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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하게 생각하고 쉽게 설명해야 하는 것으로서 가장 이상적인 것이 있으니, 그것은 "상대방중심으로 살기"로 모든 사람이 서로 약속하는 운동을 펼치는 것입니다. 그러면 나는 나 자신을 위하지 않는 대신에 모두가 나를 위하는 것을 직접 체험하게 되니 이보다 더 좋은 이상주의 실천은 없는 것입니다. 소위 공산주의가 이상주의인 것만은 사실이나 이렇개 단순히 생각하여 쉽게 설명할 줄을 몰랐기에 "20세기 최대 악마의 화신"으로 전락하는 환멸의 비애를 맛보는 불행을 겪은 것이니 이는 누구나 시인하는 사실입니다.
<말씀> 전파는 하나님의 인생 구원의 복되고 은혜스러운 말씀(복음)을 이제까지 듣지 못한 사람에게 처음 알리는 역할입니다. 즉 전도인 것입니다. 고로 교역자 또는 설교자에게는 해당되지 않습니다. 이들 목회자에게 걸맞는 것은 하나님의 양떼들 개개인을 위한 <기도>이기 때문입니다.
"천사가 가진 복음"(계 14.6)과 바벨론 신학(사탄의 거짓말)의 차이는 <초대교회 432>("믿는 무리가 한 마음과 한 뜻이 되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通用(공용/共用하고 제 재물을 조금이라도 제 것이라 하는 이가 하나도 없더라"ㅡ행 4.32)에서 당장 드러납니다. "영광의 몸"(빌 3.17)/ "신령한 몸"(고후 15.44)이 아닌 동물성 육체의 특징은 <자아중심>의 <자기 소유에 대한 애착 내지 집착>("자기의 모든 소유를 버리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ㅡ눅 14.33)에서 완연히 드러나집니다.
"나의 영혼이 주님을 가까이 따르니 <주님의 오른손>이 나를 붙드시거니와"(시 63: 8). "내가 항상 주님과 함께 하니 주님께서 <내 오른손>을 붙드셨습니다"(시 73: 23). 주님의 오른 손이 나의 오른 손을 붙잡으시면 자연스럽게 주님의 왼손이 나를 감싸 안으심이 됩니다. 나는 항상 내 옆에, 앞에 계시는 주님을 뵙는 것입니다. 오른손은 항상 능력과 권위를 상징하니, 주님 친히 내게 그와 같은 힘이 되어 주심입니다.
성경 해석 그 중에서도 메시야 예수 우리 주님의 우리 위하신 죽으심에서 문제의 본질이 어디 있느냐 하면 "성령" 관련 몰이해에 있습니다. 다시 말해 성령께서 누구이신지를 정확히 모른다는 중대한 결함에 있습니다. 말을 바꾸면, "3위1체"에 대한 무지/無知 자체에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성부, 성자, 성령"(마 28:19)이신(또는, "~으로 계신") 줄은 알지만 그 표현이 정확히 어떤 의미인지 지금까지는 몰랐기에, "한 분 하나님이시나 어떤 때는 성부로, 어떤 경우에는 성자 혹은 성령으로 자신을 나타내신다"는 말까지 했었습니다. 하나님은 성부와 성자로서의 모자/母子(하나님은 성별이 없으시기에 대표적인 남성으로 통일시켜 "부자"라 해야 하지만 부드러운 어감/語感을 위해) 관계이시나, 두 분이 "하나"(요 10.30)로 계심이 "성령"이신 사실을 몰랐기에 빚어지는 혼돈이었던 것입니다.성경에서 가르치는 '믿음'과 '행함'과 '구원'
"하나님"이시라 하면 우선 인식이 "볼 수 없다"는 것만 머리에 박혀 있어, 애매모호 막연한 인상으로만 남기 쉬우나, 이는 크나큰 착각입니다. 성령으로 계시기에 말 그대로, 문자 그대로 365일 24시간 내 앞에, 옆에 "사랑의 하나님"(요일 4:8,16)으로 계심인데 이는 대단히 잘못된 것입니다.
