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2월 24일 수요일

★소년 다윗이 천하 장사 골리앗을 쳐 이긴 비결

소년 다윗이 천하 장사 골리앗을 쳐 이긴 비결




(어른은 아무도 골리앗을 이길 수 없고 소년의 단순한 믿음이 이긴 것. "돌이켜 어린 아이 같이 되는 것"ㅡ사탄을 이기는 변함 없는 요결이니 반드시 명심해야)


우리의 구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희소식을 전달하는 예언을 하면서도 이사야 선지자는(사 53:1) "우리의 전한 것을 누가 믿었느냐" 하는 탄식(아니면 경고)부터 먼저 합니다. 생명의 구원의 말씀이 이 세상에서 영합되지 않는다는 것을 나타낸 것입니다. 인기가 없다는 뜻입니다. 영생을 준다는데 왜 그러냐 하겠지만, 당장 오늘 누리는 영생의 환락이 아니라 고난과 죽음의 인내를 거쳐야 얻는 것이기에 그러합니다.

성경의 진실성은 역설같지만 이와같이 "영합되지 못하는" 바로 이 점에 있습니다. 상식에서 벗어나고 말도 되지 않는 미치광이의 소리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거들떠보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전혀 그 반대라는 것을 알면서도 마음이 내키지 않는 데에 있음이니, 다름아니라 이 세상을 사랑하지 말라는 경고에 대한 반발 심리 때문입니다. 이 역시 "말씀을 믿지 않음"에 속합니다. 아담이 범죄한 것도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은 탓입니다.

"세상이 악한 자 안에 처해 있어"(요일 5:19) 그 장중에 놓여 있다는 실상을 밝히는 성경을 믿지 않는 것입니다. 노아 홍수 당시 홍수가 나서 모두 망하게 된다는 노아의 경고를 믿지 않음이나, 소돔 고모라가 멸망할 때 롯의 사위들이 장인의 경고를 믿지 않음이나 똑같습니다. 그러니 이사야서의 그 대목은 탄식이기도 하고 경고이기도 합니다. 교언영색(巧言令色, 남의 환심을 사려는 교묘한 말의 아첨과 보기 좋은 모양새로 얼굴을 꾸미는 것)이란 말이 있듯이, 거짓말하고 속이는 자치고 달콤한 말을 하지 않는 법이 없습니다. 듣기 싫은 말로 남을 속이거나 거짓말을 농하는 자는 없습니다.

거짓말의 원조로서 사탄이 여자를 속인 경우에도 듣기 좋은 말만 했습니다. 반면에 하나님의 경고 말씀은 듣기 거북한 것이었습니다. "죽는다"고 하셨으니까 그런데, 사탄은 "하나님 같이 된다"고 한 것이니 듣기에도 솔깃한 것이었습니다. 성경의 진실성은 바로 이런 듣기 거북한 경고에 있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이 다 듣기 싫어하는 내용을 말하고 있다는 점에 있습니다. 양약은 입에 쓰다는 말과 통합니다. 영생 자체야 물론 듣기 싫은 것이 아니지만 당장 세상 삶을 사랑하지 말라는 경고의 내용이니까 듣기 싫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수많은 제자들이 예수님 곁을 떠났습니다. 그런 사실도 곧이곧대로 성경은 전하고 있습니다. 쉬쉬하거나 감추는 것이 없습니다. 감추는 것도 일종의 거짓입니다. 진실을 감추려 하니 거짓일 수밖에. 성경에 말씀하신 바, "나와 내 말을 부끄러워하면"이라 하심은 지금은 한 때 부끄러워하게 되나 장차는 온 세상에서 창대하게 되어 오히려 믿지 않는 사람이 소수가 됨으로써 그들이 부끄러워하는 세상이 된다는 뜻이 아님은 물론입니다. 그 반대인 것입니다.

