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왜 있느냐, 왜 존속하느냐
이 간단한 질문에 역시 간단한 답변을 하셨다.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거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될 것이니
그 때 끝이 올 것이다("and then shall the end come").
마귀의 농간으로 엉뚱한 내용으로 지금까지 전파되었으나
(그러나 "돌이켜 어린 아이 같이 된" 이들은 구원 얻음에 지장이 없었으나)
이제는 다니엘이 지적한 "마지막 때"로서의 20세기가 되었으므로
하나님 친히 나서신 것이다. 곧 "천사가 가진 복음"(계 14:6)이다.
그러므로 세상은 오직, 오로지 복음 전파만 위한 임시 방편이다.
사람들이 성령으로 다시 출생하고 새로 창조되도록 하기 위함이지
그 외는 아무런 이유(하루라도 더 존속할)가 없다.
이 세상 살라고? 이 썩는 육쳬 가지고 살아 무엇하게?
금수보다 더 못하게 서로 잡아먹으려 으르렁거리는 판에
약육강식, 적자생존의 꼴불견의 시범장으로 사용되게 하시려고?
아담 범죄로 망가진 인생들 원상태로 복구, 환원시키는
이 목적으로 세상이 당분간 지탱되다보니(그 지탱이 지금까지 6천년)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등 시끌벅적해 온 것뿐. 곧 사탄의 세계다.
이런 소위 "문명, 문화"가 성경의 하나님을 찬양한 적이 있었던가?
외려 종교라는 한 분야로 구석진 곳에다 밀어부쳐
찬밥 신세로 따돌려버리지 않았던가. 관점의 기준에 달렸다.
미술, 음악의 주제라 해도 성경적이 아닌 "성모 마리아" 등 막연한 하나님일 뿐이다.
그런 하나님으로 이제 적그리스도가 분장하여 한바탕 속이려는 것이 아닌가.
사탄이 임금 노릇하고 쥐었다 폈다 하고 죽음의 권세를 쥐고온갖 거짓된 패악을 다 부리고 있으니 사탄의 나라가 아니면 무엇인가.
인생들은 거기 막무가내로 휩쓸려 이나마 살려고 아우성이었고.
(사탄이 아담 대신이라는 뜻이지 하나님 대행은 물론 아니다). _
아무리 네피림의 세상이라 한들 그들에게도 의미는 마찬가지.
내일도 기약 못하는 한 세상 살고 또 살아본들(환생, 윤회 따위)
그것이 영원하고 영원하고 영원히만 이어지는 오는 세상에 비해
망망대해에 떨어지는 빗방울 하나에도 미치지 못하는데ㅡ.
모든 범죄행위는 자기를 저주하는, 자기가 자기를 저주함이다.
혹자의 죄는 그 저주가 당장 드러나 심판이 되고
그렇지 않으면 나중에 이루어지는 것이 대부분이라(딤전 5:24)
죄에 대한 두려움이 별로라 죄짓기에 담대하다(전 8:11).
악한 자를 걸러내시는 한 가지 수단방법이시다.
죄마다 즉각즉각 처단되면 어느 인간이 죄지을 마음을 품으리요.
즉각 그 반응이 나타난 예가 아담의 죽음인 것이다.
아담 스스로가 자기를 그와 같이 저주한 결과가 되니
아담은 모든 피조물의 제왕 격이라 그 아래 복속된 일체가
저주 일색이 아니될 수가 없다. 그래서 땅을 저주하신 것이다(창 3:17).
고로 인간이 자연계 육체가 됨을 인한 저주로
이 인간 세상은 저주 일색이니 이 저주 받은 세상 사랑하는 자 화가 있다.
하나님의 저주를 축복처럼 여기는 그런 어깃장놓는데 가만 두시랴.
이 실상을 가리켜 선지자는 "하나님은 매일 분노하신다"(시 7:11) 했다.
구약에서 "축복 운운"한 것은 곧 오실 메시야 임마누엘로 인한
아담 범죄의 저주가 "마지막 아담"의 은혜로 회복되는 그 축복을
사전(事前) 교육 차원에서 말씀하신 것임을 누가 보아도 명백하거늘
아직도 구약의 축복의 환상 속에 자다가 봉창 두드리며
"하나님 축복, 축복" 하면서 많은 무리를 멸망으로 유인질하는
자들의 뒤를 따라가는 이들로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다.
그것도 소위 "성령"을 들먹이며 자행하는 짓거리들이다.
이러한 무리가 네피림을 포함해서 절대 다수를 이루기 때문에
이 분위기에 대책없이 빠져버려 흥청망청하는 미친(전 9:3) 세상에서
함께 춤추고 장단 맞추는 실상이기에 주님께서는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으로 들어가려 해도 못하는 자가 많다"(눅 13:24)는
엄중한 경고를 내리신 것인데도 이에 유념하는 자가 별로 없다.
이 모든 진실을 말해주고 경고하는 것은 성경밖에 없다.
온 세상이 마귀에게 장악되어 천지가 붉게 물들어 있는 판인데
어디서 이 세상과 감히 반대되는 것을 말하리요. 오직 하나님 말씀뿐이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심판이 즉시 오는 경우도 있다.
마귀가 들어 세상을 난장판으로 만드는 것도 사실이지만
하나님께서 세상을 주관하시는 사실을 감추신 것은 아니다.
역대 모든 비극적 전쟁과 기근, 질병 기타 모든 "저주"가
하나님의 심판 차원에서 시행되는 것을 염두에 두는 자 별로 없다.
신약은 사랑이 강조되는데 구약에서는 왜 그렇게 혹독하시느냐 하고
"성경을 안다"는 신학자들의 입에서까지 그런 잠꼬대가 나온다.
아담 범죄 이래 세상은 저주와 진노 아래(요 3:36) 놓여 있음을
너무나도 모른다. 몰라도 너무나 모른다.
"지금 웃는 자 화가 있다",
"지금 배부른 자 화가 있다",
"부유한 자는 이미 자기 위로를 다 받아버렸다".
공연히 이런 말씀을 하신 것이 아니다.
"마지막 아담"으로서 아담이 벌어들인 저주와 진노
그 무서운 끔찍한 현실을 직시할 것을 경고하신 것이다.
이 죽음을 모르고서는 생명의 "마지막 아담"께
절대로, 절대로 나아올 수가 없기 때문이다(요 6:44,45,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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