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2월 17일 화요일

참혹한 비극의 현장이 오늘날 우리 앞에 전개되고 있어


바울 사도가 "행함 곧 영생""(롬 2.7)이라 한 것은 이미 "믿음" 단계를 거친 다음의 언급이기 때문입니다. "믿음"으로 우리는 "산 자"가 되어 "죽은 자"(마 8.22)를 벗어났고 이제는 "산 자"로서의 "선을 행함"이 마땅하니, 이 선행이 없다면 필시 범죄 밖에 없는지라 범죄자는 죽음이 필연이기에. "구원 받음"의 핵심이 되는 이 부분을 오늘날 절대 다수가 외면 또는 무시하는 것은, 바벨론 신학의 거짓말로 인한 것이니 정작 알맹이는 빼고 껍데기만 남겨 놓은 사탄의 속임수인 까닭입니다.

모든 인생이 아담 범죄로 죽은 자이기 때문에 행함으로써 아닌 믿음으로써 구원됨입니다. 죽은 자가 무슨 선행을 할 수 있으며 할 수 있다 한들 무슨 의미가 있나요. 가장 시급한 것이 "산 자"됨이요 산 자가 됨은 새로 창조됨을 의미하기에, 하나님이 창조하셨으니 단지 이를 감사히 수용하는 것 즉 "믿으면" 되는 것이지 "행함"이 무슨 의미가 있나요. 그래서 "믿음"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지만 "산 자"가 되고부터는 행함이 단연 핵심이 되는 바 자유의지에 따른 양자 선택으로 나타남이니 아담이나 악령들처럼 자아중심이냐 아니면 거룩한 천사들처럼 상대방중심이냐 둘 중 하나로 영원 생명과 멸망으로 나눠지기 때문입니다. 완전히 상황이 바뀐 것입니다. 선행이 아니면 범죄라 생명 아니면 죽음이기에

"참고 선을 행함"="영생"
(롬 2.7)

이러한 명확한 등식을 말했던 것입니다. 사탄은 그러나 이 경우 그 거짓된 바벨론 신학으로 생명과 직결되어 있는 상대방중심의 "선행" 그 자체를 걷어 치우게 만들었으니 애닳다! 여전히, 여전히, 여전히 죽음이로구나! 멸망이로구나! 살려 주심을 받았음에도 여전히 무지몽매한 자아중심으로 일관하면서 "영생 얻었네", "구원 받았네"로 속아 넘어간 채 그래서 실속 없는 "영생 구원"의 헛된 꿈에 눈 먼 채로, 찬란한 미래의 희망을 한 가슴 가득 안고 영원세계의 문지방을 멋모르고 밟는 순간, 아아! 처절한 비명과 아우성 소리! 만물이 사시나무처럼 떠는 것인가 내 심령이 떠는 것인가!

이 위험을 알리는 책임은 나와 여러분 우리 인생들에게만 있는 것입니다. 천사에게 있지 않아요! 천사가 나서면 하나님 질서에서 부당한 개입으로 간주됩니다. 그들은 몹시 초조한 채 발만 동동 구를 따름입니다.

결코 어렵지도 않은 너무나 선명하게 드러나는 이 간단명료한 복음의 이치임에도 왜 오늘날까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전전긍긍 헤매는가 말입니다! 초등생 어린 아이도 능히 이해 가능한 것을 두고 왜 "은혜로냐, 행함으로냐" 하고 부질없이 입씨름 하며 시간 낭비만 하고 앉았느냐 말입니다. 오로지 이유는 사탄의 바벨론 신학 그 거짓과 속임수 때문에 벌어지는 난장판인 것입니다. 인생들은 무자비하게 마구잡이로 휩쓸리기만 한 처참함 그 자체였습니다.

<모든 실상을 아시는 유일무이의 사람> 주님께서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리신"(히 5.7) 이유이고 그렇기에 오늘날도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는"(롬 8.26) 것입니다. 이제 진실과 진리를 알았으니 이 사탄의 거짓말을 세계 만방에 알립시다! 사탄의 무지막지한 엄청난 거짓말에 가려 그 모습을 나타낼 수 없었던 구원의 복음 진리가 "천사가 가진 복음"(계 14.6)으로 만천하에 드러났으니 지체 말고 전달합시다. 더 이상 속지 말라고! 정신 차리라고! 더 이상 마귀에게 머릿끄댕이 잡혀 맥없이 끌려가는 꼴을 당하지 말라고!

"처녀 내 백성의 파멸을 인하여 내 눈에 눈물이 시내처럼 흐르는구나! 내 눈의 흐르는 눈물이 그치지 않고 쉬지 아니함이여!
여호와께서 하늘에서 살피시고 돌아보시기를 기다리옵니다"(애가 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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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구원 받음"을 다시 정리하면

  ●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그 행한 대로 보응하시되 참고 선을 행하여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아니함을 구하는 자에게는 영생으로 하시고"(롬 2.6,7). "하나님 앞에서는 율법을 듣는 자가 의인이 아니요 오직 율법을 행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