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월 11일 토요일

"오늘 밤"이라고 벼락치듯이 울리는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 하시는 일은 상식을 벗어나는 일이 없어요.
상식은 이치에 맞고 벗어나지 않는다는 뜻이지요.
그래서 우리가 제대로 상식만 동원해도 하나님 말씀 어려울 것 없어요.
아담이 범죄하지만 않았다면 부활, 죽음이 다 무의미한 것들이지요.
아담이 죽었고 하나님이 이에 대처하시다보니 부활이 있고 재림도 있어요.
또 창조를 하시는 하나님이 무엇 때문에 죽는 인간을 창조하시겠는가요.
이 역시 상식대로 풀어나가 판단할 일입니다.
죽지 않게 하셨지만 사고를 내어 죽게 되니까
(이런 사고는 인간 자신에게서 나오는 것이지
하나님이 그런 여건과 환경이 조성되도록 허술하게 하실 리 만무지요.)
고로 이 세상은 이러한 인간을 원래의 상태대로 회복 복구시키는 때로서
그 이상의 의미가 없다는 것 역시 상식입니다.

영생하며 행복하게 살도록 하신 그 애초의 목적을 벗어났는데도
이대로 살게 하신다면 더더욱 상식적으로 판단할 때 있을 수 없지요.
하나님이 능력이 없으실 리도 없고 인간처럼 나태하실 리도 없습니다.
처음에는 죽는 인간으로, 나중에 영생하는 인간으로 만드실 이유가 없지요.
고로 본디 모양대로 원상 복구된 다음에 비로소 살게 되어 있다는 것
역시 상식에 속하고 그렇지 않다면 이것이 큰 수수께끼가 되는 것이니
하나님께서 무엇이 부족하시고 또는 누구가 두려워 처음부터
그렇게 2차에 걸쳐 창조하시겠나요.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처음부터 거짓말하기를 즐긴 사탄이라는 자가 이 세상을 주름잡고 있기 때문에
그 거짓말이 퍼져 그렇게 인식되는 통에 극도의 혼란이 온 것이지요.
그렇다면 창조주 하나님의 대처 방안을 따라야 하는데
마귀의 이 세상 통치가 아담의 범죄의 결과로 생긴 후유증이라
인간 세상을 꿰차고 인간세계를 방해하고 있으니 상당한 장애가 있음은 불가피하죠.
이 방해는 인간 상대이지 하나님의 일을 방해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방해하고 싶을 것이라 가정을 해도 못하는 것은 일개 피조물이니까.

그러나 사탄은 자기가 하나님을 대적하여 방해한다고 인간들을 속이고 있어요.
자기를 대단한 존재인 것처럼 속이는 것도 인간 구원 방해 작업의 일환이죠.
하나님을 대적하여 하나님처럼 높다고 으스대던 영물이 있다면
그룹 중 하나였고 지금은 무저갱에 있는 자뿐이고 
그는 인간 세계와는 일절 관계 없어요. 격리되어 있으니까.
마귀가 "기독교 신학"이라는 것을 만들어 속여 온 대로 
지금 이 세상의 왕 노릇하는 사탄이 아닙니다. 

사탄은 아담의 범죄로 인한 어부지리로 이 세상을 장악하고 있어요. 
사탄만 이런 악행을 했다면 당장 요절이 나겠지만 
인간(아담)도 함께 범죄했고 더구나 인생들을 구원하시고자 
인간의 범죄에 대해 당장 응분의 조처를 취하실 수 없으므로 
모든 피조물을 공평공정하게 다루시는 차원에서 
사탄의 이런 짓거리들을 일단 허용하시는 것입니다. 
악인들은 걸러내고 의인의 무리에 든 이들은 시험하여 저울질하는 역할을 부여하시면서. 
임시 조처입니다. 문제는 이런 실상을 인생들이 알아야 하는데 
성경에 그렇게도 분명히 말씀하셨고 충분히 알아들을 만큼 말씀을 하셨건만 
인간의 오만함이 사탄의 이런 방해 공작(시험 및 악인 걸러내는 악역)이 맞물려 
빚어내는 여러 가지 일들이니 난마와 같이 얽힌 듯해도 실은 간단명료합니다.