혹자는 말할 것입니다. "사탄이라는 피조물이 제가 무엇이라고 전쟁에서 패해 땅으로 영구 추방되었다고 해서 그런 재앙을 일으키며 분노를 발산시키느냐"라고. 지금껏 강조했듯이 인간 자체가 정상이 아닌 비정상이라 즉 심히 나약한 동물성 육체로 전락했고 게다가 사탄이 아담의 인간 세상 통치권을 아담 대신(아담으로부터 넘겨 받아) 행사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왜 "천사가 복음을 가졌다"(계 14:6)고 했을까, 복음을 천사의 활동과 관련시킨 것으로는 이 외의 성경 다른 부분에서는 볼 수 없습니다. 지금의 "마지막 때"와 맞추어져 있는 것입니다. 이 계시록 14장 앞 13장에서는 적그리스도("짐승"으로 표현되어ㅡ네피림으로서 악령의 '씨'이니까)의 출현이 예고되어 있습니다. 고로 이 21세기 사건임은 명백합니다.
기록된 순서가 반드시 시간 차이를 나타내는 것은 아닙니다. 동시적 현상으로 나타나는 것이지만 설명상 그렇게 앞뒤로 나누어질 수 있습니다. "하늘의 전쟁"(12:7)에서 미가엘이 통솔하는 천사 군단이 사탄 일당을 상대하여 일대 접전을 벌였다는 기록도 마지막 때의 예언서인 계시록에만 나옵니다.
따라서 사탄이 대패하여 그 악당 떼거리가 항구적으로 천상으로부터 추방 당하는 광경이 역시 묘사되어 있는데, 바로 1908년 6월 30일의 시베리아 퉁구스 대충돌 사건과 직결되어 있습니다. 어떻게 된 영문인지 모르는 세상 사람에게는 "퉁구스카 대폭발(tunguska event, tunguska explosion)"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렇게 단정하는 이유는, 그 후로 1백년 넘게 세월이 흘러갔지만 그 대충돌의 원인이 과학적으로 규명된 바가 없고 뿐만 아니라 당시 이를 목격한 이들의 증언에 따르면 길다란 전신주 같은 것이 지상으로 내리꽂히는 것이 보여졌으며 두 눈이 퉁방울 같이 거대한 용이 흐느적거리며(인터넷 검색에서 확인됨) 공중 높이 지나갔다는 진술이 있어 확인되는 까닭입니다.
뿐만 아니라 과연 성경에 예언한 대로("그러나 땅과 바다는 화 있을 것이다. 이는 마귀가 자기의 때가 얼마 못된 줄 알므로 크게 분내어 너희에게 내려갔음이라"ㅡ계 12:12), 1908년 이후 연속되는 대재앙들이 또한 그 증거입니다. 1917년 시작된 소위 "공산주의 혁명"의 난동으로 희생되거나 숙청된 사람들, 그 외 기아, 강제 노동, 처형, 추방 등으로 인한 사망자를 모두 포함하여 수천만에서 최대 1억 명 이상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고, "공산주의 흑서"(The Black Book of Communism)에서는 약 9,400만 명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스페인 독감(1918~1919)으로 2천만 명에서 최대 5천만 명(일부 추정치는 그 이상)이 세계적으로 사망했고, 제1차 세계대전(1914~1918)에서 약 1,500만 명에서 2,200만 명의 사망자, 제2차 세계대전(1939ㅡ45)에서는 홀로코스트와 원자폭탄 투하 등 포함해 7천만~8천5백만 명의 사망자. 소련 대기근(1932ㅡ33)에서 최소 500만 명 이상, 중국 대기근(1959ㅡ61)에 2천만~4천만 명의 추정 사망자라고 합니다. 그 외 간헐적으로 일어난 대소 사건 사고까지 합치면 실로 "땅과 바다는 화 있을 것이다" 한 그대로입니다.
