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고 선을 행함"이 "영생"(롬 2.7)이다. "선을 행하는 각 사람에게"는 "영광과 존귀와 평강"(:10)이다. 반복한다; "참고 선을 행함"="영생"(롬 2.7). "선을 행하는 각 사람에게"="영광과 존귀와 평강". 여기에는(하나님 말씀으로 분명히 말하거니와),
"하나님의 구원의 복음을 믿음"="영생",
"믿음으로 의롭게 됨"= "영광과 존귀와 평강" 등의 말은 일언반구도 없는 것이다.
왜 그러냐, 그것은 이미 <전단계>이기에!
지금은 그 때를 훨씬 넘어 <최종 단계>다!
언제까지 제자리 걸음만 되풀이하려는가!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하나님의 영원하신 계명 곧 가장 이상향적 삶을 약속하여 지향하는 생명의 법칙 다시 말해 더 다시는 자아중심이 아닌 상대방 중심의 사랑으로 "하나"됨 즉 <나는 너를 위하고 너는 나를 위함>ㅡ요 10:30/고전 6:17/고전 7:4)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다(주님과 내가 명실공히 하나, 한 영됨으로써).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하나님의 영원한 생명의 법칙)의 일점 일획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룰 것이다"(마 5:16-18).
이런 가장 구체적이고 현실적이고(실현 가능한) 이상적인 삶의 방법은 지금까지 그 어느 세상 철학도 종교도 가르쳐본 역사가 없으니 이유인즉 "3위1체"의 오묘한 이치가 지금까지 밝혀지지 않았기 때문. "머리"로서의 창조주 하나님 아래 모두가 그 "몸"의 "한 몸"("만일 한 지체가 고통을 받으면 모든 지체도 함께 고통을 받고 한 지체가 영광을 얻으면 모든 지체도 함께 즐거워함이니"ㅡ고전 12:26) 역할을 하게 되면 각자 <내가 나 자신을 위하지 않는 대신 사람마다가 다 나를 위해 주는> 구조/체제인지라 모든 사람이 마치 나 자신처럼 되어 나를 위해 주므로 이보다 더 이상적 삶은 없는 것.
창조주 하나님의 절대 불가결성은 여기서도 훌륭히, 완벽히 입증되는 것이다. 바꾸어 말하면 이렇게 만인간울 품어 주는(3위1체의 생명의 법칙의 근원이 되심으로써) 하나님이 없이는 이상향적 삶이 도무지 이루어질 수가 없기 때문. 이같은 이치로 하나님을 사랑하여 섬김으로써만 각자 자기 모든 이웃을 예외 없이 사랑하여 섬길 수 있기에. 바로 이런 이치를 바벨론 신학은 말하지 않은 것이다. 처음부터 거짓말로만 일관했기에. "구원"과 "사랑", "영생"은 말만 했을 뿐 이런 "하나"됨은 설명하지 않은 것이다. "선을 행함"(롬 2:7)은 일절 배제했기에.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들로 너희 착한 행실(생명의 법칙을 사랑하여 나타내는ㅡ사랑의 하나님을 현실적으로 입증하는)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ㅡ이렇게 명령하셨으니 이것은 "하나님의 뜻"임이 명백하고 "나더러 주님, 주님,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갈 것"이라 못을 박으셨는데 대관절 무슨 재주로 천국에 가려는가?
"하나님의 구원의 복음을 믿음"="영생",
"믿음으로 의롭게 됨"= "영광과 존귀와 평강" 등의 말은 일언반구도 없는 것이다.
왜 그러냐, 그것은 이미 <전단계>이기에!
지금은 그 때를 훨씬 넘어 <최종 단계>다!
언제까지 제자리 걸음만 되풀이하려는가!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하나님의 영원하신 계명 곧 가장 이상향적 삶을 약속하여 지향하는 생명의 법칙 다시 말해 더 다시는 자아중심이 아닌 상대방 중심의 사랑으로 "하나"됨 즉 <나는 너를 위하고 너는 나를 위함>ㅡ요 10:30/고전 6:17/고전 7:4)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다(주님과 내가 명실공히 하나, 한 영됨으로써).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하나님의 영원한 생명의 법칙)의 일점 일획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룰 것이다"(마 5:16-18).
이런 가장 구체적이고 현실적이고(실현 가능한) 이상적인 삶의 방법은 지금까지 그 어느 세상 철학도 종교도 가르쳐본 역사가 없으니 이유인즉 "3위1체"의 오묘한 이치가 지금까지 밝혀지지 않았기 때문. "머리"로서의 창조주 하나님 아래 모두가 그 "몸"의 "한 몸"("만일 한 지체가 고통을 받으면 모든 지체도 함께 고통을 받고 한 지체가 영광을 얻으면 모든 지체도 함께 즐거워함이니"ㅡ고전 12:26) 역할을 하게 되면 각자 <내가 나 자신을 위하지 않는 대신 사람마다가 다 나를 위해 주는> 구조/체제인지라 모든 사람이 마치 나 자신처럼 되어 나를 위해 주므로 이보다 더 이상적 삶은 없는 것.
창조주 하나님의 절대 불가결성은 여기서도 훌륭히, 완벽히 입증되는 것이다. 바꾸어 말하면 이렇게 만인간울 품어 주는(3위1체의 생명의 법칙의 근원이 되심으로써) 하나님이 없이는 이상향적 삶이 도무지 이루어질 수가 없기 때문. 이같은 이치로 하나님을 사랑하여 섬김으로써만 각자 자기 모든 이웃을 예외 없이 사랑하여 섬길 수 있기에. 바로 이런 이치를 바벨론 신학은 말하지 않은 것이다. 처음부터 거짓말로만 일관했기에. "구원"과 "사랑", "영생"은 말만 했을 뿐 이런 "하나"됨은 설명하지 않은 것이다. "선을 행함"(롬 2:7)은 일절 배제했기에.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들로 너희 착한 행실(생명의 법칙을 사랑하여 나타내는ㅡ사랑의 하나님을 현실적으로 입증하는)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ㅡ이렇게 명령하셨으니 이것은 "하나님의 뜻"임이 명백하고 "나더러 주님, 주님,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갈 것"이라 못을 박으셨는데 대관절 무슨 재주로 천국에 가려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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