"자기를 위해 재물을 쌓아두고 하나님께 부유하지 못한"(눅 12:20) 부자 관련해 
주님께서 비유 말씀을 하실 때 "오늘 밤"이라 하셨으니 
이는 인간이 나이 많아 죽을 때쯤 되어서 죽는 것보다 
불시에 죽을 수 있음을 명백히 하신 것입니다. 
이 부자가 특정 죄를 지었기 때문에 어느 때든 불시에 죽을 수 있는 것으로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단지 인간이 <불시에 죽을 수 있음>을 가리켜 
"오늘 밤"이라 하신 것입니다. 하루 일을 마치고 내일을 바라보며 
오늘 밤 편안히 쉴 때 당하는 변을 말씀하신 것이지요. 
왜냐면 부자 스스로 재물이 많아 "빛나는 장래사"를 두고 
이리저리 궁리하고 있었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내일커녕 오늘 밤 목숨이 붙어 있을지도 말지도 모른다고 하신 인생. 

예수님께서는 일반적인 인간사를 말하는 평범한 일개 인간으로서 하신 말씀이 아닙니다. 
인간과 모든 우주 만물을 지으신 하나님이십니다. 
이 말의 요지가 무엇이냐 하면, 하나님은 창조하실 때 
절대로 이렇게 불확실한 삶(죽음이 있으니까 사실 삶도 아니지만)을 살도록 
처음부터 정하시지 않았다는 그 뜻입니다.

인간 아담의 <범죄로 빚어진 죽음>이라는 것입니다. 
죽게 하시려고 인간을 창조하신 것이라면 
일정 기간은 살도록 다시 말해 모든 인간이 다 예외 없이 
늙어 기운이 쇠잔하면 숨이 끊기도록 조처를 하셨을 것이 분명하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그렇지 않고 사람이 오늘밤에라도 갑자기 죽을 수도 있다는 의미로 말씀하셨으니 
명백히 이는 아담의 범죄로 인간이 자연계 육체가 됨으로 인해 
짬도 없이 죽어 나가는 자연계 육체의 실상을 강조하신 것입니다. 
이 부자가 죄를 지어 그 벌로 오늘 밤 죽을 수도 있다 하시지 않았어요. 

인간은 인간의 죄의 경중을 따지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그런 것을 따지지 않고 무조건 자아중심이면 다시 말해 
하나님을 위함으로써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않고"(행 12:23) 
자기를 위하는 일체의 행위가 죄로서 헤롯왕처럼 죽습니다. 
고로 죄의 경중을 따져 죽고 말고 하는 것이 없어요. 
그래서 "오늘 밤" 죽을 수도 있다는 것은 
순수히 인간(아담) 자신이 애초 창조 당시의 초자연계의 영광의 몸을 상실하고 
자연계 짐승의 목숨인 자연계 육체가 되었기 때문임을 
여기서도 주님은 명백히 하신 것입니다.

성경은 이와 같이 일부러 설명하지 않으면서도 훌륭히 설명하고 있어요. 
이것이 가장 강력한 <진실성의 자체 증명>입니다. 
자연적으로 진실성이 흥건하게 배어나고 묻어나는 것입니다. 
무엇이든 인위적으로 시도하면 좋든 나쁘든 일정 분량 조작이 개입될 수 있어요.
그래서 만인의 공감을 얻지 못합니다. 그것이 설혹 진실이라 할지라도. 
그러나 이렇게 설명 않으면서도 충분히 설명하고 있는 성경과 같은 경우 
이야말로 만권의 책으로 입증하는 것보다 더 확실한 그 진실성의 증명이 되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현재의 이 자연계 몸은 범죄의 결과물임을 다시 인식할 필요 있어요. 
하나님 앞에서 가증스러운 것입니다. 
하나님께 모욕이 됩니다. 마치 하나님께서 능력이 모자라 인간을 죽는 자로 만드신 뒤
능력을 재충전하시어 나중에야 인생들을 죽지 않는 존재로 
겨우 만드시는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 
이런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으로 만드셨다고 인식되어지니 더욱 말이 안되지요.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으로 만드셔도 겨우 죽음의 비탄 속에 빠지는 존재라니!
그러면 이런 형상과 모양의 그 실체이신 하나님도
죽음의 비탄 속에 빠지시는 수도 있는가 할 것이 아닌가요.

