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5월 9일 토요일

영생의 본질은 사랑_나는 너이고 너는 나라는 것이 사랑만의 용어_나 위해 당신을 다 주신 결과가 나의 영생 구원_나도 주님께 나를 드림이 짝의 법칙에 합당












그래서 "믿는" 자는 구원이라 한 것이다.
이 말씀을 많은 사람이 잘못 해석하여 이거 웬 떡이냐 하고
막무가내로 달려들어 어중이떠중이로 저마다
나는구원 받았네 하여 많은 이단도 생겨났지만
만일에 자동적으로 기계적으로 사람마다 구원된다 해보라.
사랑하는 자든 사랑하지 않는 자든 악한 자든
모두가 구원되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러하다면 처음부터 우리 위한 십자가 죽으심이 필요 없다.
죄인이든 악한 자든 구원하시면 되는 일이니까.

믿는 자라 특정지어주어야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이란
색깔이 드러나게 되는 것이다(갈 5:6).
다시 말해 "나를" 사랑하여 자신을 다 바치신 주님(갈 2:20),
이렇게 명확히 정의(定義)해준 그대로이다가.
일대일 개인적 관계에서는 사랑이 아니면 안된다.
나는 그를 알고 그는 나를 알고 서로 아는 관계에서
모든 인간관계는 영속적으로 이어진다.
사랑은 자기를 주는 것. 성부 하나님께서는 자신과 같으신
독생자 하나님을 나 위해 내어주셨고
성자 하나님께서는 자기 자신을 내게 주셨다.
그래서 그 피로 나를 사들이셨고 자기 소유를 삼으셨으니
이는 내 스스로 나를 드림이 없이 강제로 하신 것이 아니다.
내가 나를 드리기 전에 자신을 내게 전부 주신 그 사랑에
흐느끼면서 나는 자신을 바쳐 드린 것이다.

내가 내 스스로 나를 주님께 드리고서는 왜 지금 와서
내 마음대로 무엇을 하려고 하는가. 사랑의 언약 위반이다.
그 사랑을 내가 믿기 때문에 나도 주님을 사랑하여
물로 뛰어들라 하시면 물로, 불이면 불로 순종함이다.
성자 하나님이신 예수님의 나 구원하신 은혜는
아버지 곧 성부 하나님께 절대 순종하신 열매이셨다.
모두가 사랑과 사랑의 아름다운 이야기인 것이다.
사랑 없이는 절대로 영생 구원을 논하지 말라.
사랑 없는 영생은 말 그대로 하늘의 별 따기이다.
생명의 법칙을 그래서 사랑의 법칙이라고도 한다.
남녀 관계도 머리인 아담과 그 몸된 여자와의
(여자가 아담에게서 났으니까ㅡ창 2:21)
관계에서, 그렇게 되도록 창조하신 데에서 시작되었다.
생명은 둘이 하나됨 즉 몸과 머리의 한 몸됨이므로
이러한 관계를 사랑이라고 하는 것이다.

아담에게 선악과 나무가 아담을 시험하는 것이었다면
이 세상이야말로 우리 각자(개개인이 아담처럼 창조된)에게
그 선악과 나무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즉 세상 사랑하지 않고 오직 주님만 사랑하는지 여부를
훌륭히 시험하는 이상적인 무대이다.
이 시험은 영원을 통해 이 단 한 번뿐이다.
여자는 말하자면 세상을 본 것이다.
먹음직하고, 보암직하고 지혜 있게 함직한 세상.
그래서 요한 사도는 똑같은 표현으로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이라고
세상을 한 마디로 정의하고 있음을 보라(요일 2:16).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