이 세상이 존속하는 한에는 그렇다 따라서 너희 평생에 세상이 나와 내 말을 부끄러워하게 만들 것이다 즉 믿는 이들이 소수로서의 학대와 서러움을 당하게 된다는 뜻입니다. 죽고 나서는 죽어보아야 알 수 있는 일이고 확실한 것은 살아 생전의 이 세상뿐이니 거짓말의 속성은 내 말을 들으면 지금 당장 또는 이 세상에서 좋은 효과를 보게 된다는 데에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또 설혹 죽은 다음에야 빛을 보게 된다고 속일 경우에도 정작 그런 거짓말하는 본인은 결코 이 세상 삶을 부정적으로 살지 않는 데에 있습니다.

다시 말해 호의호식하고 잘 살지, 고생하면서 살지 않는 특점이 있습니다. 이 경우 사이비 종교로써 착취하는 경우가 되는데, 이런 사이비는 웬만하면 그 사이비성이 간파되므로 다수가 미혹되지는 않지만 엄연한 실재임은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본인도 그렇게 부정적으로 세상을 일관되게 지내면서 또한 부정적으로 세상을 지내라고 남들에게 역점을 두고 가르치되 그 내용이 결코 황당무계가 될 수 없는 경우 거기에는 거짓이 없고 진실뿐이라는 증명이 됩니다.

성경의 사도들은 그렇게 일관되게 지냈습니다. 또한 일관되게 세상 삶을 사랑하지 말라고 지금도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유는 명백합니다. 이 세상은 악마 용이 관장하기 때문이요 또 그런 사실보다도 복음 전함이 급선무인데 이 복음 전파를 악마가 방해하여 갖은 탄압의 수단으로 맞서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심으로써 이 상황이 해제되는데, 다시 오시기 전에도 그리스도(구세주)를 가장한 악한 자(사탄의 하수인)가 나타나 온 세상을 호령하게 된다고 했으니, 이 세상에서의 삶의 (낙의) 누림은 없는 것입니다.

구원의 말씀이 전파되어 사람 살리는 일이 끝나면 지체 없이 세상(복음을 전파하는 일을 전세계적으로 방해하는)도 끝난다 하셨으므로 이 세상 존속의 목적이 오직 구원의 말씀 전파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말씀 전파를 한사코 저지하려는 용이 이 세상 신(神)으로 있는 이상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이 자연계 육체는 살라고 있는 또는 살기에 적합한 육체가 아닙니다. 내일도 보장 받지 못하는 극도의 불확실성의 육체라는 사실에서도 이는 명백합니다.

정작 살 수 있는 살 수 있을 만한 육체는 초자연계에 속하여 죽지(썩지) 않는 육체입니다. 이 자연계 육체는 인간(아담)이 범죄함으로써 파생된 비극적 결과물입니다. 그렇다면 어찌하든지 그 원래의 생명 상태로 복원됨이 급선무이지, 이런 생명도 아닌 죽음의 육체에 매달려 살려고만 한다면 웃기는 일이 아닙니까. 아무 것도 실상을 몰라서 그런 것도 아니고 성경을 통해 실상이 알려져도 이를 인정하지 않고 살려고만 고집을 피운다는 것은 이 세상 신의 책동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에게 밤낮 휘둘리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용은 이러한 성경의 내용 즉 의인들(그리스도를 믿는)이 이 세상에서 끝까지 약자로서 탄압의 대상이 된다고 미리 경고해두신 말씀을 희석시키는 의미에서도 가짜 복음, 바울의 말대로 "다른 예수", "다른 복음"인 간판만의 "기독교"인 강력한 세상 종교를 만들어 이를 활용, 세상에 군림하게 한 것도 이상의 성경적 사실을 왜곡, 희석시키기 위함인 것입니다. 따라서 성경의 진실성을 방증하는 의미가 됩니다. 그래서 사탄은 "보라, 기독교가 이렇게 세상을 장악하여 창대해지고 욱일승천하고 있지 않느냐, 성경에 그런 말씀은 틀린 것이 아니냐, 틀린 말을 하는데 신뢰할 수 있느냐" 하여 넌지시 성경을 무기력화하려는 속셈인 것입니다.

