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2월 11일 목요일

하나님을 최고 으뜸의 낙을 삼아 "항상 기뻐함"(살전 5:16)이 나의 힘/운동력(느헤미야 8:10)

하나님을 최고 으뜸의 낙을 삼아 "항상 기뻐함"(살전 5:16)이 나의 힘/운동력(느헤미야 8:10). "아버지 품속"(요 1:18)의 의미.


"나를 보내신 이가 나와 함께 하신다. 내가 항상 그의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므로 나를 혼자 두지 아니하신다"(요 8:29). 하나님을 가까이 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 하시리라:(약 4:8). 상대성의 동시성입니다. 하나된 둘은 함께 동시에 움직임이 그 하나됨의 특징입니다. 지금까지는 하나님의 일방적인 사랑의 은혜인 줄로만 착각하다시피 했습니다. 따라서 우리도 거저 은혜로 선물로서 믿으면 되는 구원으로만 생각하여 자기중심적으로 이기주의에 흘러 우리 구원을 우리 자신 스스로가 망칠 뻔한 것입니다.


물의 성질 그리고 그 생명은 흐름에 있어 흘러 보내지 않으면 고여 썩게 마련임을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것입니다. 물은 모름지기 흘러가는 데가 있어 그리로 방향을 정하듯이 그래서 위로부터 아래로 흐르듯 
나 쪽으로가 아니라 항상 나 밖의 상대방 쪽을 택하여 일향/一向 일진/一進해 나가는 것입니다. 사람의 생명도 항상 상대방중심입니다. 이를 생명의 법칙이라 합니다. 엄밀히 말하면 3위1체 법칙에서의 "3위"적 작용 즉 "하나"됨(사랑이라고도 하는 것)입니다.

사랑도 이제까지 그저 막연히 사랑은 사랑일 뿐이라고만 인식해 왔지만, 이와 같이 엄밀히 법칙임이 명확히 드러나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창조는 어느 것 하나 빈 틈이 없고 아리송한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원리원칙대로 하시니까 우리도 100% 하나님을 신뢰하게 되는 것입니다. 법 앞에서 만인 균등입니다. 여기 진정한 자유가 깃듭니다.

물론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하나님께서)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요일 4:19)입니다. 주종 관계이니까. 본을 보이시기 때문입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니 아들이 아버지의 하시는 일을 보지 않고는 아무것도 스스로 할 수 없으니 아버지께서 행하시는 그것을 아들도 그와 같이 행하는 것이다. 아버지께서 아들을 사랑하시어 자기의 행하시는 것을 다 아들에게 보이심이니"(요 5:19) 하심과 같습니다.

노동을 해도 자기를 위함이 아니라 상대(남)를 위함입니다. 모두가 다 그러하니까, "우리"를 위함입니다. 공산주의(인류의 오랜 염원/숙원으로 인식되어)가 이상은 거창하게 보였지만 실패한 것이 이같은 공동체 의식 결여에서 온 것입니다. 3위1체에서의 핵심되는 부분으로서의 "하나"(요 10:30)됨에 대한 무식무지 때문입니다. "한 몸"의 원리에서 보듯이 갑은 을의 것, 을은 또 갑의 것이 되는 이치를 간과함입니다.

이것이 짝을 이룬 둘의 "제3위"로서의 관계 형성입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갑 안에 을이 있으면 을 안에 갑이 또 있어 갑의 것은 을의 소유이고 을의 소유는 갑의 것입니다. 이를 주님께서는 처음부터 설명을 해 오신 것입니다. "나는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는 내 안에 계신 것을 네가 믿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는 말이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 그의 일을 하시는 것"(14:10)이라 하셨고, 또한 "저의 것은 다 아버지의 것이요 아버지의 것은 저의 것"(17:10)이라 하심이 모두 이 대원리를 말씀하심입니다.

나만 구원 받으면 끝난다는 자아중심에서 이제는 탈피해야 합니다. 애당초 그것이 하나님의 뜻일 수가 없는 것입니다. 한 하나님 창조주 아래에서의 진정한 삶의 의미를 깨달아야 하는 것입니다. 참으로 산다는 것은,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머리로 모셔, 만민이 그 몸의 지체로서 평등하게 소중한 한 부분씩 이루어 있음을 말함이니까.

여기서 만인 구원설을 피력하는 것이 아닙니다. 창조주 하나님을 아는 것 자체가 생명이기 때문이요 그 뜻을 따르지 못함으로 현재의 비극이 빚어졌은즉 본시 형태로 돌아가자는 호소인 것입니다. 자아중심을 버리고 너나 없이 상대방중심인 생명의 법칙에 순응하자는 아주 단순한, 누구나 이해하기에 어려울 것이 없는 구체적 방법론이기 때문입니다. 창조주 하나님께서 사람되어 오셔서 확립해 주신 영원 불변의 것으로서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다"(요 14:6) 하신 그대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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