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2월 18일 목요일

이 시점 화급한 자아진단




성경 해석 그 중에서도 메시야 예수 우리 주님의 우리 위하신 죽으심에서 문제의 본질이 어디 있느냐 하면 "성령" 관련 몰이해에 있습니다. 다시 말해 성령께서 누구이신지를 정확히 모른다는 중대한 결함에 있습니다. 말을 바꾸면, "3위1체"에 대한 무지/無知 자체에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성부, 성자, 성령"(마 28:19)이신(또는, "~으로 계신") 줄은 알지만 그 표현이 정확히 어떤 의미인지 지금까지는 몰랐기에, "한 분 하나님이시나 어떤 때는 성부로, 어떤 경우에는 성자 혹은 성령으로 자신을 나타내신다"는 말까지 했었습니다. 하나님은 성부와 성자로서의 모자/母子(하나님은 성별이 없으시기에 대표적인 남성으로 통일시켜 "부자"라 해야 하지만 부드러운 어감/語感을 위해) 관계이시나, 두 분이 "하나"(요 10.30)로 계심이 "성령"이신 사실을 몰랐기에 빚어지는 혼돈이었던 것입니다.

오늘에서야 밝혀진 것이지만, 이 "하나"라 함은 3위1체의 "제3위"를 뜻합니다. 즉 성질로서의 상반/相反을 이룬 짝은 반드시 "하나"로서 상보/존재하고 활동함을 의미합니다. 여기가 만유 이치의 핵심입니다. 다시 말하면 성부와 성자의 "하나"되심이 "성령"이신 것입니다. 이같이 "하나"이시기에 성령을 "성부"시라 해도 맞고 "성자"로 보아도 틀리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다" (요 14.9) 하셨고, 성령께서 우리 각자에게 임하여 오심을 "<우리>가 그에게 와서 거처를 그와 함께 할 것"(14.23)이라 하신 것이며, "하나"이시니까 복수가 아닌 3인칭단수로 표현되시어 "<그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그를 받지 못함이니 이는 그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그를 앎이니 그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17) 하신 것입니다.

성령을 "보혜사/保惠師(Comforter)"시라고도 하셨는데,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시어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실 것"(:16),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실 것"(:26)이라 하셨습니다. 성령은 또한 주님 자신을 가리키심이기도 하기에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 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18)고 제자들에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또한 "세상은 능히 그를 받지 못하니 이는 그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나 너희는 그를 앎이니 그가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17)이라 하시어, 다름아닌 당시 제자들이 항상 뵙고 함께 거처하시던 주님 친히(우리 위한 죽으심 및 부활하심 후에) 그 제자들 각인에게 임하여 오실 것인 바 이 곧 성령이심을 명백히 하셨습니다.

이 모든 것의 결론이 무엇이냐 하면, 나의 구원과 관련된 일체의 사실 즉 나 위하신 주님의 죽으심과 부활이 구체화하고 현실화함이 단지 이론만으로써가 아닌 실제 주님 친히 성령으로 내 안에 임하시어(내가 주님을 실제 내 안에 성령으로 모심으로써) 나와 "하나"(10.30)를 이루시어 "한 영"(고전 6.17)이 되심으로써만 비로소 달성됨에 있다는 이 핵심 사실에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문자 그대로 주님의 죽으심이 내 죽음이 되고 그 부활하심이 나의 실제 부활이 되는 것입니다. 즉 주님의 모든 것이 나의 소유가 됨으로써 나의 <구원 받음>이 성립되고, 동시에 상대성의 동시성(일방적인 것은 없어ㅡ은혜의 새 창조이기는 하지만 사랑 즉 "하나"됨에 의한 창조이니까 상호 작용)이므로, 나의 모든 것 즉 나의 언행심사 일체 그리고 내 몸과 영 및 나의 삶 자체가 주님께 바쳐져 주님의 소유가 됨입니다. 나를 "피로 사심"(행 20.28/
고전 7.23)입니다. 이것이 아주 중요한 핵심입니다.

이는 육체로 "한 몸"(창 2.24/마 19.5)이 됨에서 아내의 육체가 남편의 것, 남편의 육체가 아내의 소유가 되는 맞바꿈과 똑같은 것입니다(고전 7.4). 그래서 "우리가 생각컨대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개역한글/개역개정의 잘못된 번역이니 "위하여"로 고쳐야) 죽었은즉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라 그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위하여) 죽으심은 산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자기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자기를 대신하여(위하여) 죽었다가 다시 사신 이를 위해 살게 하려 함이라"(고후 5.14,15) 한 것입니다.

내 삶 자체가 주님의 소유라 더 이상 나를 위한 것이 아니기에 당연히 그러합니다.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다. 우리가 살아도 주님을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님을 위하여 죽음이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님의 것이다. <이를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죽었다가 다시 살으셨으니> 곧 죽은 자와 산 자의 주(인, 소유주, 임자)가 되려 하심"(롬 14.7-9)이라고 한 그대로입니다.

그런즉 이제는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명백한 그리고 엄중한 사실이 있으니, 그것은 무릇 "나는 구원 받았노라" 하는 이라면 모름지기 자기를 부인해야 하는데 다시 말해 주님만을 위하는 일상생활이어야 함에도 그렇지 않고 여전히 이전처럼 자아중심일 때는 예외없이 자기를 속임이요 의식적이지는 않지만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구원된 알도 없거니와 성령 받아 모신 역사도 없다는 최종 결론입니다.

여기서 유일한 해결책은 즉각적 회개입니다. 이모저모 자기를 합리화하려 하지 말고 자아중심 즉 주님 위해 살지 않았음을 뉘우쳐 차후로는 어떤 경우에도 여하한 일이 있어도 하나님 중심, 상대방 중심의 순종으로 나아가리라는 무조건적 결단입니다. 이것만이 이 순간 가장 안전한 방안입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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