. 이제는 시급히 깨어날 때입니다.
사탄이 나꿔챈 통치권은 하나님의 이 세상 지배가 아닌 세상 모든 피조물의 수장/首長/으로 세우신 아담의 인간 세상 지배권("우리의 형상과 모양대로 사람을 만들고 그로 고기와 공중의 새와 육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ㅡ창 1:26)을 말합니다. 그래서 이 세상을 사탄의 왕국이라 하는 것입니다.
때문에 세상(현세의 삶)을 사랑하지 말라는 경고입니다(요일 2:15). "(이 세상에서의) 자기 생명을 사랑하는 자는 잃어버릴 것이요 이 세상에서 자기 생명을 미워하는 자는 영생하도록 보존할 것"(요 12:25)이라고 엄중 경고하신 이유입니다. 소위 "기복 신앙" 즉 하나님 축복 받아 세상에서 잘 산다는 것은 멸망의 확실한 지름길 외 아무 것도 아닌 것입니다.
사탄이 우리 주 예수님께, "(천하 만국을 보이며) 이 모든 권세와 그 영광을 내가 당신에게 줄 것이니 이것은 내게 넘겨 준 것인즉 나의 원하는 자에게 주는 고로 당신이 내게 절하면(나의 자아중심을 따르면) 다 당신 것이 될 것"(눅 4:5-7)이라 했던 근거이기도 합니다. "나의 이 뜻을 거스르는 그 누구든 이 세상에서 결단코 볕 볼 날이 없을 뿐더러 그 정반대인 고통 고난뿐임을 각오해 두라"는 당당한 위협("마지막 아담"에게 소속되어 이는 그 누구를 향해서든 할 수 있는)인 것입니다.
"하나님 축복 받아 세상에서 잘 산다"니 이것이 바로 "미친 마음"(전도서 9:3)인 것입니다. 구약(유치원생 수준의 예비교육)과 신약(성인으로서의 실생활)도 구분 못하는 무지 속에 갇혀 있음은 성경을 읽지 않은 탓입니다. 그래서 구약에 "축복, 운운" 한다고 해서 "세상에서 축복 받아 잘 산다"는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헛소리'를 하게 됩니다. "믿는 무리가 한 마음과 한 뜻이 되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공용/共用하고 제 재물을 조금이라도 제 것이라 하는 이가 하나도 없었던"(행 4:32) 초대교회의 본보기에 대해 전혀 들어본 적도 관심도 없다는 증거입니다.
"도둑질했던("도둑질하는"은 오역ㅡ개역한글) 자는 다시 도둑질하지 말고 돌이켜 빈궁한 자에게 구제할 것이 있기 위하여 제 손으로 수고하여 선한 일을 하라"(엡 4:28) 했는데 가난 구제는 국가도 못당한다는 말도 있듯이 베풀다보면 나 자신 (이 세상에서) 호의호식할 수가 없습니다. "자기도 함께 갇힌 것같이 갇힌 자를 생각하고 자기도 몸을 가졌은즉 학대받는 자를 생각하는"(히 13:3) 것이 마땅한 세상인즉 하나님이 두려워서라도 감히 그렇게 나의 안위만 생각할 마음이 날 수 없습니다.
거지 나사로와 부자 비유를 말씀하신 것은 믿는 자의 공동체인 교회 내에서의 부자와 거지 행색의 여타 사람들을 빗대서 말씀하심입니다. 나사로가 죽어 아브라함의 품에 안겼다 하셨으니까. 부자의 죄는 "이 세상에서 부자로 살았다"는 오직 그것입니다. 죄명은 이 세상에서 "위로를 이미 받아버렸다"(눅 6:24ㅡ"그러나 화 있을찐저 너희 부유한 자여 너희는 너희의 위로를 이미 받았다")는 것. 부유한 교회당을 번듯하게 세워 올리고 최고급 자가용을 자랑스럽게 굴리고 다니는 소위 "교역자"들에게 경고합니다. 하나님의 진노가 뒤쫓고 있으니 한시바삐 깨어나세요!
미국의 오랄 로버츠라는 한 이름 날리던 소위 "신유 부흥사"는 생전에 곧잘 하던 소리가, "나는 하나님의 축복 받은 증거로 일부러 자가용을 여러 대 구입하여 번갈아 타고 다닌다"였습니다. 당시는 미국만 해도 자가용은 보통 사람은 엄두도 못냈던 시절이었습니다. 동물성 육체로서의 만 가지 고초(인간고)에서 해방되는 것이 천국 곧 "신령한 몸"(고전 15:44)이자 "영광의 몸"(빌 3:21)으로의 복귀/復歸/입니다. 이것이 구원 받음입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않고 자아중심으로 자기 생각대로 했기 때문에 아담이 영생을 잃고 현재와 같은 동물성 육체가 되어 죽음에 이르게 되었으니, 구원 받음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함"("나더러 '주님, 주님'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갈 것이다"ㅡ마 7:21)에 있음을 확증적으로 단정하게 됩니다.
믿기만 하면 만사형통이 아니니 믿음으로서의 "은혜", "선물"은 우리가 아담 범죄로 모두 죽은 자가 되어버렸은즉 새 창조를 받아 산 자부터 되고보는 것이 급선무라 그렇습니다. 새 피조물로 거듭 난 다음의 단계가 필수이자 필연이니 아담의 전철을 밟지 않는 것 즉 순종 다시 말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함"인 것입니다. 바벨론 신학은 무조건 "믿음" 일변도로만 끝낼 뿐인 사탄의 속임수인 것입니다.
아무리 새 생명의 새 사람으로 거듭 나고 새 피조물이 되었더라도 상대방중심/하나님 중심이 아닌 자아중심이면 그 나물에 그 밥, 그것이 또 그것이기에, 이런 상태에서는 하나님의 성령이 아예 임하시지를 않습니다. "성령으로 날"(요 3:5,6) 수가 없으니 한 마디로 불가능입니다. 이 자기 기만은 엄청난 비극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구원 받았음을 "확신한다"지만 허공에 떠 사라지는 메아리 같은 허무로 끝나고 있으니, 다시 자기를 살펴 여의치 못하면 새로 확실히 시작하시기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