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월 7일 화요일

"눈을 뜨게 하여"(행 26:18)




신약과 동시에 구약이 있다.
메시야 예수님을 사람으로 보면 사람이시다.
동시에 하나님으로 보면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을 사랑으로 보면 사랑이시다.
동시에 소멸하는 무서운 불로서 보면 
오직 "소멸하는 불"(히 12:29)뿐이시다.
"의를 사랑하고 불법을 미워하지"(히 1:9) 않는 자에게 그러하시다.

현대물리학의 시발점인 양자역학이 어렵다는 것은
이 짝의 법칙의 양면성의 동시성을 처음으로 접하기 때문이다.
닐스 보어가 주장한 상보성의 원리가
성질이 정반대되는 것끼리 상호 보완한다는 것은 이해하겠는데
그 정반대되는 성질을 어떻게 동시에 가질 수 있느냐
도저히 납득 불가라는 선입견에 사로잡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이 짝의 법칙이다.

성경은 하나님의 인자(loving-kindness)와 엄위(severity)
대해 경고하기를 쉬지 않고 있다(롬 11:22).
(이상의 성경 구절은 외우기도 좋은 히브리서 1:9, 12:29, 로마서 11:22.
성경의 중요 구절 중 서로 관련된 내용은 
대개 이런 식으로 외우기 좋도록 되어 있음을 본다.)
이 엄중한 사실을 널리 알릴 필요가 있다.

성경 곧 하나님의 말씀을 <법칙> 차원에서 새로 인식할 필요가 있다 .
만유의 법칙인 짝의 원리다.
법칙은 요지부동, 얼음장같이 차디차다.
인정사정 보지 않고 오직 그 정한 법칙대로 진행되어질 뿐이다.
지금까지 교회가 배도 일로로 치닫게 된 것은
"주를 경외함"과 "성령의 위로"(행 9:31)의 두 가닥 레일 중
전자가 빠지고 후자만 남아 교회 열차가 달릴 수 없어
침체의 웅덩이에 빠져 있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 대한 회개"는 버리고
"주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20:21)만 편식/偏食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명령은 어디까지나 "회개하라"(17:30)이다. 
"하나님의 십자가 사랑을 믿으라"가 아니다.
회개한 자에게만 용서와 성결의 사랑이 자동으로 임한다.
이미 이루어진 은혜의 역사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사랑 일변도로 착각하지 말 것이다
이 "마지막 때"에 주시는 엄중 경고다.
"너희는 여호와의 책을 자세히 읽어보라
이것들이 하나도 빠진 것이 없고
하나도 그 <짝>이 없는 것이 없으리니
이는 여호와의 입이 이를 명하셨고
그의 신이 이것들을 모으셨음이다"(사 3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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