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2월 23일 화요일

인간은 의인으로 성인(聖人)으로 선하게 영생하도록 창조되었었다

 


'자아중심'이 만악의 근원이고 그와는 정반대인 '상대방중심'이 만복의 근원임이 밝혀졌으니 이것은 3위1체에서 나온 것이요 3위1체야말로 창조주 하나님 계시는 모습이시기 때문입니다. 당신께서 계시는 모습을 따라 만유를 창조하셨으니 이는 너무나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사리/事理입니다. 이로써도 오늘날 21세기 창조주 하나님의 실존/實存은 훌륭히 완벽하게 입증되신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날 사탄의 거짓말 바벨론 신학을 척결하는 "천사가 가진 복음"(계 14.6)의 웅장/雄壯함이라고도 하겠습니다. 이것은 기독교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도 아니고 불교 등 세상 종교와도 물론 맥이 닿지 않습니다. 기독교의 맥락을 이어 받은 것도 아니라고 함은 초대교회가 시작함과 거의 동세에 바벨론 신학 즉 악마의 거짓말이 준동/蠢動음이 드러났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의 은혜로 너희를 부르신 이를 이와 같이 <신속히> 떠나 다른 복음 좇는 것을 내가 이상히 여긴다"(갈 1.6)고 바울 사도가 심히 놀라워 헸던 바로 그대로입니다.

그리하여 에덴, 아담이 초자연계 속성임을 깡그리 무시해버리고 "영적 죽음" 따위 해괴한 속임수가 지금까지 기독교계를 지배해 왔던 것울 감안한다면, "천사가 가진 복음"이라는 독자적 개념이 등장할 만도 합니다. "3위1체"라는 소위 신학자들의 용어조차 이미 등장한 지 2천년 세월을 거쳤지만 그동안 무지/無知 속에 갇혀 있다가 오늘에서야 빛을 보게 된 것도 그러한 맥락이라 할 것입니다.

"자아중심이"니 "상대방중심"이니 하는 개념도 3위1체 기반의 생명의 법칙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즉 '상대성의 동시성'입니다. 정반대의 성질로서 짝을 이룬 둘은 반드시 "하나"(요 10.30)를 이루는 바 이 "하나"됨의 요건이 있으니 갑은 갑 자신을 위하지 않고 그 상대인 을을 위하며 을 역시 그러한 것이니 이 명확한 현상은 남녀 "한 몸"(창 2.24)됨에서 검증된 것입니다("아내가 자기 몸을 주장/주관하지 못하고 오직 그 남편이 하며 남편도 이와 같이 자기 몸을 주장하지 못하고 오직 그 아내가 함이니"ㅡ고전 7.4).

이는 오늘날 미시세계에서의 양자역학으로 확인되는 사실이기도 합니다. 즉 입자성과 파동성은 둘이 동시에 나타나는 법이 없고 반드시 둘 중 어느 하나만 나타남이니 이는 둘이 "하나"를 이루어 있기 때문에 그 특징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름지기 상대방중심은 애오라지 다음과 같은 여건하에서만 완전하게 성립한다는 결론입니다. 창조주 하나님을 시인할 것, 이것이 첫째이고 둘째는, 아담의 범죄로 인해 모든 인생이 죽은 자가 되었고 그 범죄 이유가 자아중심이었으므로 이 자아중심을 뉘우치는 "회개"가 급선무임을 각자 자각해야 하는 것입니다.

회개한 사람에게만 한해서 만인간에게 해당되시는 하나님의 은혜는 하나님 친히 사람되시어 우리 위해 죽으심과 부활하심에 있으시니, 각자 이 사실을 믿고서 성령으로 임하시는 그 분을 자기 몸 안에 자기 영혼처럼 모실 것, 이것이 세번째입니다. 이렇게 우리 안에 임하여 오시는 이유는, 아담 범죄로 모두 죽은 자가 되어 신령한 몸을 잃어 영생이 불가능하게 되었기에 애초 신령한 몸으로 창조되었던 처음 창조는 폐기시키고 새 창조를 받기 위함입니다.

성령으로 오시는 그 분을 내 안에 모시는 이유는, 그 분과 "합하여"(고전 6.17) "하나" 곧 "한 영"되기 위함이니 이로써 그 죽으심이 내 죽음이 되고 그 부활이 나의 부활이 되는 엄연한 역사적 사실로 태동/胎動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죽음으로 끝난 후에는 동시에 새 생명 새 사람으로 다시(거듭) 나 새로 다시 시작해야 하는데 이 일이 가능하게 하심입니다.

이로써 처음 창조되었던 대로 상대방중심의 의롭고 선한 존재로서의 거룩함으로 창조됨이 새로이 이루어져 영원한 삶이 이루어지는 것이니, 주님은 오직 나만 위하시고(십자가 죽으심으로 이미 증명하셨음) 나는 이렇게 다시 난 순간부터 "살아도 주님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님 위하여 죽음으로써 사나 죽으나 주님의 것(소유물)"(롬 14.8,9)이 됨입니다.

성령으로 내 안에 임하시는 즉시 내가 신령한 몸으로 변환되지 않는 이유는, 이렇게 다시 나게 되는 우리 각자는 "마지막 아담"의 영(성령)으로 나는(요 3.6) 것이기에, 우리 각자 개개인이 다 마치 아담처럼 개별적으로 단독 창조됨과 같은 양상이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아담의 코에 숨을 불어 넣으시던 때의 형용을 해 보이시어, 제자들에게 "숨을 내쉬시며"(요 20.22) "성령을 받으라" 하셨으니, 아담이 당시 그렇게 하나님 친히 내쉬시는(아담의 코에ㅡ창 2.7) 숨("생기")으로 영(혼)이 조성된 것과 같은 것입니다. 그 후에 아담이 신령한 몸이 된 것처럼 우리도 성령 받아 새로 창조됨 즉 다시 남으로 인하여 신령한 몸을 입음 즉 영생이 현실화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담이 동물적 육체로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 지으심 받은 후 에덴에 한 동산을 창설하신 다음 아담을 거기 두심으로써 아담이 신령한 몸으로 변환되었었던 그 동일한 과정을 밟음을 밝히심으로써,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을 것이다.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요 14.2,3) 하신 것입니다. 즉 <세상에 다시 오시는> 날 일제히 순식간에 신령한 몸이 됩니다.

이와 같이 우리의 새 창조가 세세한 부분에 이르기까지 그 일렽의 과정이 그림처럼 묘사되었으니, 어찌 성경이 지어낸 이야기라는 무책임한 말을 한단 말입니까! 단 현재의 인간은 오랜 세월에 걸쳐 낳고 낳음으로 생겨나는지라 2천년이 소요된 것이나, 신령한 몸 변화는 주님 오심과 맞추어 순식간에 되어지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구원 받음이 위의 설명처럼 새 창조이니까, 아담이 창조될 당시 선하고 의로운 자, 거룩한 자였던 것과 같이 무릇 구원 받은 자로 자처하는 자마다 모름지기 상대방중심, 하나님 중심이 되어야 함이 의심할 나위가 없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의 "하나님 믿음", "구원의 확신" 등은 일체가 자기 기만에 그칠 뿐입니다. 바벨론 신학은 이 중대 사실을 지적하지 않은 것입니다. 무조건하고 "믿으면 구원"이라고만 속여 온 것입니다. 그런 것은 백날 외쳐보아야, 백날 믿어보아야 구원이 아닙니다. 크게 경각심을 가져 마땅한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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