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2월 13일 금요일

빛을 찾아 동방으로 말달려 왔던 한반도인들ㅡ이제는 천사의 복음의 빛을 들고 다시 말머리 돌려 서방으로 세계로

무굴(몽골과 비슷한 소리·이름이라 하여 그렇게 불렀다는 나라 국호) 제국의 영걸 악바르 대제(1542-1605)는 기독교를 단순한 호기심 차원을 넘어 철학적·신학적 탐구의 대상으로 매우 깊이 있게 대한 특이 인물(악바르는 친가 쪽으로나 외가 쪽으로나 징기스칸의 후예). 예수회 신부들을 3차례나 자신의 궁정으로 초청, 토론을 벌였으며 성경을 페르시아어로 번역하게 하거나 그리스도 생애 관련 책을 집필하게 명령하기도 했을 정도. 악바르의 열정적이고 이성적인 날카로운 질문에 신부들이 무척 당혹했었다고 한다. 그 자신들도 모르는 내용이니까 그럴 수밖에. 이 몰랐던 진실·진리가 20세기 이후 현재 21세기 한극교회(한극인들)를 통해 세계 만방에 비로소 알려지는 것이다.


"모르기"는 오늘날도 마찬가지. 이 게재물로 독자들의 주의를 다시 환기시키는 이유다. 악바르가 신부들에게 던진 질문을 요약하면 아래와 같은데 이를 소개하는 것은 오늘날 사람들도 여전히 품는 같은 "의문점"들이기 때문.

"그리스도가 이미 세상을 구원했다면 왜 다시 와야 하나?",
• "전지전능한 신이 왜 한 번에 모든 것을 해결하지 못하고 고난을 겪어야 했나?
"왜 신의 아들이 십자가에서 스스로 내려와 적들을 굴복시키지 못하고 무력하게 죽음을 맞아야 했나?"
• "어떻게 하나님이 하나이면서 동시에 셋일 수 있나? 성부, 성자, 성령'이라는 삼위일체 개념을 이성적으로 납득 못하면 기독교를 받아들일 수 없다"라고 했다. 일신교인 기독교가 세 인격(성부, 성자, 성령)을 말하는 것이 다신교적 요소로 흐를 위험이 있다고도 보았다. "모순되다"는 뜻.
• 악바르가 가장 당혹스러워 했던 점은 "신에게 아들이 있다"는 것(성육신). 그는 신이 인간처럼 자손을 낳는다는 개념을 매우 세속적이고 따라서 신령하지 못한 것으로 보았다. 신이 인간의 태에서 태어난다는 것이 신의 거룩함에 과연 적합한가?" 신의 초월성을 강조하는 그로서는 도무지 납득되지 않았다.
• 그는 "전능한 신이 왜 굳이 인간의 몸을 빌려 고통을 겪어야 (십자가) 하는가?". 삼위일체의 제2위격 예수가 십자가에서 죽었다는 사실은 악바르의 통치자적 관념에서 이해 불가였다. "온 우주 통치자인 신이 어떻게 피조물인 인간에게 붙잡혀 처형당할 수 있나?" 신은 승리자이자 절대적인 권력자여야 했기에, 고난받는 신의 모습은 악바르가 생각하는 '신성'의 정의와 정면 배치되었던 것이다.

신부들의 답변은 이성적이지 않고 덮어놓고 '전통적 권위'만 앞세우는 것이었다. 신부들이 "이것은 신비이며 믿음의 범주"라고 답할 때마다, 악바르는 합리적인 설명을 요구하며 종교는 인간의 이성으로 마땅히 이해되어야 하므로 그런 대답은 논리적이 아니라고 반박·반발했다. 따라서 실망했던 것은 당연. 타 종교에 대해 매우 공격적이고 배타적인 신부들의 교조적 태도는 악바르에게 오히려 기독교에 대한 신뢰만 떨어뜨리는 요인이었다. 그 결과 신부들의 교리적 답변에 만족하지 못한 악바르는 기독교, 힌두교, 이슬람교, 조로아스터교 등 모든 종교의 장점을 합쳤다고 믿은 '디네 일라히'(신의 종교)라는 혼합 종교 즉 자신만의 사상을 정립하기에 이른다. 악바르가 기독교 교리 중 특히 거부감을 느꼈던 것이 "하나님이 셋으로 나뉜다는 개념의 삼위일체. 악바르 대제는 기독교의 도덕성이나 예수의 성품은 높게 평가했지만 기독교의 삼위일체를 "논리적으로 설명될 수 없는 모순된 교리"라고 단정지었던 것이다.

