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2월 29일 월요일

단순하게 생각하고 쉽게 설명하도록 되어야

 



여기서 가장 의의가 깊고 따라서 가장 큰 주목을 받아 마땅한 것은 삶과 생명의 법칙이 이에서 파생한다는 점입니다. 이는 당연 귀결로서 놀라운 일은 아닙니다. 문제는 상식적이어야 할 이 일이 너무나 오랫동안 감추어져("무시되었다"고 해야 오히려 옳은 표현일 듯) 왔다는 사실입니다.

이 생명의 법칙(다른 말로는 "사랑의 법칙" 또는 "하나"됨의 법칙ㅡ여기서 "하나"는 요 10.30에서 주님께서 말씀하신 "하나")을 어김이 죄("범법/犯法, 불법"ㅡ요일 3.4)요 따라서 아담의 자아중심이 그것이고, 악마 사탄의 범죄가 그러하고, 주님의 우리 위한 희생 제물되심도 이에서 비롯되는(상대방중심으로서의 "의"ㅡ"너희가 그의 의로우신 줄을 알면 의를 행하는 자마다 그에게서 난 줄을 알 것", "의를 행하는 자는 그의 의로우심과 같이 의롭고"(요일 2.29/3.7) 것인만큼 성경의 핵심 부분이기도 합니다.

이제까지 역설해 온 대로, 죄와 악은 <자아중심>이요 그 반대인 의와 선을 행함은 <상대방중심>입니다. 이와 같이 나를 위하지 않고 일관되게 남을 위하는 것이 "거룩함"입니다. 구원 받은 사람 즉 주님과 "합하여 한 영"(고전 6.17)이 되어 있으면 예외없이 그러하니, "우리 중 누구든 자기 위해 사는 자가 없고 자기 위해 죽는 자도 없다. 살아도 주님 위해 살고 죽어도 주님 위해 죽으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님의 것(소유)이라 <이를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죽었다가 다시 살으셨으니 곧 죽은 자와 산 자의 주(인, 임자, 소유주)가 되려 하심"(롬 14.7-9)이라 한 그대로입니다.

그러므로 구원된 모두를 가리켜 성경"은 성인("saint")"이라 하는 것입니다. 우리말 번역은 "성도/聖徒"라 되어 있는데 제대로 된 번역이라면 "성자들",  "성인들"이라 해야 마땅합니다. 마치 단지 <명칭>만으로서의 "성인"인 양 아주 그릇된 인식을 심어 놓은 것이 국내외를 막론하고 지금까지 "기독교"의 실태였던 것입니다.

바울 사도도 그런 고로 "참고 선을 행함이 영생"(롬 2.7)이라 한 것인데, 이럼에도 불구하고 "율법의 행위로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다"(갈 2.16)는 말을 엉뚱한 데에다 갖다 붙여(마귀의 농단인 바벨론 신학), 믿은 다음의 핵심인 순종의 행위마저 무조건 부인하여 배척해버리는 만행을 자행함으로써 절대 다수를 지금까지 멸망으로 유인해 들인 것.

이런 "바벨론"으로부터 화급히 틸출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내 백성아, 거기서 나와 그 죄에 참여하지 말고 그 받을 재앙들을 받지 말라"ㅡ계 18.4)만이 오게 되어 있습니다. 그 심판 전의 경고이신 것입니다. 만유는 상반/相反(대칭/對稱)입니다. 이것 아니면 반드시 저것일 뿐이니 그 선택은 각자의 자유 의지로써 좌우됨인즉 이 경고를 절대로 가볍게 받아들여서는 안됩니다.

또한 상반이니까 반드시 인과/因果 관계라 창조된 세계요 창조주 하나님이 관할하시는 세계임이 명백함을 이해함은 상식 수준입니다. 자기 의지로써 각자의 선택에 따른 정당한 응보/應報가 따르게 마련입니다. 하나님이 정하신 법칙대로 살아야지 자기 마음대로 사는 것이 아님을 3위1체는 가르칩니다. 그 가리키는 방향은 모든 사람에게 덕이 되어 이득이 되는 <상대방중심>입니다.