또 한편으로는 "성경이 그래서 어렵다고 하는 것이다. 아무나 성경을 읽는 것이 아니다. 이러한 어려운 대목들을 학문적으로 많이 연구하는 이들에게 맡겨야 한다" 해놓고는 그런 신학자들의 생각을 비틀어놓은 다음 그런 그릇된 신학자의 말을 듣게 만듦으로써 숱한 생명들을 파멸시킨 것입니다. 사탄이 속임수는 무궁무진합니다. 그러므로 역설 같지만 이런 변화무쌍 천차만별 능수능란의 속임수를 능히 이길 수 있는 것은 어린 아이 같은 단순함에 있으므로, "돌이켜 어린 아이 같이 되지 않고는 절대로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 하신 것이고, "진리를 지혜 있는 자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이에게 나타내시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글줄이나 읽을 줄 안다고 여러 사람의 여러 연구 자료에 몰입하는 것을 자랑처럼 여겨 거기 탐닉하는 경우 사탄의 이러한 함정에 빠지기가 십중팔구인 것입니다. 그러나 단지 성경밖에 모르고 그 이상으로는 더 생각할 줄 모르는 이들은 오히려 그것이 강점이 되어 여러 간교한 오도된 신학적 견해들을 멀리할 수 있기에 그러합니다. 필자의 사형되는 이는 대학 철학과를 졸업하고 신학원에 들어가 졸업을 앞두고는 "믿음이 무엇이냐" 하고 학우들에게 물었다는데 그 길로 그만 변을 당해 세상을 하직했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의 절대적 진실성을 확고하게 믿어야 장차 어지럽게 나타날 적 그리스도의 모든 흉계를 이길 수 있어 각종 소위 "과학적 논거"를 대면서 성경을 공격하는 것에 넉넉히 대비할 것인데, 그러한 성경의 진실성은 이상과 같은 자체 증명에 있으니 이를 명심할 필요가 있습니다. 외부로부터 오는 증명은 그 "외부적" 증거를 다른 그럴싸한(그러나 진실은 아니고 진리도 아닌) 논리가 공격해 와 와해시킬 정도가 되면 그 자체 권위가 크게 흔들릴 수도 있지만, 이 자체 증명만은 여하한 경우에도 흔들릴 까닭이 없는 것입니다. 성경이 있는 한 그 증명도 함께 존속되어 그야말로 난공불락입니다.

세상(삶)을 사랑하지 말라는 것은 그 자체에 어떤 의미를 두기 때문이 아니라, 구원 받은 이후의 남은 생애를 허송세월하지 않고 오직아버지의 뜻을 행함으로써(마 7:21) 다른 사람들 구원해내기에만 골몰해도 시간이 모자랄 지경인데 다른 데에 미처 신경 쓸 여유가 없기 때문이라고 해야 정확한 해석일 것입니다. 복음 전파가 끝나면 세상도 끝난다는 말씀이 바로 이 해석이 정확하다는 것을 아주 못박아버리고 있습니다.

안락한 세상 삶을 꿈꾸며 어떤 사람이 "주님의 제자가 되겠습니다" 하고 자청해 왔을 때 "인자는 머리 둘 곳도 없다" 하심으로써 인간이 살 보금자리가 결코 이 세상 자연계가 아님(요 18:36)을 명시하신 것도, 이 세상이 죽은 자의 세상으로서 생명을 누릴 산 자의 세계가 아닌즉 "너는 세상에 나가서 오직 하나님 나라의 복음 즉 산 자가 되는 방법만을 전달하는 것으로 일생의 소임을 다하라 하신 것도, 손에 일단 쟁기를 잡았으면 일이 끝날 때까지 멈추지 말아야 하는 것이지 이것저것 다른 일에 한눈팔고 관심 두고 신경 쓰면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 하신 것도(눅 9:57-62) 이런 사실을 두고 경고하신 것이니 마땅히 마음에 아로새길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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