"3위1체"는 오늘 이 시간에도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영원한 숙제, 수수께끼인가? 아니다! 이에 대한 해답이 오늘날 "천사가 가진 복음"(계 14.6)의 등장 이유다. 그러면 이 비밀이 <2천년만에야> 겨우 밝혀졌눈가? 그것도 아니다! 이유는 이미 사도 바울이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지어다"(고후 13.13) 했기 때문. "3위1체"를 모르고는(의식 않고는) 이런 축도가 나올 턱이 없다. 직언하면 초대교회에 이미 알려져 있던 진실·진리가 사탄의 거짓말의 대세/大勢에 가려져버려 그 존립마저 불투명하게 되어버린 탓. 천사들이 왜 이를 방관하느냐? 그러나, 방치한 것이 아니다.

아담 범죄의 죄얼(범죄로 인한 재앙/징벌)인 관계로써다. 고로 반드시 받아야(당해야) 하는 것이 하나님의 엄연하신 뜻이기 때문이다. 바로 그것이 2천년간 지속되어 "바벨론 신학"의 발판이 되어 와 오늘까지의 혼란상을 빚은 것인데 이제 주님 재림 상황을 맞아 겨우 숨통이 틔어진 것으로, 미가엘의 천사 군단이 실력행사에 들어가 사탄의 세력과의 일대 접전 끝에 승리하면 어느 정도의 융통성을 주신다는 뜻으로 마침내 확정되었음이다. 과연 천사의 승리로 귀착되자(12.7-9) 그 쟁취한 전리품격이 바로 지금 말하는 "바벨론 신학" 척결이라는 결실. 따라서 천사가 한 판 싸움으로 이긴 대가·공로라 하여 "천사의 복음"이라 하는 것이다.

그런즉 초대교회 당시 알려진 모든 것이지만 "그리스도의 은혜로 너희를 부르신 이를 이같이 <신속히 떠나 다른 복음 따르는 것>을 내가 이상히 여긴다"(갈 1.6)고 바울이 놀라마지않은 것을 보아도 이 참혹한 실태를 넉넉히 알 수 있는 것. 3위1체도 이런 연유로 해서 빛을 보지 못하다가 드디어 "2천년만에"라고 해도 좋을 만큼 뒤늦게 3위1체의 화려 웅장한 정체가 드러나진 것이다. 다름아닌 하나님 친히 계시는 모습을 따라 이를 만유의 법칙으로 정하시고 이 기반을 통해 만물 만사를 운행·운영하신다는 사실! 자주 설명하는 도덕경(노자) 42장의"道生一 一生二 二生三 三生萬物 萬物負陰而抱陽 沖氣以爲和"에서의 "一生二"의 의미이다. 즉 하나님이 창조를 하시게 되는데 "그 첫 시작으로서 독생자 하나님을 만드심/낳으심으로써 짝을 이루셨다"인 것. 하나님 당신 자신을 소재/素材로 하여 만드시니 똑같은 하나님이시지 달리 다른 존재이실 수가 없다. 단지 구별은 '파생자'와 "피파생자'의 차이 즉 "짝"이시라는 것. 이런 심오한 진실이 이제서야 이 "천사의 복음"을 통해 밝혀진 것이다.

이제는 3위1체의 모든 진실을 알았으니 따라서 "성부, 성자, 성령의 이름"(마 28.19)이라는 의미를 상중하/上中下 ·식으로 인식해서는 큰 오류를 범함이 된다. 이유는, "누구든지 말로 인자(예수님 자신)를 거역하면 사하심을 얻되 누구든지 말로 성령을 거역하면 이 세상과 오는 세상에도 사하심을 얻지 못할 것"(마 12.32)이라 분명히 못박으셨듯이 "성령"께서 "성자"보다 우위이시기 때문. 이 경우 "인자"는 비록 현재도 하나님이심에는 불변이시나 사람되신 측면을 강조하셨다고 보아도 무방하지만 성령은 <성부와 하나되신> 성자를 가리키심이었기 때문이다. 비록 성령으로 계시나 육체를 지니심으로써 사람이신 예수님과, 성부 하나님과 처음부터 "하나"(요 10.30)로 계시는 성자 하나님과는 격이 전혀 다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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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마지막 때" 세계여, 주목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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