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서기관이(마 8:19) "선생님, 어디로 가시든 제가 따르겠습니다" 하니,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집이 있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 하시고, 또 다른 사람에게 "나를 따르라" 하시니 "먼저 내 부친을 장사하게 허락해 주십시오"(눅 9:57-62) 하므로, "죽은 자들로 자기의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고 너는 가서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라" 하시고, 어떤 이가 "제가 주님을 좇(따르)겠습니다마는 먼저 제 가족을 작별케 허락해 주십시오" 하니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 나라에 합당치 않다" 하셨습니다.
죽은 자들로 저들의 죽은 자를 장사하게 하고 너는 가서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라"ㅡ세상 모든 인간을 "죽은 자들"이라 하셨습니다. 죽은 자들을 창조하실 리 없습니다. "영적 죽음"이라는 어슬픈 따위 의미로는 단 한 마디도 아니하셨습니다. 그러면 결론은, 아담으로 인해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으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른"(롬 5:12) 것인즉, 현재의 이 동물적 육체가 죽음이고 그래서 모든 인생을 "죽은 자"라 하신 것입니다.
인간을 친히 지으셨던 창조주께서 하신 설명이십니다. 인간을 처음부터 죽지 아니하는 몸으로 지으셨다는 것은 이런 동물적 육체가 아니라 아담이 신령한 몸이었다는 뜻일 수밖에 없습니다. 신령한 몸을 잃고 전연 생소한 동물적 육체이다보니,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집이 있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 하신 것입니다. 여우나 새는 원래부터 동물로 살도록 창조되어 그렇게 안정되어 있지만, 인간은 신령한 육체였다가 돌연변이로 동물성 육체가 되니 어색하고 불안정하기 짝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설명은 확실하게 나온 것입니다. 이런 죽어 썩어 없어져버리는 동물적 육체로 "산다"는 것은 아예 꿈도 꾸지 말고 현재 죽은 자이니 무조건 "살고부터" 보는 것이 유일한 해결책으로서의 <발등에 떨어진 불 끄기>입니다. 다른 것은 일절 여유 부릴 건더기 하나도 남아 있지를 않습니다. 오직 "살아야겠다"는 다섯 마디뿐입니다. 이것이 우리들 모두의 지금 현주소입니다.
우리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뜻이 그렇고 이제 비로소 눈을 뜨게 된 우리의 적나라한 현실이 그렇습니다. 이외 한눈을 팔면 하나님의 진노 밖에 없어요. 왜 그러냐, 하나님의 인간 창조의 원래 뜻이 완전히 망가져 내려 하나님 인상을 철저히 구겨놓은 것이 인간 자신인데 이틀 안타까워하고 그 복구에 전념하느라 눈코뜰 새 없어야 하는 북새통임에도 이 박살이 나 산산히 흩어진 사금파리(사기그릇의 깨어진 작은 조각)를 쓸어 담아 놓고, "에헤야디야, 살 맛 나네" 키득거리며 강강술래 도는 꼴사나운 작태이니까! 목놓아 울어도 시원찮은 판에!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 정녕 기쁨으로 그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시 126:6). 지금은 울 때입니다. 울며 복음의 씨를 뿌릴 때입니다. 할 수 있는 일이 첫째기도와 둘째는 복음 전파, 그리고 동병상련의 구제(함께 나눔) 이 셋 밖에 없습니다. 가난 구제는 나라도 못당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나 혼자 배 부르면 그만이라는 안일에 젖은 자에게 미래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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