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2월 13일 금요일

헬리콥터




이제까지 말 않던 "짝의 원리"로 성경을 알기 쉽게 설명한다니까 "짝의 법칙
뭔데?" 하고 마이동풍 격일 수밖에 없다. 대관절 무슨 소리를 하는지 도통 모르
니까 그런 것이다. 이 때 현대 물리학자들이 상보성 원리를 말하는 등 "짝의 원
리"에 접근해주니까 그렇게도 반가울 수가 없다는 그 얘기다. 물질계가 있으면 
반드시 반물질계가 있다. 짝의 원리에서 그렇다. 성경을 이해하기가 아주 수월
해진 것이다. 하나님의 존재도 증명되고 내세도 증명되어 오는 세상이 진정으로
사람 삶이고 따라서 이 세상은 속임수 일색임이 입증되었다. 영혼의 존재까지도 
부인하는 자들이 유구무언이게 되었다. 믿는 자여 각성하고 세인이여 회개하라.

외경 syrac서에 "two and two, one against another"라 했듯이 만물은 "둘과 둘, 
어디서나 둘, 언제나 둘, 거꾸로 보아도 둘, 바로 보아도 둘  둘로서의 짝인데다 
그렇게 둘로서 존재하는 이유가 서로 성질이 정반대인 짝인지라 하나만 확인되면 
다른 하나는 자동으로 그 존재가 검증 확인되는 까닭에 "증명"이라는 말을 거침
없이 과학적인 근거하에 구사하게 되는 것이다. 


그  외에는 달리 존재하는 것이 없으므로 
렇게 확정, 단정해서 말할 수 있게 된다.  
이것이 짝의 원리의 특징이다.


그야말로 말 그대로 손바닥 뒤집기다.
손등과 손바닥이 전혀 다른 성질이지만(손이라는 본질은 같으나)
그냥 뒤집으면 그만, 싱겁게 끝나기 때문이다 ㅎㅎ.
그렇다고 우리는 과학적인 모든 접근(실험에 의한 검증)을 무시하지 않는다.
한 걸음씩 딛고 정상에 오르는 모든 과정이 그야말로 꿀맛이기 때문.
말하자면 헬리콥터는 거시적인 것이고 
등산가의 도보에 의한 것은 미시적인 것의 대칭이라 보아도 적절하다.
고로 전자가 후자를 무시할 수 없고 후자 또한 전자에 대해 그렇다.
둘이 하나를 이루는 짝의 개념이기 때문이다. 
성경은 거시적으로 말하고 과학(지금까지의 자연과학)은 미시적으로 말한다.
헬리콥터가 먼저 정상에 올라 창조에 의한 기존 법칙임을 
과학자들에게 말해주지 않는다면 그들은 언제까지 안개 속만 더듬을 터.
이렇게 해서 거시적인 것은 미시적인 것을 위하고
미시적인 것은 거시적인 것이 없이는 나래를 제대로 펴지 못한다.
상보성 원리를 주창한 닐스 보어가 과학자로서의 철학자이기를 
내심 바랐다는 말도 충분히 일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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