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담의 범죄로 “신령한 몸”(고전 15:44)을 상실한 인류가 현재 “육의 몸“(:44)에 의지하고 있는데 늙고 병들고 말이 아닙니다. 고로 ”신령한 몸“을 되찾지 않고는 사람 삶이라 할 수 없습니다. 짐승 삶이라 하지도 못합니다. 짐승은 처음 창조하신 그 모습 그대로를 오늘날까지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개체든 전체든 영적 존재는 아니기 때문인데 인간은 영혼이 있어 죽음을 실감하고 통탄합니다. 죽음을 당하여 비탄에 빠지도록 인간을 만드실 리가 없습니다. 아담이 죄를 지어서 이런 불행을 초래했으므로 생명의 법칙 즉 둘이 하나됨의 사랑의 법을 지켜 너는 나를 위하고 나는 너를 위하는 원리대로 이기심을 버리고 자아중심을 극력 기피해야 합니다. 나는 나 자신을 위해 살지 않습니다. 둘의 하나됨에서 나는 주님의 것이 되어 있고 주님은 내것이 되어 계십니다. 이 얼마나 든든한 일입니까. 주님 친히 나를 그 소유로 삼으셔서 나를 위하시니 내가 나를 위함보다 수만 배나 낫습니다.
주님이 나를 위하시니 내가 나를 위할 필요가 없어요. 그래서 나는 주님을 위하시는데 주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는 것이 주님을 위함입니다. 엄마와 아기의 관계에서 아기가 엄마 말을 따라주는 것이 엄마를 위함입니다. 이것이 바로 내 생명을 잃지 않고 빼앗기지 않는 최선의 방법입니다(눅 9:25). 이것이 첫째이고 둘째는 나와 똑같은 나 자신을 창조하시는 아버지 하나님의 일에 나도 아들로서 동참하는 보람입니다. 내가 기도하고 전도해주는 사람사람이 다 제3, 제4, 제5의 나 자신이 될 수 있습니다. 제1은 나 자신이고 제2의 나는 바로 주님이시고. 나를 위하는데 어찌 나 자신이 아닌가요. 나 자신이라고 특별한 무엇이 있나요. 나를 위하면 바로 나 자신인 것입니다. 그대신 나는 모두가 나를 위해주니까 나 자신을 위할 자리가 없어 나를 위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머리가 되시는 주님을 위하고 그 머리의 몸된 지체(肢體)를 나와 함께 형성하고 있는 내 이웃을 위합니다. 이것이 주님께서 설명하신 바 모든 선지자와 율법의 강령입니다(마 22:40). 영원한 머리와 몸 관계니까 이 생명의 법칙은 영원히 준수하게 되어 있습니다.
물 흐름과 같은 순리 그대로입니다. 이런 벅찬 '미래 삶'의 희망을 먹으며 마시며 그 기쁨과 평안 속에서 세월 가는 줄 모릅니다. 물론 주님처럼 심한 통곡과 눈물의 간구로 멸망에 빠져가는 영혼들을 위해 기도하고 기도 중에 전도를 쉴 새 없이 합니다. 제3, 4, 5의 나 자신을 만들어가는 나의 미래 행복을 보장해 주는 우리 한 몸의 지체들을 만들어가시는 아버지 하나님의 일에 열심을 다해 충성하느라 헛된 세상 일에는 거들떠볼 시간도 없습니다. 그리고 이런 일에 함께 종사하는 내 형제들을 위한 기도, 각종 봉사 등에 차질이 없도록 합니다. 핍박이 닥쳐 북한교회처럼 수난의 대상이 되든 않든 관계 없이 전천후로 진행되는 새 생명 탄생의 역사/役事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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