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이 괴이하게 여긴 것은 사도들이 아직 살아 있는데도
사도들이 직접 가르친 복음에서 "속히 떠나"(갈 1:6)
(마치 산 사람 코 베어 간다고 말할 수 있듯이)
"다른 복음"(고후 11:4)을 따르고 "다른 예수", "다른 영"에 홀려
있다는 사실이었다. 한여름 음식이 쉬이 쉬어빠지는 것과 같이.
하물며 사도들도 없고 세월도 흐르고 악령들만 기승을 부리는
지금 이 때이겠는가. 당연한 사실로 받아들여야지 이런 현상을 두고
놀라고 어이없어 하는 것 자체가 우리가 얼마나 성경을 무시하고
그동안 인위적인 것에만 치중해 인사불성이었는지 충분히 짐작간다.
노아가 생존하고 있는데도 하나님의 대홍수 경고를 무시하여
하나님을 두려워 않고 마귀들의 각종 유혹에 빠져들어간 것을
소위 신학자들은 이상하게 생각하나 이상히 여길 것 하나도 없다.
바울이 오래 전에 이미 "이상히 여긴" 사실을 성경을 잘 보지 않으므로
마음에 담아 둘 여유가 도부지 생기지 않는 것이다.
성경이 "배도"(살후 2:3)라고 선언할 정도로 극도의 혼란과 혼돈이다.
모든 것이 엉망진창이 되어 있다. 하나님 친히 내버려두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상대적으로 움직이신다. 일방적으로 되는 일은 없다.
인과, 선후, 주종 등의 짝의 원리를 따라
철저히 운행되어 나가는 우주이니 하나님 친히 그렇게 하시기 때문.
로마서에,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내어버려 두시어"(1:24)
"이를 인하여 하나님께서...내어버려 두셨으니"(:26)
"저들이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므로
하나님께서 저들을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어버려 두시어"(:28).
인과응보, 자업자득이다. 소름끼칠 일이 아닌가.
그러나 이 "마지막 때"에 이르러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무한 자비, 무한 사랑"으로 색色칠한 것은 마귀의 농간이다.
성경은 위에서 보듯이 절대로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
소멸하시는 맹렬한 불이시다(히 12:29).
이렇게 말하는 히브리서를 마귀의 농락에 놀아난 신학자들은
한 때 성경에서 빼어버리려는 시도를 했었다. 기가 찰 일이지.
짝의 원리의 <양면성의 동시성>을 모르기 때문이다.
무엇이든 <일방적인> 것으로만 마귀가 세뇌시켜 놓은 것이다.
바울이 명명백백하게 "엄위"와 "인자"(롬 11:22)로
정확히 묘사하고 있음에도. 무조건, 성경을 경시한 탓이다.
오늘날 더욱 어이 없는 것은, "성령의 음성"으로 인도되므로
성경의 인도는 필요 없다는 식이다.
전자는 직접이고 후자는 간접이라는 망령된 판단에서인가?
마귀가 성령으로 가장하여 짓거리를 해도 그대로 넘어간다.
분별할 능력이 도무지 없는 까닭이다. 성경을 무시한 결과다.
때를 분별하라.
적그리스도 시대라는 것은
마귀가 하나님, 성령으로 가장하는 시대라는 뜻을 포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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