이와 같은 결과를 미루어 볼 때 지금이야말로 "내 백성아, 거기서(바벨론에서) 나와 그의 죄에 참여하지 말고 그의 받을 재앙들을 받지 말라"(계 18:4), "또 보니 다른 천사가 공중에 날아가는데 땅에 거하는 자들 곧 여러 나라와 족속과 방언과 백성에게 전할 영원한 복음을 가졌더라. 그가 큰 음성으로,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라! 이는 그의 심판하실 시간이 이르렀음이니 하늘과 땅과 바다와 물들의 근원을 만드신 이를 경배하라!" 하였다"(14:6,7)ㅡ이 메시지의 때가 바로 지금임은 의심할 여지가 없습니다.
<다음 단계>는 바벨론 심판으로서 각종 재앙이 닥치고("또 다른 천사 곧 둘째가 그 뒤를 따라 말하되 무너졌다, 무너졌다, 큰 성 바벨론이여, 모든 나라를 그 음행으로 인하여 진노의 포도주로 먹이던 자이다 하더라ㅡ14:8), 그 <다음>이 악한 자 곧 적그리스도 출현입니다("또 다른 천사 곧 셋째가 그 뒤를 따라 큰 음성으로 외치기를 '만일 누구든지 짐승과 그 우상에게 경배하고 이마에나 손에 표를 받으면 그도 하나님의 진노의 포도주를 마실 것이니 그 진노의 잔에 섞인 것이 없이 부은 포도주라 거룩한 천사들 앞과 어린 양 앞에서 불과 유황으로 고난을 받을 것이다'"ㅡ14:9).
또 하나님 백성들에 관해서는, "하늘에서 음성이 들리기를, '지금 이후로 주님 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이 있다' 하니, 성령이 말씀하시기를, '그러하다 저들의 수고를 그치고 쉴 것이니 이는 저들의 행한 일이 따름이다' 하셨다"(14:13) 함이 이루어지고, 또한 "짐승 앞에서 이적을 행하는 거짓 선지자"(19:20)가 "권세를 받아 그 짐승의 우상에게 생기를 주어 그 짐승의 우상으로 말하게 하고 또 짐승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아니하는 자는 <몇이든지 다 죽이게> 하는"(13:15) 사태가 일어날 것입니다.
계시록은 또한 이 때를 가리켜 "용이 자기가 땅으로 내어쫓긴(추방된) 것을 보고 남자를 낳은 여자를 핍박하는지라 그 여자가 큰 독수리의 두 날개를 받아 광야 자기 곳으로 날아 낯을 피하여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를 양육받는다"(계 12:14) 했는데, 천사가 다니엘에게 말해 준 그 "하나, 둘, 반"이란 특이한 표현이 다시 등장합니다. 다시 말해 21세기 하나님의 교회 연단은 "천사의 복음"이 그 주축을 이룬다고 할 것입니다.
야고보서는 평이/平易하게 아주 쉽게 성경을 풀이합니다. 아래와 같은 대목이 그러합니다.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다"(약 2:26).
아래 요한의 지적도 같은 뜻입니다. "우리가 <형제를 사랑함으로> <사망에서 옮겨 생명으로 들어간> 줄 알거니와 사랑치 않는(사랑의 행위가 없는) 자는 사망에 그냥 머물러 있는 것이다"(요일 3:15).더 이상 바벨론 신학과 바벨론 교회의 종살이에 매여 있지 맙시다. 사탄의 멍에일 뿐입니다. 왜 에덴을 자연계 동산이라고 부질없는 고집을 부리시나요? 에덴이라는 지명이 나오고 있어("가인이 여호와 앞을 떠나 나가 에덴 동편 놋 땅에 거하였다"ㅡ창4:16) 그것이 근거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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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최고 으뜸의 낙을 삼아 "항상 기뻐함"(살전 5:16)이 나의 힘/운동력(느헤미야 8:10). "아버지 품속"(요 1:18)의 의미.
