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교회는 실천했고 왜 우리는 못합니까.
지금까지 모든 이른바 "교회"가 하지 않은 것을 왜 하느냐고요?
지금까지 그들은 아담/에덴의 속성도 제대로 몰랐습니다.
로마서 7장 24절이 기독교인의 일상 체험이라고
판에 박은 듯이 모두들 말해 왔습니다. 이런 것이 "배도"입니다.
사느냐, 아니면 영원 고통이냐의 영원 운명이 내게 달렸습니다.
사랑에는 피동적인 것도 없고 강제, 강권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내 스스로 나의 자유 의지의 선택으로써 정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은혜를 베푸실 것은 다 베푸셨고
가르치실 것은 다 가르치셨고, 모든 것을 다 말씀하셨습니다.
순종하고 않고의 여부는 내게 달려, 하나님은 기다리십니다.
내가 행동하는데 따라 나머지 하실 일을 결정하실 것입니다.
성경에 돈을 사랑함은 일만악의 뿌리라고 했습니다
세상 삶을 사랑하고 이 세상 아무쪼록 남 밑지지 않게 사는 것을
최고 선(좋은 것)이라 착각하기 때문에 돈을 사랑합니다.
주님의 자기 부인의 말씀을 듣고 많은 제자가 주님 떠난 것도
그 때문이고 유대인들이 당시 예수님을 배척한 것도 그 이유입니다.
세상 사랑이 멸망의 근원임을 가르치셨기 때문입니다.
당시나 오늘이나 돈을 사랑하고 이 세상 모쪼록 잘 살기를 원합니다.
당시도 많은 제자가 주님을 배척했고 지금도 양상은 똑같습니다.
해서 주님의 경고는 "천국 길은 좁은 문, 좁은 길"입니다.
"천국 들어가려고 해도 못하는 자가 많다"(눅 13:24) 하신 이유입니다.
돈 있어 부자가 되면 마음이 높아져(딤전 6:17) 없는 자들 업신여깁니다.
세상 사랑은 이생의 자랑이니까 당연합니다. 없는 자는 사람 취급 않습니다.
그래서 당시 야고보가 "부자는 낮아짐을 자랑하라"(약 1:10) 한 것도
자기 재물 조금도 자기 것이라 여기지 않으니 마음을 높일 이유가 없습니다.
초대교회가 세운 아름다운 전통(행 4:32)이 얼마 못가
역대 "교회"에서 폐지된 이유가 그 때문입니다.
오늘날도 예수님 믿고 영생하고 부자되고 병고쳐 건강해진다 따위로
전도해야 사람들이 교회로 모일 수 있다고 믿는 이들이 거의 전부입니다.
따라서 교인들에게 설교할 때도 그런 식입니다.
성경은 그 정반대이니까 그래서도 성경을 잘 보지 않습니다.
예수님 가르치심을 듣고 "이 말씀은 어렵다, 누가 듣겠는가"(요 6:60) 한 그대로입니다.
이러한 사람들에게는 3운법칙, 짝의 법칙 등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오늘날 이런 것을 나타내주심은 종전처럼 세상 삶을 사랑하지 말라는데 있습니다.
십자가 지고 자기 부인하여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라는 생명의 말씀 그대로 믿고
순종함으로써 세상과 함께 멸망함을 면하라는 최후통첩식 경고이실 뿐입니다.
이 경고 무시하면 이런 것을 통해 아무리 하나님 계심을 철석같이 믿어도 소용 없어요.
이미 주님은 "아버지 뜻대로 않는 자는 천국 불가"(마 7:21)라 선언하셨습니다.
선지자로서 말씀을 능력으로(귀신 쫓아내는 등) 전했어도 소용 없어요
"하나님 뜻대로 순종해야" 천국 행이라 하셨습니다. 천국이 따로 있지 않습니다.
아담 범죄 전 상태가 이제는 천국이 되어 있다는 뜻입니다.
아담이 그 죽지 않는 초자연계 몸을 잃은 것도 "뜻대로 행치" 않은 결과입니다.
이런 불순종이 영물이든 인간이든 범죄입니다. 생명의 법대로 지키지 않는 것입니다.
짝의 원리 자체가 이 세상이 생명이면 오는 세상은 죽음이요
이 세상이 죽음(골 3:3)이라야 오는 세상이 생명임을 증명하는데 있습니다.
이 세상도 생명, 오는 세상도 생명(영생)이란 존재할 수 없음을 정확히 가리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말씀의 성경을 진실로서 입증해주는 역할입니다.
그럼에도 이 말씀 순종치 않는 이에게는 한 마디로 구제불능입니다.
고로 성경은 처음부터 구원 얻는 자 소수라고 천명했으니까(눅 12:32)
말씀대로 되어질 뿐이요 불순종자는 말씀대로 멸망뿐입니다.
그렇게 세상은 엄정하게 하나님의 정하신 대로 흘러갈 것입니다.
이 세상과 오는 세상 구분이 아담의 범죄로 인해
뒤늦게 생긴 것이라 한 대로 이 세상은 <아담의 죄의 결과>임을
다시 경고합니다. 죄의 결과를 증오해야지 선호하고 애호할 경우
하나님의 맹렬한 진노의 표적이 될 것은 불을 보듯 뻔합니다.
처음부터 하나님이 정하신 "오는 세상", "이 세상"이 아닙니다.
죄의 결과 중 하나가, 악마의 이 세상 지배입니다(다른 하나는 자연계 육체).
세상 삶 사랑은 이 악마의 세상 통치를 증오 않고 환영한다는 뜻이니
반역자에게 가담하는 것으로 간주되어 "마지막 아담"께서 오시면
그 엄정한 심판의 칼날에 여지 없이 평정되어 자비란 구경도 못하고
수십억이라 할지라도 절대로 아껴보시지 않게 되어 있습니다.
세상이 아무리 먹음직, 보암직, 탐스러워보여도(창 3:6) 손대서는 안됩니다.
죽어도 말씀 따라 순종해야 다시 부활하지 그렇지 않고는
아담 범죄의 재판(再版)이 되고 다시 소생할 기회는 영영 없습니다.
실상을 제대로 판단하도록 짝의 법칙으로 정확히 가름한 것입니다.
흑백으로 대칭이 되어 짝을 이루었으면 흑은 흑이고 백은 백일 뿐인데
그것을 자꾸 아니라 하고 그럴 수도 있다는 등으로
혼돈을 자초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니 아담 범죄로 그런 짝이 만들어져
이것은 "마지막 아담"께서 다시 오심으로써만 귀정(歸正)이 됩니다.
고로 죽음은 철저히 죽음으로만 치부하세요. 생명과 죽음 둘뿐입니다.
아담의 범죄가 그렇게 만들어놓았어요. 이 함정에 빠지면 안됩니다.
아담의 범죄가 그렇게 만들어놓았어요. 이 함정에 빠지면 안됩니다.
지금은 절대로 생명이 아닙니다. 그 이상 나가면 죽음만 있습니다.
순리를 따라가야 하는 것이지 억지로 나가면 반드시 부러지고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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