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월 28일 화요일

에녹과 엘리야 (끝)









"혈과 육(flesh and blood)은 하나님 나라 상속받지 못하고
썩는 것(자연계 물질의 육체)은 
썩지 않는 것(초자연계 물질로서 영생하는 육체)을
상속받지 못한다"(고전 15:50) 했으므로 엘리야와 에녹이 
자연계 육체로 승천할 수는 없음을 알아야.
이런 점을 보아도 세상 종교의 막연한 "구원, 영생"은
허구에 가득 찬 거짓, 논리도 없는 인간의 망상 뿐임이
입증되는 것이니 오직 "마지막 아담"을 통한 
다시 출생함과 새로 창조됨으로써만 
이 썩음과 죽음이 영생으로 회복되는 것. 
이 모두 아담의 범죄로 파탄이 남으로써
인간의 죽음이 초래되었기 때문이니 "영적 죽음"이라면
"만유 회복"(행 3:21)이라는 거창한 의미가 있을 수 없어.
아담의 범죄로 인해 "영적으로 죽었을" 뿐인데
왜 "만유가 회복되어야" 하겠는가. 

모든 창조의 최고 절정 완성품으로서 인간이 창조되어
영생하는 존재로 완결되었기에 7일째 날 쉬셨는데(안식)
하나님이 다시 일하실(창조를 다시 시작) 정도가 됐으니(요 5:17)
"영적 죽음"이면 인간의 영(혼)만 손보시면 될 일이지
만유까지 손대실 필요가 없는 것이다.
살도록("산다"는 것은 자연계 동물 아닌 인간은 영생을 의미)
창조되었는데 죽는 존재로 돌연 변이를 일으키는 
사고가 생겨났으니 이로 인해 땅까지 저주를 받았기 때문(창 3:17).
마귀는 "구원"을 아주 괴상한 것으로 그 의미를 변질시켜
마치 "영생(구원)*만 얻으면 모든 것이 종료된 것처럼
엉뚱하게 고깔을 뒤집어씌워 놓아도 인생들은
무작정 피동적으로 당하기만 하고 그런 줄로만 아는 것뿐이다.

"구원받아" 당장 지금 죽어도 영생하게 되었으니
이제는 아무 걱정할 것 없다 하여 이 세상 살다가 죽으면
영생이라는 주먹구구식의 사고방식으로만 온통 지배되고 있다.
성경은 구원받았기 때문에 "산" 것이 아니라
그와는 정반대로 지금 "죽어 있다"(골 3:3) 한 것이다. 
메시야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죽어 무덤에 있는 것이다. 
예수님은 먼저 살아나셨지만 그러나 "감추어져"(:3) 계신다.
주님의 부활/승천이 "감춰져" 있음은 나도 "함께 감추어진" 것.  
그 부분은 감춰지고 죽어 무덤에 있는 것만 드러나져 있다.
다시 말해 우리(주님과 나)의 부활/승천이 드러나질 때에는
반드시 초자연계 몸으로써이지 이 자연계 육체로써가 아니다.
바로 그 뜻이다. 아주 중요한 핵심적인 의미이다.

바꾸어 말해 이 자연계 몸은 <죽음의 대명사>라는 것.
메시야 오심으로 말미암아 이 의미가 제대로 살아난 것이다.
메시야 오시기 전에는 온 천지가 암흑(행 26:18)이라 분간을 못했다. 
이제 "마지막 아담"이 오심으로써 <아담>의 실상이 드러나자
모든 사연도 대낮 같이 밝아져 정상적으로 알아보는 것이다.
이 자연계 육체 자체가 <죽음>이라는 것을. "무덤"이라는 것을.
우리(아담과 나)의 죄로 인한 형벌로서의 죽음이란 측면 외에도
이와 같은 본원적인 의미의 죽음의 실상이 여실히 드러난 것.
<형벌>만의 의미라면 죽음으로 죄값이 치러진 이상 
우리가 산 자가 되어 있어야 마땅하다. 헌데, 여전히 "죽은 자"다.
범죄 전 아담의 모습을 대변한 에녹과,
범죄 후 아담의 모습이 되시어 죽으시고 장사지낸 다음의 부활로 
정상적인 아담을 회복하신 "마지막 아담"의 모습을 
미리 대변한 엘리야의 대조적이고 대칭적인 연관성을 
구현한 것을 제외하고는 노아, 욥, 아브라함, 모세 등 모든 인생이
"죽은 자"(마 8:22)로서의 형상인 것이다.
 그 사실이 세상에 오신 "마지막 아담"으로 확인되었다는 것뿐이다.
노아도, 아브라함도, 모세도 그 누구도 주님 다시 오심으로써
아담 본시(범죄 전)의 초자연계 몸으로 회복됨으로 말미암는 
"산 자"로서의 모습으로 비로소 정상화되는 것이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