"나를 보내신 이가 나와 함께 하신다. 내가 항상 그의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므로 나를 혼자 두지 아니하신다"(요 8:29). 하나님을 가까이 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 하시리라:(약 4:8). 상대성의 동시성입니다. 하나된 둘은 함께 동시에 움직임이 그 하나됨의 특징입니다. 지금까지는 하나님의 일방적인 사랑의 은혜인 줄로만 착각하다시피 했습니다. 따라서 우리도 거저 은혜로 선물로서 믿으면 되는 구원으로만 생각하여 자기중심적으로 이기주의에 흘러 우리 구원을 우리 자신 스스로가 망칠 뻔한 것입니다.
한 서기관이(마 8:19) "선생님, 어디로 가시든 제가 따르겠습니다" 하니,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집이 있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 하시고, 또 다른 사람에게 "나를 따르라" 하시니 "먼저 내 부친을 장사하게 허락해 주십시오"(눅 9:57-62) 하므로, "죽은 자들로 자기의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고 너는 가서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라" 하시고, 어떤 이가 "제가 주님을 좇(따르)겠습니다마는 먼저 제 가족을 작별케 허락해 주십시오" 하니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 나라에 합당치 않다" 하셨습니다.
죽은 자들로 저들의 죽은 자를 장사하게 하고 너는 가서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라"ㅡ세상 모든 인간을 "죽은 자들"이라 하셨습니다. 죽은 자들을 창조하실 리 없습니다. "영적 죽음"이라는 어슬픈 따위 의미로는 단 한 마디도 아니하셨습니다. 그러면 결론은, 아담으로 인해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으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른"(롬 5:12) 것인즉, 현재의 이 동물적 육체가 죽음이고 그래서 모든 인생을 "죽은 자"라 하신 것입니다.
인간을 친히 지으셨던 창조주께서 하신 설명이십니다. 인간을 처음부터 죽지 아니하는 몸으로 지으셨다는 것은 이런 동물적 육체가 아니라 아담이 신령한 몸이었다는 뜻일 수밖에 없습니다. 신령한 몸을 잃고 전연 생소한 동물적 육체이다보니,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집이 있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 하신 것입니다. 여우나 새는 원래부터 동물로 살도록 창조되어 그렇게 안정되어 있지만, 인간은 신령한 육체였다가 돌연변이로 동물성 육체가 되니 어색하고 불안정하기 짝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설명은 확실하게 나온 것입니다. 이런 죽어 썩어 없어져버리는 동물적 육체로 "산다"는 것은 아예 꿈도 꾸지 말고 현재 죽은 자이니 무조건 "살고부터" 보는 것이 유일한 해결책으로서의 <발등에 떨어진 불 끄기>입니다. 다른 것은 일절 여유 부릴 건더기 하나도 남아 있지를 않습니다. 오직 "살아야겠다"는 다섯 마디뿐입니다. 이것이 우리들 모두의 지금 현주소입니다.
우리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뜻이 그렇고 이제 비로소 눈을 뜨게 된 우리의 적나라한 현실이 그렇습니다. 이외 한눈을 팔면 하나님의 진노 밖에 없어요. 왜 그러냐, 하나님의 인간 창조의 원래 뜻이 완전히 망가져 내려 하나님 인상을 철저히 구겨놓은 것이 인간 자신인데 이틀 안타까워하고 그 복구에 전념하느라 눈코뜰 새 없어야 하는 북새통임에도 이 박살이 나 산산히 흩어진 사금파리(사기그릇의 깨어진 작은 조각)를 쓸어 담아 놓고, "에헤야디야, 살 맛 나네" 키득거리며 강강술래 도는 꼴사나운 작태이니까! 목놓아 울어도 시원찮은 판에!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 정녕 기쁨으로 그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시 126:6). 지금은 울 때입니다. 울며 복음의 씨를 뿌릴 때입니다. 할 수 있는 일이 첫째기도와 둘째는 복음 전파, 그리고 동병상련의 구제(함께 나눔) 이 셋 밖에 없습니다. 가난 구제는 나라도 못당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나 혼자 배 부르면 그만이라는 안일에 젖은 자에게 미래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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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릇 지킬 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생각의 바탕)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다"(잠 4.23). "생명의 근원"이 마음의 생각이니 우리는 이 문구를 금지옥엽/ 金枝玉葉 처럼 속에 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