애초의 인간(아담)의 몸은 주님 예수께서 부활하시어 나타내 보이신 바로 그런 몸입니다. 
공중에 구름을 타고 마음대로 오르내릴 수 있는 그런 몸. 
그 한 가지만 예거해도 굉장하여 눈이 휘둥그래질 일이 아닌가요.
그런 몸은 자연계 몸처럼 병원균이 침입할 턱이 있나요. 사고사를 당할 리도 없지요.
그런 몸으로 살아야 사는 것이지 종이곽같이 어쩌다 빠개지면 그 길로 영영 끝나는 육체.
왜 무슨 뜻으로 이유로 이런 육체를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인 인간에다 적용시키시나요?
말이 안됩니다. 말이 안되는 것을 사탄에게 꺼둘려 맥없이 넘어가
만고의 진리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으로 착각들을 해 온 것입니다.

이런 육체의 삶을 사랑하는 자마다 멸망의 장본입니다(요 12:25). 당연합니다. 
그렇게 살아 그런 삶을 즐김으로써 하나님을 조롱하며 산 것이 되니 
하나님 앞에 가증스러움 그 자체인데 절대로 무사할 리가 없지요. 
그대신 이런 삶을 백안시하고 심중에 두지 않고 
오직 영원한 영광의 몸으로서의 삶을 동경하고 사모하는 이는 
그래서 이 삶을 배격하고 거들떠보지도 않은 사람들만이 
그 원대로 선택한 대로 영생에 들어갈 뿐입니다.

불교의 승려들은 세상 삷을 버리고 입산수도하니 영생인가요.
그것은 아니지요. 세상 삶을 버리는 행위는 
"눈을 뜨게"(행 26:18) 되어 구원받은 상태에 있는 자연적 결과입니다.
그런 중생("거듭 남", 재출생)을 거치지 않고 이 세상 삶을 초개같이 버림은
상식적으로 판단해도 이 세상 삶은 허무한 것이니까 그것을 개떡 같이 여김은 당연하고
그래서 그렇게 해서라도 진리를 찾고자 하는 몸부림의 일종일 뿐이지요.
그럼 왜 그런 사람을 하나님께서 외면하시나 하겠는데
하나님만이 아시는 이유, 우리가 알아서는 아무 덕도 안되는 이유가 있으십니다. 
그런 수행자들을 모욕하는 의미가 되므로 공개적으로 말할 수는 없지만. 
또 그렇다고 꼭 그렇다고 단정할 것은 없고
하나님의 판단에 일임하는 것이 이 때는 지혜입니다.

이런 것을 꼬투리로 잡아 그러니까 "하나님은 인간의 지어낸 환상"이라 하지는 않겠지요.
"인간이 지어낸 환상"이 3운법칙과 같은 것으로써 인간을 철통 같이 지배하나요?
3운법칙은 환상이 아니라 엄연한 현실이잖아요. 
3운법칙이 증언하는 것이 바로 짝의 원리 곧 3위1체의 법칙이 아닌가요.
3위1체의 법칙의 도식 자체를 형성하니까 3각(tripod) 구도가 아닌가요.
3위1체의 원리 즉 짝의 법칙대로 하면 원인과 결과는 짝을 이루어
제1원인이신 창조주 하나님을 완벽히 일거에 증명하고도 남음이 아닌가요.

고로 내가 은혜를 입어 진리를 깨달아 영생하는 길을 알았으면 
당연히 이 많은 사람들도 은혜를 받아 진리를 깨닫도록 해주는 것이 당연하지 않나요? 
더구나 하나님의 아들들이라면서 아버지의 이 거룩하신 뜻을 받드는 것 외에 
무슨 일이 이 세상에 있을까요. 
먹어도 마셔도 잠을 자도 쉬어도 
구원받은 목수가 목수 일을 하고 대장장이가 대장간에서 일해도 
목적은 사람들을 구원해내기 위해 기도하고 말씀 전달자가 되기 위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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