이 상대방중심이야말로 이상향적 삶을 꿈 꾸는 모든 이지적 삶의 방법인 것입니다. 짝을 이룬 둘의 "하나"됨입니다. 곧 3위1체에서의 '제3위"의 의미로서 모든 아름다움의 본질입니다. 대칭미/對稱美는 성경 고전 7.4의 "한 몸"(창 2.24) 기능/機能이 그 대표적 설명입니다. 즉 아내의 몸은 남편의 것이요 남자의 육체는 여자의 소유.

갑과 을 둘이 "하나"로서 "짝"을 이루면 갑은 을을 위하고 을은 갑을 위합니다. 이것이 상대방중심인 고로 쌍방 어느 쪽도 자아중심일 수 없습니다. 상대가 자기를 위해 주는 상호간의 관계이니까. 이것이 하나님 정해 주신 삶과 생명의 법칙 즉 사람이든 영물/靈物이든 두루 통하는 <사는 법>인 것입니다.

아무리 "구원 받음을 확신한다" 해도, "나무는 그 열매로 안다" 하신 대로 여전히 이기주의적 욕심대로 하여 자아중심이면 이율배반이라 자기를 속이는 것밖에  없습니다. 오늘날 "천사의 복음"(계 14.6)이 이를 지적합니다. 고로 21세기 복음 전파는 <여기서부터 시작>함이 마땅하니 무턱대고 "믿음으로 영생 구원"이 아닌 것입니다.

자아중심의 길로 잘못 들어 동물성 육체가 되어버린 아담 범죄이므로, 이러한 "죄의 몸"(롬 6.6)으로부터의 해방이 영생/구원앤즉, 주님의 죽으심과 부활과 하나, 한 영이 된 증거는 상대방중심의 마땅한 삶이라는 것을 함께 알려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는 사이비요, 속이는 자 사탄적일 수밖에 없고, 여전히 바벨론의 <죄와 재앙>의 대상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자아중심>의 살인마적 죄악과 <상대방중심>이라는 원래부터의 사람 사는 법 즉 상식 차원의 기초 지식부터 전파해야 마땅합니다. '상대방중심'은 최소한의 기본 도덕율인 것입니다. 소위 율법폐기론(Anitinomianism)이든 율법주의(Legalism)든 백해무익의 부질없는 말장난으로 사탄의 주구 노릇일 뿐입니다.

"혼잡하게"(고후 2.17/4.2) 말을 만들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신약 시대에서 왜 "구약에 나오는 도덕법, 십계명"을 들먹이며, "칭의만으로 구원을 얻는다", "죄가 거의 언급되지 않고 하나님 앞에 죄를 짓는다는 표현이 잘 사용되지 않는다" 등 해괴한 말이 왜 나돌아야 하느냐입니다. "돌이켜 어린 아이와 같이 되지 않으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고"(마 18.3),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 아이와 같이 받들지 않는 자는 결단코 들어가지 못할 것"(막 10.15)입니다.

초대교회에서 3위1체 관련해 지식이 없었던 것도 아니고 혼란 중에 헤맨 것도 아닙니다. 성자 하나님께서 성부 하나님의 독생자이심을 아는 것으로 충분했고, "사람의 사정을 사람의 속에 있는 영 외에는 누가 알리요, 이와 같이 하나님의 사정도 하나님의 영 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한다"(고전 2.11) 했으니, <'사람' 따로 '사람 속에 있는 영' 따로>로써 <'하나님' 따로 '하나님의 영' 따로>를 설명했은즉 그렇게만 알면 충분했던 것입니다. 오늘날처럼, "성부"와 "성자"의 구분도 없이 무턱대고 "한 분 하나님"이시라는 미신과 망념에는 사로잡히지 않은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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