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월 10일 금요일

하나님을 보려거든 예수님을 보라ㅡ말 그대로 사람으로 나타나신 하나님 바로 그 분이시다



십자가 죽으심은 나와 하나되심이었고
부활하시어 이제 내 안에 성령으로 계심은
나와 "한 영"(고전 6:17)으로서 계심이나
그냥 "주님과 나는 하나"(요 10:30)라 해도 무방.
주님과 나와의 하나됨은 성부와 성자의 하나되신 원리를 따름이니까.






"마지막 아담"이신 우리 주님의 하나님되심을 강조하고
(하나님께서 우리와 같은 육신으로 나타나시어-딤전 3:16-임마누엘이시니
또한 절대 복종의 나의 소유주, 나의 주인되심을 명확히 해야
"님"이라는 최소한의 존대어도 빼고 "예수, 예수" 경망하게 아이 이름 부르듯 하는데
불교도들은 깎듯이 "부처님" 하니 일반인들도 덩달아 부처"님"이라 불러주는데)
"내 주님 예수"를 "내 주 예수님"이라 해도 좋으나
앞에 "내 주님"이라 했으니 <그 이름 "예수">의 뜻이니까 무방할 듯.

독생자를 보내주신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를 올리며
(독생자 예수님을 높임이 성부 하나님을 높임이 되지마는
성자 하나님과 성부 하나님께서 함께 하나로 계시지만
독생자 예수님이 하시는 모든 일이 바로 성부 하나님 하시는 것이지마는)
주님과 내가 하나되어 있음과, 함께 일함을 강조하고
주님 다시 오시는 날이 눈앞에 와 있음을 또한 강조

곡조가 간단하고 부르기 좋아 매력적이어서 가사를 수정해보았음
주님 따로 나 따로가 아닌 둘이 하나돼 있음을 강조해야
이것이 우리 구원의 요체이니까ㅡ"마지막 아담"되심의 의미

십자가상에서 주님이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이라 하신 것이
바로 우리도 그렇게 하나님을 <나>의 소유로서(빌 1:3/4:19)
정확히 인식하라는 깊은 의미가 담겨 있음을 알아야
우리 하나님이라고만 인식하지 "내 하나님"으로는 생소하게 여기는 것이 잘못
내 하나님과 우리 하나님은 어감부터가 우선 다르다
부활을 믿지 않던 도마가 "나의 주님(사람/아담으로서의), 나의 하나님이십니다"(요 20:28) 했다





(곡조에 비해 영문 가사는 별 내용이 없어
주님 살아 계심을 확신하니 이 세상 살 만하다는 정도
지금 수십억 인구의 영혼들이 "사람 살려" 울부짖는 판에
이 아우성은 외면, 그들을 건질 생각은 없이 그저 안일하게
"살 만하다"는 말이 감히 어디서 나온다는 말인가!
전세계 기독교계의 이기주의적 침체 상태를 대변하는 것뿐)

God sent His son, they called Him Jesus
He came to love, heal and forgive
He lived and died to buy my pardon
An empty grave is there to prove my savior lives

후렴
Because He lives, I can face tomorrow
Because He lives, all fear is gone
Because I know He holds the future
And life is worth the living, just because He lives

How sweet to hold a newborn baby
And feel the pride and joy He gives
But greater still the calm assurance
This child can face uncertain day, because He lives
And then one day, I'll cross the river
I'll fight life's final war with pain
And then, as death gives way to victory
I'll see the lights of glory and I'll know He reigns

I can face tomorrow
Because He lives, all fear is gone
Because I know He holds the future
And life is worth the living, just because He lives


(피아노 곡)




하나님을 보려거든 예수님을 보라ㅡ
말 그대로 사람으로 나타나신 하나님 바로 그 분이시다. 
하나님의 모습도 이제는 양면성을 갖추게 되셨으니 
영원히 볼 수 없는 이시고(딤전 6:16) 
또한 볼 수 있는 하나님이 되신 것이다. 


이제까지 성경의 개략은 우리가 터득한 셈이니
유명 오페라 곡이든 기존 찬송가 곡이든 맞추어 누구나 가사를 새롭게 지어
애창하는 날이 오기를 고대합니다. 찬송가는 성경과 달라 개작 가능합니다.
(곡이나 가사나 신작이라면 저작권이 따르니 주의 요망) 
가사든 곡이든 반드시 신작이어야 할 필요는 없습니다.
가사 번역자가 혹 이의를 제기하면 모두를 고치면 되나
공개 발표를 하지 않고 개인적으로 부르는 것은 무관합니다.



꼬박꼬박 악보 따라 "내 하 나 님ㅡ 내 주 님 예 수ㅡ" 할 것도 없이
자기 신명 따라 "내 하ㄴ~나니임ㅡ내 주우님 예에수ㅡ" 식으로 불러도
딱딱한 기분 없이 자주 흥얼거리게 되어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는(가락을 울리는, making melody)" (엡 5:19)것이 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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