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때문에 대개 믿음에 들어온 이들을 보면
"육체를 따라 지혜 있는 자, 능한 자가 많지 않으니"(고전 1:26),
이런 "없는" 자들의 공통점은 세상 삶의 낙을 별반 느끼지 못해
믿음과 장래 소망을 위해 세상을 버림이 그다지
걸림돌로 작용하지 않는다는데 있습니다.
이 대목을 중시할 필요가 있습니다.
단지 머리이신 예수님의 고난에 동참하는 그 뜻만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남으신 고난"의 <그리스도의 고난>이시므로
사람 살리시는 "하나님과 함께 일함(고후 6:1)에서 필수 불가결로
구원 사업의 일환으로서의 우리 고난 받음인 것입니다.
"마지막 아담"이신 "메시야 예수님"의 구속 사업은 완결이나,
그 이미 이루어진 구원을 근거로 한 직접적인 구원의 도구는
우리 자신의 제물됨(롬 12:1)을 배경으로 제사장 역할인 것입니다.
제물이란 것은 처음부터 자기 아닌 타생명을 위한 희생의
죽음, 이에 수반되는 고통과 고난입니다.
바로 이것이 이 버림 받은 세상에 위치한 우리의 존재 가치입니다.
사람 살리는 가장 고귀한 일의 보람을 100% 누림입니다.
그리고 적그리스도는 소위 "과학적 진실"이라는 탈을 다시 쓰고
넘볼 기회를 찾으려들지도 모릅니다.
허나 과학 관련해서만은 우리는 진화론을 통한 학습효과가 있습니다.
다아윈이 진화론에 접근하기 시작한 것도
창조에 대한 강한 회의 속에서 출발한 것입니다.
진화론은 창조를 부정하는 무신론을 배경으로 합니다
그러나 오늘날 3운법칙과 짝의 법칙(3위1체의 법칙)간의
상호 검증으로써 무신론과 진화론은 산산조각이 났습니다.
그러나 놀랍게도 그간(무려 150년) 당당히 "과학"으로
군림해 왔던 것을 우리는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마귀는 과학의 이름으로 대대적인 기만 행위를 한 것입니다.
사이비 과학으로써 마귀의 본심을 드러내어
대대적으로 사기를 친 것은 진화론이 그 시초라 하겠습니다.
다시 제2차의 "과학" 사기를 감행할 수 있습니다.
이번에는 물론 무신론이 아니라
"마지막 아담"이신 메시야 예수님께 대한 공격입니다.
좌우지간 '진화론 과학 사기극' 학습 효과를 최대한 활용하여
더 이상 마귀의 사기 놀음에 놀아나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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