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5월 11일 월요일

인내, 필요한 것은 인내ㅡ성경은 이 인내를 많이 강조한다







머리를 닮아 그 몸된 교회인 우리가 십자가 지는 것은
우리의 구원을 위해서가 아니다.
이미 구원 받아 메시야 예수님과 연합하여 하나되어
한 몸으로서의 교회가 되어 있다는 증거다.
고로 주님의 "남은 고난"(골 1:24)인 것이다.
즉 주님 친히 그 고난(사람들 구원 위한)을 일부 떼어
교회에다 붙여주신 격이다. 당신의 몸이기에.
그래서 "주님 위한" 고난이라 하고 "은혜"라 한다(빌 1:29).


세례 요한도 위풍당당 메시야를 기대한 것이었다.
그래서 자기가 불의한 자들에게 옥살이하는 것을
위풍당당 메시야가 구출해주실 줄 알았으나 기대에서 벗어나자
노골적으로 질문했다, "메시야가 당신입니까, 아닙니까".
이에 주님은 무엇이라고 답하셨던가. 
"나로 인하여 실족(걸려 넘어짐)하지 않는 자가 복이 있다"(마 11:6).
오늘날도 똑같은 경고를 하신다. 아직도 다시 오시지 않았기 때문.  
그 때까지는 세상에서 "동네 북" 신세를 감수해야 하는 것이다.
고로 구원의 영원하신 복음 말씀이시건만 세상에 인기가 없다.
세상에서도 잘살고 잘되는 사이비 복음만이 제 세상을 만난듯 왕성하다.
십자가를 강조하고 사형수의 행보를 유지할 것을 경고하는 자마다
개밥의 도토리 격으로 왕따를 당하기는 예나 지금이나 일반이다.
다시 강조하거니와, "실족하지 않는 자가 복이 있다". 
즉 엉뚱하게 기대했다가 실망해서 믿음을 잃는 일이 없도록 하시라.
아담의 죽음으로 인한 비극적 결말을 아직은 감수해야 한다는 것만
마음에 바로 간직해 각오하고 있으면 실족할 리가 없다.
때를 기다려야. 때가 말해준다. 아직 때가 되지 않았다. 
때를 기다리는 지혜가 필요한 것이다. 
배고프다고 익지도 않은 밥을 숟가락으로 떠서 입에 넣지는 말아야. 

실족(, 발을 헛디뎌 걸려 넘어짐)

범죄로 죽은 아담을 대신하여 아담이 되시려고
세상에 오셨는데 아담 전체의 모습이 아니시고 
그 반쪽(범죄 이후의)의 형체이셨으므로
나머지 부분 즉 범죄 이전의 모습으로 다시 오심은 
너무나 당연하다. 그렇게 다시 오신 김에 아담이 그 죽음으로써
수행하지 못했던 아담 역할(세상 통치)을 시현해 보이시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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